20211219-20(묵상)
응답: 회복하리라!
욜 3.1-21
본문 관찰
열방에 대한 심판(1-15)
심판1: 심문을 예고하다(1-3)
보복: 심는대로 거두다(4-8)
심판2: 심판을 받다(9-15)
이스라엘의 회복(16-19)
성산 시온 백성의 복(16-17)
땅의 회복(18-19)
결론(20-21)
여호와의 날, 그 두 얼굴
심판과 회복은 이스라엘에게만 해당하는가.
하나님의 용서는 사람은 물론 땅과 짐승까지 회복하는 것으로 나타난다(2.18,21-24). 무엇보다 당신의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시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누구든지 구원하실 것이다(2.28-32; 행2.16-21 참조). 요엘이라는 구약의 율법 속에 은혜와 사랑이라는 신약의 복음이 숨쉬고 있음이 흥미롭다. 구약은 품고 신약은 꽃피우는 셈이다.
마침내 “그 날 곧 …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1), 여호와께서 ‘그들’ 곧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을 “심문하리니 이는 그들이”(2a) 이스라엘에게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2b-8).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에서 구원하시는 바로 ‘그 날’(그 때, 1)이 곧 열방인 그들을 심문(심판)하실 것이 예고되는 때다. 이처럼 “그 날 … 그 때‘에 밝히 드러나는 여호와의 날은 이중적이다.
열방에 대한 심판(1-15)
이렇듯 이스라엘의 구원과 이방의 멸망은 같이 간다. 고레스 칙령에 의해 이방의 땅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이제 새로운 시대에 대한 소망을 갖는다(1). 하지만 성전을 건축하는 것으로 모든 희망이 꽃필 줄 알았으나 이것마저 여의치 않게 되고, 이스라엘은 실의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나라는 문을 닫고 열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다(1-3).
바로 이때 요엘 선지자의 메시지가 선포된다. 그것은 이방의 심판을 외치는 것인데(“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2.31a), 이는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을 선포하는 것이 되고(“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2.32a)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붙들게 되는 기회가 된다. 유다가 생존 자체를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면 하나님의 구원(이스라엘, 16-21)과 하나님의 심판(이방, 4-15)을 동시에 인정하여야만 한다. 이것이 요엘 선지자가 외치는 ‘여호와의 날’(1.15, 2.11,31, 3.14) 의 두 얼굴이다.
한편 베드로의 설교에서 요엘의 메시지가 다시 선포됨으로서 마침내 사도행전에서 성취된다(2.28-32; 행2.16-21,39-40). 하나님은 역시 심판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닌 분이시다. 그러나 여기서 열방(이방)은 여전히 심판의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지금도 이 두 지평(이스라엘 vs 이방)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성령을 “만민에게 부어 … 줄 것이”(2.28-29)라 하시면서,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2.32a)라 선언하신다. 결국 모든 인간은 자기 죄 때문에 멸망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이스라엘의 회복(16-21)
“그 날에 …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
그러나 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니라.”
마침내 당신의 백성을 위해 “여호와께서 … 부르짖고 … 목소리를 내시”자 열방은 두려워 떤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피난처와 산성이시기 때문이다(16). 이는 하나님의 통치의 온전한 회복이다(17). 그야말로 전인적이고 온전한 회복이다. 주의 백성에게 성령을 부어 주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땅의 회복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 넘친다. 이로써 여호와의 날은 단지 심판으로 전부일 수 없는 은혜와 축복과 구원의 날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이렇듯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하나다.
회복은 단지 구호가 아니라 현재 곧 오늘 이루어져 이스라엘에게 주신 선물이다(18,20). 이제 메뚜기 떼가 쓸고 간 황무함은 사라졌고 포도원은 회복되었다. 무엇보다 이 은혜는 여호와의 성전에서 흘러 나온다는 점이다: “그 날에 …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18) 그러나 애굽과 에돔은 황무지와 황무한 들이 되는 심판을 받아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될 것이다(19).
부스러기 묵상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17b)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니라.”(21b)
마침내 땅과 백성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회복된다.
다시는 메뚜기 떼와 같은 이방의 노리개(먹잇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시온에 하나님이 거하시기 때문이요(21b), 더 이상 이방 나라들이 기웃거리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17b)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에게 주신 땅 가나안에게 죄의 값을 지불하게 하셨다. 심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신실하지 않으시는 분이신가. 이 무모하고 건방지게 보이는 질문은 이 때문이다: ‘이미 아브라함에게 땅과 후손을 약속(언약)하시고 이를 성취하신 하나님께서 비록 저들이 범죄하였다 할지라도 당신의 약속을 스스로 접으시는 게 옳은가.’
문제는 심판으로 끝이라면 이 질문은 매우 곤혹스럽다. 하지만 하나님은 저들을 다시 회복하시고 고치셔서 다시 백성 곧 자녀의 자리로 회복시키시며 언약의 땅 예루살렘(시온) 곧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요, 값없이 주시는 은혜요, 변함없으신 사랑으로 말미암아서다. 이렇듯 심판마저도 구원의 씨앗이자 열매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이 요엘서를 통해 말씀하시며 일하시며 구원하시며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