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2 - 폭풍행전, 그 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욘 1.6-16)

20201025(양무리교회)

  

 

 

2_ 폭풍행전, 그 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

Jon. 1.6-16

  

   본문 관찰

 

   선장 - 일어나서 구하라

   무리 -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

   요나 -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바다 -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 -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바다 -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무리 -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 -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그 사람들과 요나

 

요나는 이방 나라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향한 사명을 받기 이전부터 이미 선지자였다(왕하14.25). 그는 결코 사실이 아닌 상상이나 허구(fiction)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 인물이 아니다(12.38-41, 11.29-30,32). 갈릴리 가드헤벨 출신의 아밋대의 아들 요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시기에 왕의 승리를 예고하도록 하나님에 의해 부르심을 받아 이미 능력의 선지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를 니느웨를 위해 부르셨다(1-2). 따라서 요나의 그러나’(3,5)는 그가 무지나 단순한 순간적인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불순종한 것이다(4.2). 그는 불신자도 아니며 평범한 성도의 한 사람도 아닌 하나님에 의해 친히 부르심을 받은 선지자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는 모든 죄행(罪行)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다(10a). 그리고 결국에는 스스로 죽기를 구한다(12).

이쯤에서 잘못을 시인하고 니느웨에 파송된 선지자로 다시 일어나 가서 외쳐야 했다. 그런데 끝까지 니느웨에 대한 사명을 붙들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피하려고’(3) 도망쳤으나 그를 찾아내시고서 끝까지 선지자로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7)께 말이다.

   

 

요나방정식 - “나 죽고 너 죽자.”

 

선장은 잠을 자고 있는 요나에게 자신들이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5a)서 이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는 것처럼 요나에게도 너도 네 신(하나님)에게 구하라!”고 다그친다. 요나는 이 큰 폭풍 앞에 이방인으로부터 기도하라는 충고를 받는다. 6절의 구하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2절에서 요나에게 외치라!’ 하실 때 사용한 단어와 같다. 하나님은 먼저 요나의 면전에서 그에게 외치라 하셨다. 그런데 그는 이를 버렸고, 그럼에도 도망자 요나가 잠들었을 때 큰 폭풍을 통해 그를 다시 찾아오셨다. 더 놀라운 것은 이번에는 그가 깨어났을 때 이방인의 입을 통해서까지 지금 당면한 문제의 해답을 하나님께 구하라!’(외치라!)며 계속해서 부르시고 계신다는 점이다.

요나는 하나님을 피하여 멀리 도망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더 가까이 그를 찾아오셨다. 또 다시 집요한 하나님의 찾아오심이 하나가 더 추가되는데 바로 제비뽑기가 요나에게 당한 것이 그것이다(7). 하나님은 지금 요나를 딱 찝어서 찾아내신다. ‘피하려고도망하는 불순종의 선지자를 발견해 내신다. 참으로 중단되지 않는 하나님의 열심이요 사랑이다. 거의 깨어지게 된 지점까지만 몰고 가셨고(4), 선장의 입을 통해서(6), 그리고 이번에는 제비뽑기를 통해서 요나 앞에 하나님이 직접 서신다(7). 사실 그가 하나님을 피하여 숨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넌센스다. 문제는 이렇게 되었음에도 그가 하나님의 찾아오심을 끝내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데 있다. 이러한 처신은 요나가 처음이 아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3.9) 하와 때문에 그만...

가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4.9) 아벨을 지키는 자이니까...

사울왕이여!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삼상13.11) 실은 제사하려고...

 

이 사람들의 한결같은 공통분모는 하나님이 다 아시고서 영적인 포위망을 좁혀 오심에도 불구하고 먼저 자신들의 죄를 자백(自白)하는 일에 철저하게 실패한다. 동시에 자신들의 죄가 백일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도 여전히 구질구질함과 변명과 뻔뻔스러움으로 스스로의 무덤을 판다. 지금 요나도 이 사람들의 모양새와 그리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아니 더 나쁘다. 더 연속적이고, 끝내 자폭(자살)하는 것으로 반항하며 정면으로 거역하고 있어서다. 이것은 위기다. 요나의 위기는 그가 사명을 저버리고 하나님과 반대편으로 도망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끝내 하나님이 내민 기회의 손을 뿌리친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위기는, 그것과 함께 그 이후에 보여준 그의 언행(言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이미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개입하심이 공개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도, 인정하지도, 시인하지도, 항복하지도 않고 물끄러미 서서 자신이 제비에 당첨되는 자리까지 나아가 버렸다. 하지만 이제 다 드러났는데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죄()를 시인하지 않는다(7 8). 오히려 입은 살아서 뻔뻔스럽게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9b)라는 명함을 내민다.

그만큼 그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도전하듯 저항한다. 그는 죄인으로 드러났음에도 철면피처럼 당당하면서도 초연하다. 그는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10a)고서 다시금 선지자 포기선언서를 낭독해 버린다(12):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이게 선지자의 기가 막힌 민낯이다. 하나님께서 대풍과 선장과 제비뽑기를 통해서 계속해서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하나님이 친히 선지자 앞에 서 계심에도 끝내 그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15). 죽음보다 더 이방 니느웨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싫어한다(4.2-3 참조). 이 정도면 거의 막장이다. 요나에게 더 뭘 바란다는 말인가.

   

 

그 사람들(선장과 사공, 무리)의 비상구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5a)

    “무리가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10b)

    “그러나 그 사람들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13a)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14)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16)

 

이 와중에도 이방인들과 선지자 요나의 대조가 감동스러우면서 동시에 가슴을 시리도록 아프게 한다. 선지자는 끝까지 죽음을 선택하는데 이에 반해 이방인들은 이 대풍을 인하여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의 두려움은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서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요나를 살리려고 하는 사랑의 사람들로, 기도의 사람들로 이 고난 중에도 속사람이 바뀐다(13-14). 이들은 자기 신을 부르던 불신앙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기도), 제사(예배)를 드리고, 또한 주를 섬기기로 약속까지 하게 된다(16). 참으로 놀라운 변화요 감동이다.

하지만 정작 니느웨 백성들을 살려야 할 선지자는 죽겠다고 한다. 요나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이방인의 구원을 하나님은 니느웨 백성들을 구원하기도 전에 요나 앞에서 이루신다. 요나의 끝없는 저항과 마침내 그의 죽음이라는 배수진(15)도 이를 막아내지 못한다. 역설적이게도 니느웨로 가기도 전에 그가 결사항전으로 거부한 이방인 구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이스라엘은 알량한 선민(選民) 민족주의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아브라함(“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 12.3b)에게서, 시내산언약에서 이미 확고하게 이스라엘에게 알려진 하나님의 뜻이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19.5-6) 이미 이스라엘에는 출애굽 때 수많은 잡족’(12.38),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 기생 라합의 가문(6.22-23), 그리고 기브온 거민’(9.3-21, 11.19), 또한 모압 여인 룻(1.4, 4.17)이 각각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음을 선지자라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유독 이방 나라(니느웨)와 이방 백성들은 구원 받으면 안 된다는 고집스러움을 자기 생명과 바꾸고 만다. 우리 역시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시지만 그럼에도 반대로 안 된다고, 할 수 없다고, 하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는 그런 나의 니느웨가 있을 수 있다. 도대체 그 니느웨가 무엇인가.

   

 

부스러기 묵상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11a)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13b)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서 다시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일반적인 정석(定石)13절 이후와 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요나는 이미 쓰임 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선지자이기를 포기한 죄인(罪人) 요나를 통해서도 다시스로 가는 배에 승선한 그 사람들’(사공과 선장)을 구원하신다. 이들은 자기의 신’(5)을 섬기는 다신론(범신론)을 숭배하는 이방인들이었다. 요나가 그렇게도 싫어하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이방인들, 그런데 하나님은 요나가 보는 앞에서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신다.

감히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부할지라도, 그것도 의도적으로 작심하고서 반항을 시도해도, 폭풍과 그 사람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사인(sign)을 보내도 깨닫지 못해도, -그래도 그는 선지자다- 사명보다는 당당하게 죽는 편을 택해도, 하나님은 타락한 선지자에게 끝까지 인내하신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며 그대로 사용하신다.

한편 하나님은 지금 요나를 둘러싼 이 큰 폭풍우 가운데 어디에 계시며, 또한 무엇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은 단지 속썩이는 요나에게 맛 좀 봐라!’는 식이란 말인가. 아니면 네가 알아서 위기를 극복하던가, 아니면 불순종의 값을 당당하게 치르던가, 아무튼 이 일은 이제 하나님 손을 떠났고 너가 알아서 할 문제다는 식인가.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부재중인 것처럼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고, 그가 뭔가 하시고 있다는 표현이 나타날 때는 ,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는구나!’ 하다가도, 지금 요나 1장처럼 하나님이 무대에서 연출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그가 보이지 않으면 마치 하나님과 무관하게 일어나는 일들인 것처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넌센스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와 같은 때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며 당신의 놀라운 일을 보이게 보이지 않게 집행하고 계신다. 이것을 알고 또 믿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지금 나에게도, 내 일에도, 나를 둘러싼 상황과 문제에도 하나님이 요나서처럼 개입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고 신뢰할 수 있다.

하나님은 당신이 시작하신 일이 비록 실패하고 별 의미 없이 되어진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래서 당신의 이름이 모욕을 받고 하나님이 무능력한 신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하는 때에도 시작하신 일을, 이를 위해 불러내신 사람을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신다. 만일 그러지 않고 상황과 형편에 따라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처리하신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신실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하나님은 변덕스러운 분이 아니며, 하나님은 결과가 나쁘게 보인다고 과정을 무시하거나, 또한 과정이 신통치 않다고 어느 시점에서 그것을 손에서 포기해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시작하셨다면 하나님은 당신이 목적한 결과와 열매를 맺으시기까지 그 일을 멈추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대한민국을, 한국교회를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비록 요나처럼 살고 있다할지라도 그런 나를 폭풍 가운데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나의 폭풍행전 그 속에서도 일하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비록 못나고 연약한 죄인일자라도 그를 찾아오사 묵묵히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다.

 

내가 통과해 가는 폭풍행전에도 하나님은 계신다.

여전히 일하시며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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