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結) - 히스기야 이야기4(사 39.1-8)

20200831(묵상)

  

 

 

() - 히스기야 이야기(4)

Isa. 39.1-8

  

   구조 관찰

 

   ① () - 히스기야의 위기(36.1-22)

   ② () - 히스기야의 기도(37.1-38)

   ③ () - 히스기야의 치유(38.1-22)

   ④ () - 히스기야의 몰락(39.1-8)

   

 

연속성과 불연속성

 

   “그러나 바빌로니아 사절단이 와서

    그 땅에 일어난 기적에 관하여 그에게 물을 때에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시험하여

    그의 진심을 알고자 그를 떠나신 적도 있었다.”(대하32.31, 현대인의성경)

 

38장과 39장이 서로 불연속적인 이유는 뭘까.

14+15라는 새로운 복을 은혜로 받았던 히스기야다(38.5). 그는 지난 14년을 하루같이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고, 위기의 때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36장의 위기 앞에서도 37장처럼 살았을 때 하나님은 히스기야와 유다를 보호하시고 놀라운 은총의 날개로 저들을 붙드셨다. 이러한 흐름은 36~38장까지 계속되었다.

그런데 유독 39장은 그렇지 못하다. 그는 왜 이처럼 초지일관(初志一貫)하지 못했을까. 히스기야의 잘못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게 자신뿐만 아니라 후손들에게까지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38장으로 끝냈을 때 하나님도 축복의 샘을 마르게 하신다. 어떻게, 그리고 무엇으로 사는 것이 연속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 앞에 서도록 만들까. 히스기야의 몰락을 보면서 드는 슬픈 질문들이다.

 

 

하나님이 없다(1-4).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 때에 이사야가 받은 경고의 말씀이 이사야 7-14장이다(7.1, 14.28). 바로 그 안에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가 들어있다(13). 바벨론은 이방이다. ,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심판 받아야 할 나라다. 히스기야가 강국 앗수르에 대해서 그처럼 강경하게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이방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런 의미의 공존(共存)은 불가피했을지라도 상생(相生)을 있을 수 없다는 배타적 신앙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과는 결코 상생할 수 없는 이방의 모든 종교들의 잔재를 철저하게 청산하는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 수 있었다(대하29.1~32.30,32-33).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그것이 이사야 36~38장에 기록되어 있는 히스기야 이야기다.

그런데 39장으로 넘어오면서 이 신앙의 기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린다. 하나님을 열망하던 모습과는 너무도 이질적이다(38.22). 그래서 역대하 기자는 이 대목을 언급할 때 그러나(대하32.31)라는 접속사를 통해서 반전된 히스기야의 위기를 고발하는 것 아닌가 싶다.

히스기야가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보이지 아니한 보물이 하나도 없”(2,4)을 정도도 다 보여줘야 할 것은 궁전의 화려함이 아니었다. 역대하 기자의 기록에 의하면 바벨론의 사절단이 유다에 와서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異蹟)을 물을 때에”(대하32.31) 그가 저들에게 대답했어야 할 말은 다름 아닌 37-38장을 이루신 하나님이었어야 했다.

바로 이것이 히스기야의 죄(). 죄는 과녁을 빗나간 화살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과 그분이 하신 일, 즉 복음을 전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는 자기 영광과 부귀를 과시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연속성을 빗나간 죄행(罪行)이다. 은혜의 샘이 마르자 그에게 찾아온 것은 몰락의 길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비극이 있다(5-8).

 

15년이라는 안정보장을 가리키는 하나님의 어인(御印)이 찍힌 보험증서는 히스기야로 하여금 그 기간을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것까지를 보증한 것은 아니다(38.5-6).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하나님을 높이며 살아야 할 소중한 보너스(bonus)를 마치 탕자처럼 소비해 버리고 만다. ()이 하루 아침에 화()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 풍성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고 하나님의 부재(不在, 1-4)를 선포해 버렸을 때 하나님은 축복의 문을 닫으시고야 마신다. 앗수르라는 이방에 대해서 안전하게 되었기에(38.6) 바벨론까지 그럴 것이라 생각한 것은 착각이다. 바벨론은 기뻐하여”(2a) 해야 할,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의 나라인 유다와 화친해야 할, 그러니까 앗수르는 해결되었으니까 이젠 바벨론과만 어떻게든 상생(相生)하면 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형통하고 잘 될 것이라는 불신앙일 뿐이다.

승리는 늘 실패를 엿보는 기회의 눈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히스기야는 바벨론 시험지를 받아 놓고서 너무나 어이없이, 전혀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 문제를 푼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래서 기도를 통해서 인도하심을 구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방식이 아닐 수 없다(37-38). 때문에 하나님의 평가는 달랐다. 유다는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6), 히스기야 가문은 비참한 처지에 떨어지게 될 것이 예고된다(7).

  

 

부스러기 묵상

 

   “당신의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8)

 

히스기야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이 좀 슬프다.

꼭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인가. 인간이 연약하다는 것으로 넘어가기엔 뭔가 석연치가 않다. 극과 극을 달리는 모습이 어지럽기만 하다(37-3839). 그를 향해 돌을 들기에는 나 역시 나의 필요와 욕망을 따라 줄타기를 시도하는 연약한 인생이 아닌가. 인과론(因果論)으로 볼 때에도 하나님의 심판(5-7)은 히스기야의 죄악(1-4)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약 그가 결과가 선언되기 전에 그걸 미처 몰랐다면 그 이후에라도 무릎을 꿇고 회개하고 다시금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구했어야 했다. 하지만 15년을 보너스로 받을 때처럼 히스기야는 그러지 않았다(8).

정말이지 왜 그랬을까? 역대하 3231에 의하면 바벨론의 사신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물었으나 히스기야는 자신의 영광으로 답했다. 그리고 더 본질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본심을 시험하시는 하나의 사건으로서의 39장이었다는 점이다.

참으로 가슴 아픈 답안지였고(1-4), 긴 한숨이 절로 나오는 하나님의 평가서다(5-7). 비극은 히스기야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게 더 마음을 시리게 한다. 왕궁에서 시작된 죄는 나라와 가족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을 확장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6.23a) 한 사람이 바르게 살 때 한 나라가 복을 받았다(37-38). 그러나 동시에 한 사람이 배은(背恩)할 때 가족은 물론 나라가 실낙원(失樂園, 39)으로 추락하는 것을 본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25.40)는 기준에 따라 평가하실 것임을 분명히 하셨다. 지금 우리의 근무평점은 정확하게 천국기록보관소에 기술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때로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하셨던 것처럼 마지막 심판 날이 아닌 중간평가를 하실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것은 사면이 유리관인 수족관의 붕어처럼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히스기야가 이걸 잊지 않았다면 다르게 살지 않았을까. 두고두고 아쉬움만 남는다. 이게 어찌 히스기야만의 일일까.

항상 그렇듯 잘 될 때가 위기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을 때는 오히려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두드렸다. 그런데 15년을 보너스로 받아든 후, 형통할 때가 이처럼 문제인 경우가 허다하다. 실패를 승리의 공식으로 풀어내듯이 형통을 변함없이 축복과 은혜와 승리의 법칙에 담아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 둘 다가 함량미달이어서는 안 된다. 만사는 수비와 공격, 이 둘 다 중요하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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