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 vs 성령님(사 32.1-20)

20200823(묵상)

  

 

 

내 백성 vs 성령님

Isa. 32.1-20

  

   본문 관찰

 

   한 의로운 왕의 통치(1-8)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1a)

   심판과 회복(9-20)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며 패한 바 되며”(9-14)

     “그 숲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19)

       →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내 백성이 화평한 집에 있으려니와”(15-18,20)

   

 

()의 나라

 

이스라엘의 진정한 희망은 어디에서, 그리고 무엇으로 말미암는가?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이스라엘 안에서, 즉 이스라엘 스스로의 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다시금 장차올 왕이신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소개한다(7.14, 9.6-7, 11.1-10, 32.1-8). 오직 메시야만이 죄와 심판 아래 있는 내 백성’(13)의 고통을 의()와 축복 안에 있는 내 백성’(18)으로 회복시킬 것이다.

동시에 이 일은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15)라는 위대한 언약과 약속에 근거한다. 이를 위해 죄에 대한 심판이 선행된다(19). 죄는 이스라엘의 현재와 미래를 흔들리게 만들지만 하나님은 저들을 굳건한 진리의 반석 위에 세우신다. 하나님만이 희망이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으나(9-14,19) 하나님은 벌써 회복된 내 백성을 꿈꾸신다(15-18,20). 오늘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설계도를 떨리는 마음으로 드려다 본다.

   

 

한 의로운 왕의 통치(1-8)

 

하나님은 공의로 통치할 한 왕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1). 오직 메시야만이 광풍과 폭우 앞에 피난처(2)가 되사 보고 듣는 것은 물론(3), 마음으로 깨달은 바를 말하는 것까지를 결국은 존귀하게 하신다(4,8). 하지만 여호와를 거스르며,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을 행하는 어리석고 악한 자에게는 심판자가 되실 것이다(5-7). 오늘 그분의 임재 안에 살아가고 있는가? 아직도 어리석은 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오늘도 변함없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심판과 회복(9-20)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15a)

 

하나님의 나라의 의()와 세상 나라의 죄()가 여지없이 대립각을 이룬다(1-8 9-14,19). ‘장차한 왕이 통치할지라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이 둘 사이에서 밀고 당기는 싸움을 계속한다. 특별히 어리석은 여자들(9-14, 3.16-24)이 영적으로 깊은 잠을 자고 있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때문에 선() 심판은 필연적이다: “그 숲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19)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다. 먼저, 희망은 위로부터 임하시는 성령님께로 말미암는다는 점이다(15). 희망은 이스라엘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위로부터 오는 것이며, 주도권은 성령님께 있다: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15a) 어떤 우리인가? 여전히 죄 아래 있는, 그래서 내 백성’(13a)임에도 불구하고 가시와 찔레’(13)가 무성하게 자라 버린 부끄러운 백성으로서의 우리다.

또 다른 놀라운 것 하나는, 15절 이후에, 그러니까 15절만이 죄의 사슬과 열매들로부터 내 백성을 구출해 내며(13 15 18), 그래서 그 때에”(16a) 공의(公義, 16-17)와 참된 안식(18)과 복(, 20)이 회복된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영적 무사태평주의(無事泰平主義)는 심판을 가져왔지만 하나님의 성령은 영적 회복과 부흥을 일으킨다.

 

 

부스러기 묵상

 

   “일을 하는 사람은, 그가 받은 품삯을 은혜로 받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당연한 보수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의롭게 하여 주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비록 아무 공로가 없어도,

    그 믿음이 의로움으로 인정을 받습니다.”(4.4-5, 표준새번역)

 

부끄러운 내 백성’(13)으로 살아도 복 있는 내 백성’(18)으로 높이신다.

하나님이 공의로 통치할 한 이신 메시야를 보내시며(1-8). 또한 위로부터 성령님을 부어주셔서(15) 이 영광스러운 일을 이루신다. 이처럼 부끄럽고 죄스럽게 살아도 여전히 내 백성이라 불러주신다(9-14,19 13). 공의의 심판을 통해 저들의 죄 값을 물으시면서까지 말이다(19). 참으로 기막힌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 놀라지 않을 수 없고, 그분의 바다보다 넓은 사랑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을 볼 때마다 값없이 받은 은혜의 선물, 바로 그 구원에 대해서 묵상하게 된다. 죄를 심었으면 공의의 심판이 와야 한다(9-14 19).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성령님이 오시고(15), 그래서 죄가 뿌려졌음에도 사랑의 용서와 회복의 은총이 펼쳐진다는 점이다(16-18,20). 그러니, 그 어디에 인간의 알량한 공로와 노력의 흔적이 들어갈 수 있으랴.

이스라엘(‘’)은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다. 이를 위해서는 그 어떤 인간도 전적으로 무익하고 무능력하다. 인간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크기가 어떠한가를 드러내는 도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들을 위해 뭔가를 지불할 만큼 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저 한 일이라고는 죄를 더한 것 밖에 없는데(9-14,19) 하나님은 그것들을 십자가에서 다 씻으시고 이제는 영광의 수혜자가 되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다(15-18,20). “장차 마침내”(1,15)에 성취될 내 백성’(18)됨의 영광을 무엇으로 보답할꼬.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5.20b). 이처럼 나를 상대해 주시는 분, [거지의 손]과 같은 이 못나고 추한 손을 오직 믿음으로 내밀었는데 하나님은 이 영광의 복음을 내게 주셨다.

이제 내가 할 일이 있다면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 바로 내게 있는 것으로”(3.6) 아직도 어둠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에게 내 백성됨의 영광이 동일하게 임하기를 바라며 이 은혜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럼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15a) 그들에게도 우리에게처럼 부어주시리라. 이 일을 완성하실 영광의 주님이 장차 한 왕!”(1a)으로 재림하실 것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내 백성됨의 은총이 우리와 가정과 교회와 이 민족을 통해 열방(온누리)에 전파되기를 갈망해 본다(19.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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