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 들포도원 = 심판(사 5.18-30)

20200716(묵상)

  

 

 

유다 + 들포도원 = 심판

Isa. 5.18-30 

 

   본문 관찰

 

   화 있을진저(18-23)

   그러므로(24-30)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 같이

 

유다가 이렇게까지 심각한 죄의 구조 아래 있다는 것이 놀랍다.

화 있을진저그러므로”(8-12 13-17, 18-23 24-30)가 다시 한 번 반복된다. 물질과 쾌락이 만들어지는 땅의 죄는 하늘을 겨냥한다. 한편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을 마음대로 허물어 버린다. 탈법과 불법과 악법과 범법이 난무한 사회, 이게 하나님의 율법의 지배와 다스림을 받는 나라로 세우심을 받은 유다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분노는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유다의 심장을 겨냥한다(28a). 하나님은 먼 나라들’(26)을 불러 인생 채찍’(26-30, 삼하7.14)으로 삼아 마침내 유다를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눈은 지금도 죄를 향하시며, 죄를 벌하심으로써 당신의 공의를 성취하신다.

   

 

화 있을진저(18-23)

 

   거짓의 줄로 죄를 끌고 다니며

   이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조롱하며

     -속히 우리를 벌하소서

     -당신이 계획대로 일을 수행할 수 있는지 보고 싶습니다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며

   스스로 지혜롭고 영리하다 생각하는 자들에게

   배짱 좋게 독주를 겁 없이 마구 퍼마시는 술고래들에게

     -뇌물을 받고 범죄한 사람을 놓아주며

     -죄 없는 사람들을 감옥에 가둔다(현대인의성경)

 

죄의 영향력 아래 순간적으로 빠져들 수 있다. 하지만 유다는 죄를 거짓의 줄로, 그리고 수레처럼 악을 끌고 다닌다(18). 이것은 이미 죄를 의도적으로, 쉼 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떳떳함과 뻔뻔함으로 자행하며 산다는 얘기다. 죄인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사회, 자랑하듯 죄를 행하는 사회, 이게 유다의 현주소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이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조롱하며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여, 속히 우리를 벌하소서! 우리는 당신이 계획대로 일을 수행할 수 있는지 보고 싶습니다.”(19, 현대인의성경) 겁난다. 마치 술독에 빠진 쥐가 고양이 앞에서 큰소리를 치는 꼴이다. 죄는 하나님을 향해서도 자기 소리를 발할 수 있다는 것이 섬뜩하다.

완전히 조폭처럼 배 째라는 식인데 도대체 뭘 믿고 이런 방자한 언행을 거듭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빼앗아 간다. 그래서 진짜 신앙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아닌가. 진짜 은혜를 받고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가를 알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두려움과 떨림으로 선다. 그리고 결코 하나님 앞에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는다. 아직 뜨거운 맛을 못 본 사람들일수록 어쩌고저쩌고 입방아를 찧지만 하나님을 만난 사람, 은혜를 받은 사람,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사람, 구속의 은총을 맛본 사람, 하나님께만 인생의 소망이 있음을 고백하며 사는 사람은 입술로 범죄하는 자리에 쉽게 나아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기준이 아닌 사람은 선과 악, 흑암과 광명, 쓴 것과 단 것의 개념이 없다(20). 그뿐이 아니다. 스스로를 가리켜 지혜와 명철이 있다고 교만한 자리에 앉는다(21). 술과 뇌물을 탐하는 것은 단골 메뉴다(11-12,22-23). 죄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그래서 하나님이 하셔야 할 것들을 죄인이 휘두른다. 한마디로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다. 하나님을 무시하면 사람 냄새만 나는 법이다. 이처럼 유다는 총체적으로 부패했다. 마치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 한 마리가 병든 것이 아니라 수족관 물 자체가 오염된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이렇게 밖에 나타내 보이지 못하는 유다의 몰락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이렇듯 분명하다.

   

 

그러므로(24-30)

 

   그들의 뿌리가 썩고 꽃이 시들어 티끌처럼 날아가 버릴 것이다

   율법을 버리고 말씀을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자기 백성에게 분노하시고 분노는 그치지 않을 것이며

   멀리 있는 나라들에게 신호를 보내 그들을 오게 하실 것이다

   그들이 내 백성을 잡아끌고 갈 것이나 그들을 구해 줄 자가 없을 것이다

   슬픔과 고통뿐이요 빛은 구름에 가려 어두울 것이다(현대인의성경)

 

하나님의 진노는 유다의 근본을 치시는 것으로 예고된다: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24a) 아직 나무는 썽썽하고, 줄기에도 수액이 흐르고, 잎사귀는 푸르다.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는 듯하다. ‘도 피었으니 말이다. 죄 가운데 살아도 당장은 이렇듯 문제가 없어 보이니 망아지 날뛰듯 천방지축(天方地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뿌리를 치신다. 유다가 율법(말씀, 24b)을 버렸으니 더 이상 유다라는 나무의 뿌리에 생명이 공급되지 않을 것이다. 이건 분명 심판이다. 하나님의 분노의 언행이 시작되었다(25a): “시체가 거리의 쓰레기처럼 버려져도 여호와의 분노는 그치지 않을 것이며 그 손도 거두지 않으실 것이다.”(25b, 현대인의성경)

이렇듯 유다가 죽어가고 있다. 하나님이 그 근본 뿌리를 치셨으니 말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작심(作心)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데 무엇보다 그 심각성이 있다. 결국 다시금 유다의 멸망이 그려진다(26-30, 5.13, 39.6): 내 백성을 잡아끌고 갈 것이나 그들을 구해 줄 자가 없을 것이다.”(29b, 현대인의성경)

먼 나라들’(26) 이방을 통해 자기 백성’(25)을 치셔야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 본다. 선지자도 심판만을 외칠 뿐 그도 이 거대한 물줄기를 돌릴 아무런 힘이 없다. 이사야가 있어도 유다는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죽어가고 있다. 인생은 하나님의 작정하심을 돌이킬 수 없고, 심판의 진행을 중단시킬 수 없다. 그래서 고민스럽고 걱정이다.

   

 

부스러기 묵상

 

유다는 죄의 무게 때문에 서서히 침몰해가고 있다.

뿌리’(24) 썩은 나무가 어느 날 갑자기 고목처럼 쓰러지듯이 유다는 정말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파산할 것이다. 죄를 밥 먹듯이, 그래도 그게 죄라는 감각도 없이, 죄의 강자가 살아남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생존만이 있는 몹쓸 나라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하나님마저 희망을 포기하시고 저들을 벌하시기로 작정하신 것 아닌가. 희망이라곤 없다. 이 형국이 역전될 그 어떤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점점 심판의 메시지의 수위를 높이시고 계시고, 그럼에도 유다는 돌이켜 회개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하나님과 유다의 팽팽한 긴장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다. 하지만 결국 손해는 누구의 몫인가. 고스란히 유다가 감당해야 할 죄의 짐이 아닌가. 그런대로 유다는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하나님 밖에, 말씀 밖에 있다.

 

   “그날에 그들이 바다의 성난 파도처럼 이스라엘을 향해 소리를 지를 것이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슬픔과 고통뿐이요

    빛은 구름에 가려 어두울 것이다.”(30, 현대인의성경)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는 신세, 비극이다. 하나님은 당신 뿐 아니라 당신의 나라와 그 백성들이 세상의 수치와 창피함의 대상이 되는 것 때문에 당하게 되실 모욕까지도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나 같으면 동네 창피해서라도 쉬쉬하며 넘어갈 수도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당신의 영광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시더라도 죄의 문제를 결코 그냥 넘어가시지 않으시는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고집스러우심 앞에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고, 변명이 필요할까.

오늘도 세상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향해 돌팔매질을 반복한다. 유력 언론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반(, anti) 기독교적인 메뉴들이 즐비하다. 이런 겁 없는 지옥의 자식들이라 싶다가도 그런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는 우리네의 현실이 부끄럽기에 혼미에 혼미를 거듭하는 생각들이 내 안에서도 마치 찻잔 속의 태풍처럼 요란스럽다.

인생은 스스로 잘난 척 하다가 결국에는 다 잃고, 그래서 완전히 뿌리째 뽑혀 보아야만 그때 가서야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뿌리가 썩고 말았는데 그 다음에 이럴 껄, 저럴 껄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다. 좀 더 빨리 정신을 차리고, 옷을 찢지 않고 마음을 찢으며 하나님 앞에 항복해야 할 텐데 여전히 죄의 바다를 유유히 항해한다. 결국 심판의 항구에 정박하게 되겠지. 과연 멸망의 항구로 들어가면 끝이다는 걸 알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스타일이 일그러지는 것을 감수하시면서까지 작정하신 일이라는 점이, 그런데 유다는 갈 때까지 다 가 버렸다는 점이, 그럼에도 유다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고 있으니 참으로 비통하기 그지없다. 결국 이렇게 끝이 나는 것일까. 정말 이런 식으로 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말인가. 진정 이처럼 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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