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꿈: “내가 이제 일어나며 …”(사 33.1-24)

20200824(묵상)

  

 

 

하나님의 꿈: “내가 이제 일어나며

Isa. 33.1-24

  

   본문 관찰

 

   이사야의 기도(1-9)

   하나님의 응답(10-16)

   새 예루살렘(17-24)

 

      [구조2]

      앗수르(1): 학대 & 속임

      이사야의 기도(2):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현실(7-9)

      하나님(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제 일어나며

        앗수르의 멸망(10-12)

        이스라엘의 회개(14- ): “두려워하며 떨며

  

 

내가 이제 일어나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6.10)

 

이스라엘은 지금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위기 상황이다.

앗수르의 제2차 침입에 의해 성읍들은 함락되고 예루살렘은 포위되었다(1,7-9, 왕하18.13-17, 36.1).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무릎을 꿇는다(1-9). 마침내 앗수르에 대한 심판 선언(10-12)이 이어지고, 그뿐 아니라 시온의 죄인들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이”(14a) 이처럼 두려워 떨게 될 것이다: “우리들 가운데 누가 꺼지지 않는 불덩이를 견디어 내겠는가?”(14b, 표준새번역)

하나님은 멸망의 고통 가운데서도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며(15-16), 바로 그들에게 새 예루살렘을 약속하신다(17-24). “그의 아름다운 가운데에서”(17,22) 왕을 보며 그가 다스리시는 시온성을 보라!”(20a) 그 성은 결코 옮기지 아니할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하나도 끊어지지 아니할”(20b)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21a). 마침내 질병도 없고, 죄사함 받은 백성들로 가득찬 나라, 하나님의 꿈, 바로 그 나라가 오고 있다.

 

 

이사야의 기도(1-9) - 여호와여!

하나님의 응답(10-16) - 여호와께서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2)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제 일어나며

             내가 이제 지극히 높아지리니 나의 권능을 알라!”(10-13)

 

학대와 속이는 자인 앗수르(1)가 커 보일수록 이사야는 그것을 기도 앞으로 가지고 간다(2-9). 이는 매우 적절하며, 또한 절묘하고도 바른 영적(靈的) 공식이다. ‘여호와여!’(2a)로 시작된 기도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10a), 그러니까 하나님의 응답으로 이어지는 것을 볼 때 더욱 그렇다. 사실 앗수르의 심판 예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10.5-19, 30.27-33). 마침내 저들의 교만은 꺾일 때가 임박하였다(36.18-20, 37.10-13).

중요한 것은 이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것만큼 주께 맡기며, 이를 시인함과 아울러 주께 간구하는 것이다(2). 하나님의 개입하심만이 희망임을 애타게 외칠 수 있는 사람, 그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이다(3). 이사야는 기도 안에서 하나님이 일어나 싸우심으로 인하여 이미 대적들이 도망하며 흩어졌나이다”(3)라고, 그 결과 승리했음을 보고 있다(4). 이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기 때문이다(11.1a).

그래서 얼른 하나님의 승리를 찬양해 버린다(5-6). 이와 같은 평안과 구원은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비롯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또한 나의 가장 큰 보배임을 찬양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앗수르에 의해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황폐함에 처한 것이 유다의 현실이다(7-9). 이런 극명한 대조를 통해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복과 저주 가운데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결단하도록 촉구한다.

마침내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신다. 희망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주께서 말씀하신다: “이제는 내가 활동을 시작하겠다. 이제는 내가 일어나서, 나의 권능이 얼마나 큰지를 나타내 보이겠다.”(10, 표준새번역) 이렇게 해서 앗수르에 대한 이사야의 기도는 그대로 응답된다(1,3-4,7-9 10-13). 물론 시온의 죄인들’(14) 역시 심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 그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거룩하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들 편이시기 때문이다(15-16).

   

 

새 예루살렘(17-24)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 시작된 이사야의 기도(1-6)는 마침내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패망케 하심으로 유다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으로 일단락 된다. 이사야는 이 일을 이루신 그의 아름다운 가운데에서’(17) 보라는 메시지를 선포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찬란한 미래를 약속하신다.

이스라엘은 다시 한 번 왕의 장엄한 모습을 볼 것이”(17a, 표준새번역). 하나님이 모든 것을 회복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그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보는 은총을 맛본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출애굽(14.13-14)이 그러했듯이 영광의 부흥을 다시경험하는 것이 그렇다. 이 선물은 완전하다: “네가 강포한 백성을 보지 아니하리라!”(19a)

그러나 문제는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은 이 일을 이루시는 영광의 왕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철저한 영적 무지(무능력)인 셈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영적 가난함이 언제나 이렇다: “네 마음에는 두려워하던 것을 생각하여 내리라.”(18a) 그들은 앗수르를 두려워하고 있었다(23). 그것은 내적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에서 떠났기 때문이고, 외적으로는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될 것인가?(20-24) 하나님은 그것을 이스라엘의 눈에 보이실 것이다(20). 무엇을 말인가? 그것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절기의 시온성을 보라. 네 눈이 안정된 처소인 예루살렘을 보리니”(20a).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한마디로 임마누엘의 축복이다. 이 말씀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것이다.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20b)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20c)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 아니 할 것이며.”(20d)

   “여호와는 거기서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21a)

      →

          “우리 재판장이시요.”(22, 제사장)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이요.”(22, 선지자)

          “우리의 왕이시니”(22, )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22, 메시야)

 

이 큰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은 회복된 예루살렘 거기에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21a)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다. 이 크신 일을 이루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22) 하나님은 언제나 이스라엘(‘’)로부터 이처럼 일컬어지시기를 소망하신다. 하나님을 이처럼 부르며, 믿으며, 의지하며, 사랑하며, 섬기는 것이 행복이다.

   

 

부스러기 묵상

 

   “거기에서는 아무도 내가 병들었다고 말하지 않겠고,

    거기에서 사는 백성은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24, 표준새번역)

 

주적(主敵)은 앗수르, 혹은 환난과 고난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과 입장이 어떠한가에 더 가깝다. 만일 이사야처럼 사태를 직시하고, 그래서 곧바로 그것을 하나님께로 가지고 나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 일에 실패하고 있다면 나의 주적(主敵)은 내부에 있다. ,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이 어느 것보다 무서운 적이다.

이사야가 앗수르라는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깃발을 펄럭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할 수 없는 믿음 때문이다. 믿음은 현실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보도록 이끈다. 그래서 기도할 수 있었다. 기도는 땅을 보는 눈을 하늘을 보게 만들었고, 하나님은 일어나사 일하심으로써 응답하셨다. 그렇다면 기도할 수 있음이 복이다. 이사야처럼 말이다.

한편 이사야는 이미 계시록의 영광을 보고 있다(21.3b-5a):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문제는 기도를 낳는다. 그러나 기도는 그 문제를 해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처럼 기도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약해지는 기도의 무릎을 새롭게 하라는 주님의 사인(sign)으로 받아들여야겠다.

주는 아침마다”(2b) 나의 힘이 되시는 분이라 고백하는 신앙이 있기에, 또 다시 비록 어제와 비교할 때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는 아침이지만 이사야는 그처럼 기도할 수 있었다. 하나님보다 먼저 포기하지 않는 사람, 환경과 상황보다도 하나님을 보는 사람, 하나님보다 먼저 결론을 갖지 않는 사람, 나는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사람, 그가 바로 이사야처럼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도 이사야처럼 그 아침’(1-9)에 저 미래’(17-24)를 보며 살아보자. 우리와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이 바로 이 기도다. 하나님은 이미 다 준비하셨는데 우리는 아직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조차 미적미적 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께 기도의 무릎을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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