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에도 하나님입니다![2](시 43.1-5)

20201230(묵상)

  

 

 

어찌하여에도 하나님입니다!(2)

Ps. 43.1-5

  

    본문 관찰

 

    나를 변호하소서(1-2).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1a)

       간사하고 불의한 자(1b)

       원수의 억압(2)

   나를 인도하소서(3-5).

      빛과 진리(3a)

      주의 거룩한 산(3b)

      주 계시는 곳(3b)

      하나님의 제단(4a)

      큰 기쁨(4a)

   

 

내 송사를 변호하소서.

 

삶에서 만난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 가지고 나아오는 자는 복이 있다.

지금 고라 자손이 그렇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생사화복과 처음과 나중까지의 모든 것을 섭리하시며, 주관하시며, 결정하시며, 인도해 가시는 분이신 것을 알고 믿는 자만이 그럴 수 있다. 때문에 시인은 곧바로 하나님이다. 그것도 판단(변호)하시는 하나님이다(1). 고라 자손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변호해 주고, 저들을 심판할 자가 하나님이시다. 그럼 나는 이를 누가 맡아주는가. 고라 자손처럼 하나님인가. 고라 자손처럼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가.

   

 

나를 변호하소서(1-2).

 

    “판단 변호 건지소서.”(1)

    ‘나의 힘이 되는 하나님’(2a)

 

고라 자손은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갈급함이 넘쳐나고 있음에도 여전히 악한 자들’(간사하고 불의한 자, 원수)에게 포위되어 있다. 이 대목이 조금 혼돈(혼란)스럽다. 이 정도의 하나님을 향한 외통수의 길을 걷는 고결함과 강렬함이라면 평안, 기쁨, 감사, 은혜, 충만이 주는 샬롬의 세계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이런 절망과 탄식과 신음소리와 고통의 소리가 물러갈까.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것이다. 다름 아닌, 고라 자손은 지금 고통하고 아파하는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과 간사하고 불의한 자들이라는 원수가 자신의 주변을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해 달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그러한 자들에게 포위되어 있는 것 자체를 면하게 해 달라고 하지 않고, 단지 그런 상황과 형편에서 구하고 있는 것은 공평한 하나님의 재판(변호).

이것은 비록 원수들이 밀 까부르듯 하는 송사(재판)에 휘말리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만큼 저들과는 다르게 살았다는 것을 자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청원이다. 놀라운 것은 이처럼 불경건하고 불의한 자들로 살고 있음에도 호시탐탐 먹잇감을 찾는 사냥꾼처럼 행세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공평한 재판과 변호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을 시인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나를 인도하소서(3-5).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4a)

 

시인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게 되기를 소망한다(3). 이는 예배자로서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다(4). 이것이 낙심 불안’(5a)을 이기는 길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고, 그래서 이를 하나님께 고백한다. 진정한 소망 도우심’(5b)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믿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기도 후에 곧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자신을 단장한다. 그렇게 될 것을 바라본다. 이미 무죄(無罪) 판결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주의 빛과 진리 앞에 살아가는 자의 당당함이다(3). 물론 그럼에도 비록 낙심 불안’(5a), 그리고 동시에 소망 도우심’(5b)이라는 양극단을 어찌하여 ’(2)로 오가는 중이지만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큰 기쁨’(4)을 가지고 예배자의 영광 앞에 서게 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다. 이 얼마나 멋지고 당당한 영적 자존감인가. 그렇기 때문에 고통과 참소는 끝이 나고 큰 기쁨의 보고서를 들고 하나님 앞에 설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부스러기 묵상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그분의 섭리 안에 들어갈수록 영적으로 철이 든다.

시인은 앞서 어찌하여’(2)를 토했었다. 이는 언뜻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을 토해내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같은 멜로디로 다시금 어찌하여’(5)가 고백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원망이 아니라 하나님을 불신하고 따지던 못난 자신을 꾸짖는 소리다. 놀랍게도 고통과 아픔, 이를 몰고 온 경건하지 아니하고 불의한 자들의 송사를 통해서 아픈 만큼 성장하고 성숙한 것이다. 그러니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당장 우리 눈에는 없어야 할 것 같은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것에서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꽃을 피워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세상은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과 간사하고 불의한 자들이 득세하고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은 저들을 드러내시고, 저들을 재판하시며, 세상의 질서와 정의를 바로 잡으신다. 여전히 세상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니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산다. 하지만 하나님은 공정하고 공평한 재판(변호)을 통해 세상에 만연한 악과 불의를 심판하신다.

그 맛과 은혜를 알고 믿는 자는 큰 기쁨으로 하나님을 예배한다. 하나님을 설명만 하는 사람은 이 복음의 비밀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찬양하고 경배한다. 변화무쌍한 삶이라는 무대에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는 것을 믿고 신뢰할 때 비로소 우리도 고라 자손처럼 당당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도우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드리는 시편도 주의 손에 올려드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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