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회를 사랑합니다(시 30.1-12).

20201020(묵상) 191006(양무리교회)

   

 

 

나는 교회를 사랑합니다.

Ps. 30.1-12

  

   본문관찰

 

   구원의 은혜(1-10)

   감사의 찬양(11-12)

  

 

교회, 은혜의 보좌

 

다윗은 성전 낙성식을 시편 30편에 담아낸다.

아니, 성전 봉헌식이라고? 분명 다윗이다. 그럼 무엇인가. 우선은 자신이 봉헌하리라 생각하고서 미리 성전 낙성가를 준비했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윗과 달랐다. 그랬기 때문에 아들 솔로몬에 의해 건축될 성전을 바라보며 건축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는 것과 함께 이처럼 봉헌시를 믿음 안에 소망으로 품어냈을 것이다.

주제가 성전이라는 점이 핵심이고, 이것이 시편 30편을 이해하고 읽어내는 키워드다. 그러니까 성전이라는 안경을 통해 이 시편을 비추어 봐야 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돌잔치라면, 취임식이라면, 칠순잔치라면 거기서 읽어내는 축가나 헌정시는 다 그 핵심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 맞다. 그러므로 시편 30편 역시 그 핵심인 성전에 맞춰 이해되고 읽어져야 한다.

, 그럼 시편 30편에서 다윗이 고백하는 성전은 무엇인가? , 어떤 의미인가? 이는 오늘 우리에게는 성전이신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그래서 그를 찬양하는 이유를 깨닫게 한다.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다. 그럼 지금 다윗은 성전이신 예수께서 하신 일을 고백하고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아닌가.

   

 

성전이신 그리스도(1-6): ‘형통

 

다윗은 성전이신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그 은혜를 하나씩 제단에 올려놓는다.

 

   ‘형통’ & ‘감사

   ❶ 원수의 손에서 끌어내사 원수가 기뻐하지 못하게 하신다(1).

   ❷ 주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고치신다(2).

   ❸ 사망의 길목에서 끌어내사 무덤에 내려가지 않게 하신다(3).

       → 감사하라!(4)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5)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6)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1.23a).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5.23). 그처럼 예수님은 그의 몸인 교회의 머리”(1.18)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몸인 교회를 1-6절처럼 형통하도록 보호하시고 이끄시고 영광스럽게 하신다. 그 안에 있으니 얼마나 복된가.

한편 여기서 좀 더 심중하고 바른 진리에 서야 하는 게 있다. 건물로서의 성전을 높이는 것처럼 이해되면 인간은 성전, 즉 교회를 다른 종교나 이방 종교들이 그러듯이 건물인 교회를 신전처럼 숭배하고 건물 자체를 신성시할 수 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신천신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21.2)을 묘사하는 부분 가운데 주목해야 할 말씀으로 가 볼 필요가 있다: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21.22)

, 건물이 1-6절의 은혜와 복을 주는 것인가? 아니다. 성전이신 그리스도께서 공급하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성전이신 그리스도(7-10): ‘고난

 

그럼에도 위기는 있다.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7b)

 

맞다. 주의 은혜가 넘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다 볼 수 없고, 그분이 행하신 일들을 다 깨달아 알 수 없다. 종종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도 한다. 마치 교차로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하나님이 계심에도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도대체 하나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 것인가?’ 싶은 일이 한 둘이 아님에서 알 수 있다. 위기다.

사랑하는 부모가 자기 자신들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고 돌봄에도 불구하고 자식에게 원치 않는 어려운 일이 밀려오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음에도 고난은 있다.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시고 교회가 그의 몸인데 몸인 우리들, 그의 자녀들에게 고통과 고난과 시련이 있다. 배 안에 있어도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것은 마찬가지이듯 그리스도 안에 있어도 환난과 고통으로 인생 전체가 흔들리는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내가 근심하였나이다.”(7b)

 

다윗은 성전이 있고, 율법이 있고, 제사가 있고, 하나님의 통치와 인도하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시편 식으로 말하자면 원수와 사망의 길목에서 이끌어내어 살리셨음에도(1,3), 무엇보다 기도하고 있음에도(2) 하나님은 종종 그 얼굴을 숨기시며 나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은 고독과 아픔과 절망과 슬픔 가운데를 지나게 하시는 근심의 때가 있다.

놀랍게도 믿음의 사람 역시 근심할 수 있다. 가나안 정복을 앞에 둔 하나님의 종 여호수아를 보라. 그 역시 위대한 지도자임에도 그는 정복 앞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니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아닌가: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 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1.9)

 

그럼에도 성전인 그리스도의 은혜의 날개 안에 일어나는 이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무엇으로 이겨내는가?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8,10)

 

그렇다. 기도가 답이다. 기도가 하나님의 식이다. 기도는 형통할 때만 그리는 게 아니다(2). 기도는 두려움과 염려 가운데 처해 있을 때도 피할 피난처요 도움이다. 지금 성전은 이러한 은혜를 약속하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상 식은 두려워하다가 그만 무너진다. 세상 식은 수단과 방법이라는 묘수를 찾거나, 그것을 해결해 줄 힘 있는 자를 찾는다. 하나님이 없고, 그래서 하나님을 찾지 않아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이 제안하시는 식은 다름 아닌 기도다: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8a) 무슨 말인가.

   

 

성전이신 그리스도(11-12): ‘찬송과 감사

 

이렇듯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다. 그러자 하나님은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게 하신다.

 

                                                   찬송 & 감사(12): ‘영원히

                                                   슬픔이 기쁨으로!(11)

                              기도(8-10)

   위기(고통, 7b)

 

나는 위기의 순간에 기도했으나, 하나님은 고통과 탄식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으로 이를 역전시키신다. 다윗은 지금 이 모든 일을 이루신 성전이신 주를 찬송하고 감사하는 노래를 올려드린다.

 

감사의 찬양이 터지는 이유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11)

 

기도는 고난과 고통과 아픔의 문을 여는 열쇠(key). 다윗은 지금 이를 하나님의 성전에서 그리할 것을, 아니 그리했음을 간증에 담아낸다.

 

이 감사는 유효 기간이 없다.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12b)

 

어쩌면 다윗은 지금 다윗언약(삼하 7)영원성에 호소하고 있는 것 같다.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히 다스리시며 통치하시기에, 그럼으로 우리에게 임하는 응답의 기쁨과 감사 역시 영원하다.

   

 

부스러기 묵상

 

이 노래에는 다윗의 성전 이해, 즉 그의 성전신학이 녹아있다.

 

   *형통할 때 찬양

   *고난일 때 기도

 

이것이 우리네 교회 생활이자, 인생의 노래는 이처럼 늘 이중주다. 교회 안에, 즉 그리스도 안에 있어도 형통이라는 복과 고난이라는 아픔이 공존한다.

성전봉헌(낙성식)은 다윗이 아닌 아들 솔로몬의 몫이다. 그런데 다윗은 지어지지도 않은 성전을 바라보며 미리 시편으로 성전 낙성식을 올려드린다. 다윗의 심장에는 이런 교회를, 이 그리스도를 꿈꾸고 있음에서다.

이렇듯 우리도 우리가 꿈꾸는 교회를 말씀으로 먼저 경험하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 다윗이 경험하고 맛보고자 했던 바로 그 교회를 우리가 섬기는 양무리교회를 통해 주님께 봉헌해 드리고자 하는 열망을 품는다. 이것이 우리가 믿음과 신앙고백으로 올려드리는 봉헌이다. 무엇을? 우리 자신을 봉헌하는 것이다. 이런 교회로 살아가겠다는 고백을 봉헌한다. 섬김과 헌신을 통해 이런 교회를 이루어드리는 것을 봉헌한다. 함께 부름 받은 성도들이 이처럼 자신을 제물로 봉헌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이를 통해 건강한 교회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어가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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