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의 하나님 앞에서 간구하다(시 25.1-22).

20201015(묵상)

  

 

 

긍휼의 하나님 앞에서 간구하다.

Ps. 25.1-22

  

   본문 관찰

 

   회상의 기도(1-7)

   기도자의 하나님(8-15)

   죄인들에게(8-9)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10-15)

   소망의 기도(16-22)

   

 

고난의 세월들

 

히브리어 알파벳의 순서를 따라 쓴 다윗의 시다.

영어로 예를 든다면, 1절은 알파벳 A로 시작되는 단어로, 2절은 알파벳 B로 시작되는 단어로, 이렇게 알파벳 Z까지 시를 연속해서 -물론 몇 절들(5-6,22)에서는 알파벳 순서를 정확하게 이어가고 있지는 않는 등 약간의 변형이 있지만- 썼다는 뜻이다. 어떻든 다윗은 알파벳 순서를 따라 시상(詩想)을 발견하고서 이를 하나의 주제로 통합하기 위해 언어와 치열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알파벳의 기계적인 순서를 뛰어넘을 만큼 강렬함에 빛나는 시편 25편의 힘인지도 모른다.

 

 

기도신학(1-7,16-22) : 발신자_다윗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2b)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7a)

   “외롭고 괴로우니”(16)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고난에서 끌어내소서”(17)

 

다윗이 기도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일이 무엇이며, 누구 때문이며, 그것이 언제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이 시를 읽고 묵상하는 일을 곤혹스럽게 한다. 즉 무엇을 두고 수치’(2,3,20)라는 고난’(곤고, 환난, 17,22)에 처해 있다고 하는지, 또한 다윗을 탄식하게 하는 원수’(2,19)가 누구인지, 그리고 이 시편이 쓰여진 시점이 다윗의 생애 중 어느 때인지, 매우 중요한 이런저런 것들이 전체적으로 분명하지 않다는 얘기다. 놀랍지만 이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윗은 기도중이다. 평안할 때도 아니고, 형통할 때도 아니고, 승승장구할 때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의 무릎을 꿇는다. 지극히 당연한 신앙의 공식이다. 하지만 실전에서 경험하는 것과 연결해 볼 때 이러한 때에 기도의 자리에 나아간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건 아니다는 점에서 다윗의 기도의 영성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말씀이다. 그것도 뭔가 암담한 때였음에도 모든 희망을 하나님께만 두고 있으니 말이다.

원수들’(2) 때문에 시계(視界)가 불투명함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무게 중심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라고 고백할 만큼 견고하다. 그러니까 삶의 자리가 끊임없이 흔들리는 상황이었지만 주를 향한 소망에는 변함이 없는(4), 주의 임재와 진리에로의 인도함을 쉼 없이 구하는(5), 그럼에도 그 근거를 자신의 열심에 기초하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에 의지(의존)하는 마음, 이것이 원수들 때문에 당할지도 모르는 수치와 부끄러움 앞에서도 하나님을 구하는 다윗의 중심이다.

한편 다윗은 원수들로 말미암아 문제가 터진 시점에서부터 지금 25편에서 기도하고 있는 때까지를 품고 있다가, 좀 더 한 차원 깊게 들어간다: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7a) 이렇듯 회개의 스펙트럼이 넓다. 그만큼 영적으로 민감하다는 얘기다. 고난의 중심부에서 자신의 죄를 생각하고 품을 수 있다는 점, 고통이 주는 강력한 유익이지 싶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 앞에 비춰본 다윗의 모습이다(16-22). 하지만, 동시에 그는 정직하다. 이처럼 기도하고 있음에도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17a)라고 고백하고 있음에서 그렇다. 그럼에도 이런 치열한 곤고와 환난 중에도 기도의 무릎을 포기치 않는다. 참으로 놀라는 부분이다. 계속해서 그는 원수들로부터 영혼이 지켜지기를 간구한다(19-20a). 하나님의 보호하심만이 희망이기 때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21).

   

 

기도신학(8-15) : 수신자_하나님

 

   죄인들에게 하나님은 누구신가?(8-9)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누구신가?(10-15)

 

다윗은 자신을 기도자로 세워 놓고서, 이 통로를 통해 다시 새롭게 하나님을 묵상해 간다. 놀라운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그림(앵글)이지만 -죄인들 vs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자신을 겸손하게 양쪽 모두에 투영시키고 있음이다. 이를 통해 다윗은 자신은 물론 모든 기도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해야 하는가를 배우게 만든다. 특별히 고난의 터널을 통과해 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간증을 나눔으로써 동반자적 마음이 귀해 보인다.

크게 두 가지 면에서다. 먼저, 죄인들에게 하나님은 누구신가?(8-9) 하나님 앞에 기도의 무릎을 꿇는 사람은 가장 정직한 사람이다. 자신이 죄인임을 생생하게 절감하기 때문에 그렇다. 동시에 하나님 쪽에서 보자면, 하나님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진리로 그들을 교훈하시는 분이시다. 죄 아래 있는 그의 오늘을 진리로 품어 내일의 영광을 내다보시는 분이시기에 가능한 일 아닌가.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탕자의 아버지시다.

둘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누구신가?(10-15) 다윗은 의인된 죄인’(11)이라는 역설적 신분에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신뢰하는, 그래서 찾고 두드리며 나아가는 하나님은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10)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다윗의 희망이다.

놀라운 것은 지금 다윗이 간증하고 있는 하나님이다(12-13). 하나님이 생생하게 가르쳐 주시는 은혜 안에서 평안할 뿐만 아니라, 후손들의 미래까지를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을 소망하고 있음에서 그렇다. 비록 원수들 때문에 죄인이라는 연약함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강함 사이에서 몸부림치고 있을지라도 그는 하나님을 향한 고백에는 어떠한 흔들림도 용납하지 않는 저력을 보여준다(14). 그러니 늘 하나님이 보이는 것 아니겠나(15a).

 

 

부스러기 묵상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1)

 

비록 고난주의보 중이지만 다윗의 영적 컨디션은 맑다.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백전노장(百戰老將)의 여유로움이랄까. 아니다. 그 긴 고통의 터널을 통과해 오면서, 또한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동시에 하나님과 함께 했던 기나긴 여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도우심 안에 머무는 법을 배워온 생생한 신앙하기의 호흡에서 비롯된 결과일 것이다. 놀라운 것은 알알이 묻어나는 원수들과의 치열한 영적 전쟁임에도 그 흔한 불평 한마디 없다는 점이다. 물론 넘어지거나 실의에 빠져 허우적거린 흔적도 없는 것도 그렇다. 이게 다윗을 통해 맛볼 수 있는 고수의 넉넉함이다. 난 이런 다윗이 참 맘에 든다.

그에게는 그 흔한 호들갑도, 징징거리며 결국 자기 몫 챙기는 속보임도, 알량한 믿음을 무기 삼아 큰소리치는 돈키호테적 몰상식도, 하나님 눈치 보며 그분 주위를 빙빙 도는 천박스러움도, 부끄러운 과거를 눈물로 비벼서 동정을 유발하려는 삼류풍 처신술도, 어떻게든 과거를 좀 미화시켜서 지금의 초라함을 감추려는 허세도, 어떻든 하나님 이용해먹기라는 교묘한 낡은 상술을 동원하여 자기 뱃속 챙기는 파렴치함도 거리가 멀다.

다윗은 자신의 전부를 자기 자신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 앞에 벌거숭이로 선다. 감히 그분 앞에 뭘 숨기고, 속이고, 위장할 수 있는 게 있을까. 그는 지금 한 사람의 성도의 자리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없이 평안해 보인다. 실은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긴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정말이지 이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과는 바꿀 수 없다는 가장 소박한 마음의 고백, 그게 절들 사이에서 묻어나는 향기다.

결국 지나고 보면 다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한 것들임에도 허둥거리는 부끄러움이 다윗의 얼굴을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사는 나약함이 자꾸만 다윗에게 반사되어 묵상의 창에 비춰진다. 어찌할까. 이런 나를 묵상과 기도의 손에 올려놓고 조용히 주님을 바라본다. 이런 나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용납해 주시는 주님이시기에 안심이다. 나를 나보다 더 귀히 여겨주시는 주님이심을 조용히 묵상해 본다. 다윗처럼 내 영혼에서부터 토해내는 진솔한 기도, 오늘따라 그게 참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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