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자의 영광(시 24.1-10)

  20201014(묵상)

  

 

 

예배자의 영광

Ps. 24.1-10

  

   본문 관찰

 

   하나님(1-2): 창조

   이스라엘(3-6): 예배

   언약궤(7-10; 삼하6.12-15 참조): 영광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통치는 어디까지인가?(1-2)

그 하나님을 누가 섬길 수 있는가?(3-6) 다시 말하면, 무슨 권리로 그분을 예배하는 자로 부름 받는 영광을 얻게 되는가? 다윗은 하나님께,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정결한 자로 그분 앞에 선다. 이것이 다윗이 본 예배의 거룩이자 영광이다. 이것이 또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언약궤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대한 거룩한 분위기다(7-10).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준비된 바로 그 예배자에 의해 영광의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행진이 시작된다(7-10). 이렇듯 예배자가 되어 영광의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장면과, 예배자를 맞으시는 하나님이 함께 만나는 장면에서 예배의 영광을 보게 된다.

 

 

예배의 주인이신 하나님(1-2,7-10)

 

다윗이 예배자가 되어 부르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세상(온누리), 그 안에 가득한 것들과, 그 안에 사는 모든 것들의 주인이시다(1). 피조물의 존재 의미는 창조주를 기억할 뿐만 아니라 그를 예배하는데 있다. 그분은 온 인류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영광의 왕이시다(7-10). 다윗은 성막(성전)으로 들어가는 언약궤의 행진을 피조물이면서 동시에 예배자의 자리에서 노래한다. 여기에는 예배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마음이 엿보인다.

보통 보이는 형식(언약궤)만이 우선될 경우 내용, 즉 보이지 않는 본질(하나님)이 간과될 경우가 많다. 여기가 보통의 예배자들의 실수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다윗은 이 둘 다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예배자의 내면세계만이 아니라(3-6), 그것이 드러난 분위기 역시 밝고, 따뜻하고, 즐겁고, 행복하다(7-10). 이것이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의 영성이어야 한다.

   

 

예배자(Worshipper, 3-6)

 

   손이 깨끗한 자

   마음이 청결한 자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는 자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

 

피조물인 다윗이 조물주이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누구에게 예배자의 영광이 주어져야 하는가? 이 부분에서 다윗의 신학은 분명하다. 마음(심령), 의지(공의), 입술(진실), 그리고 손(행동)이 깨끗한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예배하고 찬송하는 자리에 설 수 있다고 선언한다. 다시금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예배자의 언행심사(言行心事)를 살피신다. 사람은 외모도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삼상16.7b). 다윗은 선지자로부터 첫 번 기름부음을 받게 되었을 때 이점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사람이다(삼상 16.1-13 참조). 그는 일찍이 하나님의 기준을 알았고, 때문에 성막을 향해 나아가는 길목에서 변할 수 없는 선명한 기준을 다시금 재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부스러기 묵상

 

다윗의 예배는 매우 밝고 경쾌하다.

어떤 의식과 형식에 제한을 받아 순서와 절차에서만 매끄러운 분위기와는 달라 보인다. 다윗의 생애와 시편 24편이, 특별히 7-10절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장면은 아마도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오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삼하 6).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지만 하나님이 영광의 왕이심을 선포하고 찬양하는 다윗, 그는 지금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로 그분 앞에 서 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매우 자연스럽고, 열정이 넘치며, 살아있고, 기쁨과 감사와 은혜가 넘치는, 그야말로 성령충만한 예배자의 모델이다.

한편 그런 다윗과 전혀 반대편에 서 있는 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는 다윗의 아내인 사울의 딸 미갈이다. 그녀는 예배자로 실패한다. 다윗과 영적인 눈높이를 맞추는 일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어떤 흔적도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예배에 성공한 다윗을 비난하고 무시한다. 한 마디로 예배 잘 드린 사람을 비난하고, 예배를 모독한다.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다윗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삼하6.14,15)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삼하7.21,22a)

 

다윗이 제시한 예배자의 신학(3-6)에 비춰볼 때 미갈의 언행심사(言行心事)는 모든 면에서 함량미달이다. 그러니 예배의 기쁨과 감격, 예배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와 같은 예배 안에 흐르는 은혜에 함께 참여하는 일에 철저하게 멀어져 있는 것이다. 자신이 보는 바로 앞에서 하나님을 향한 영광의 예배가 이뤄지고 있음에도 그 예배를 쓰레기 취급하는 영적 무지, 이것이 미갈의 이어지는 평생을 좌우하는 씨앗이 되었다(삼하6.23).

다윗과 같은 감동과 감격이 넘치는 살아있는 예배와 예배자로 서는 일은 미룰 수 없는 거룩한 소명이다. 창조주 하나님(1-2) 앞에 나아가 예배자로 서는 일에는 먼저 지불해야 할 선명한 대가가 있다(3-6). 바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예배자의 영광과 축복을 허락하신다(7-10). 다윗의 시가 나는 물론 교회의 예배가 되는 거룩한 부담 앞에 서는 아침이다.

 

  

제목 날짜
용서의 노래(시 32.1-11) 2020.10.19
소용돌이치는 여정에서도!(시 31.1-24) 2020.10.19
나는 교회를 사랑합니다(시 30.1-12). 2020.10.19
여호와로 충분합니다!(시 29.1-11) 2020.10.18
기도의 영성(시 28.1-9) 2020.10.15
구원을 노래하다(시 27.1-14). 2020.10.15
하나님만이 희망이다(시 26.1-12). 2020.10.15
긍휼의 하나님 앞에서 간구하다(시 25.1-22). 2020.10.15
예배자의 영광(시 24.1-10) 2020.10.14
여호와는 목자, 나는 양무리(시 23.1-6) 2020.08.17
고난과 감사의 이중주.二重奏(시 22.1-31) 2020.08.17
승리찬가(시 21.1-13) 2020.08.17
기도합주회(시 20.1-9) 2020.08.17
다윗의 계시교향곡(시 19.1-14) 2020.08.17
크신 일을 이루신 하나님(시 18.25-50) 2020.08.17
하나님이 하셨나이다!(시 18.8-24) 2020.08.17
하나님이 나의 힘입니다(시 18.1-7) 2020.08.17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시 17.1-15) 2020.08.17
하나님만을 신뢰하겠습니다(시 16.1-11). 2020.08.11
예배자로의 초대: 하나님이 명하시다(시 15.1-5). 2020.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