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신 일을 이루신 하나님(시 18.25-50)

20200520(묵상)

  

 

 

크신 일을 이루신 하나님

Ps. 18.25-50

  

   본문 관찰

 

   공의로우신 하나님(25-30)

   능력자이신 하나님(31-45,47-48)

   찬송 받으실 하나님(46,49-50)

   

 

다윗의 하나님

 

사울왕가의 몰락에 대한 다윗의 시각이 강렬하게 그러진다.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공의신학(公義神學)을 절묘하게 반영시킨 통찰을 통해서다(25-30). 하지만 다윗은 이를 매우 조심스럽게 간증 형식에 담아낸다. 승리의 주체가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초지일관 분명하게 고백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그 원수들에게서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마치 영상을 보는 것 같이 생생하게 토해낸다(31-45,47-48).

이것이 목동을 들어 여러 민족의 의뜸’(43)으로 삼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윗의 영성이다(46,49-50). 보통의 경우 뭔가 잘 되는 것 같으면 자기 잘난 맛에 취해 기우뚱거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언행일치(言行一致)의 한 모델을 보는 기쁨이 여기에 있다. 다윗이 참 멋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울 vs 다윗

      사울: 사악한 자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17) / 하나님을 떠난 악(21)

      모든 규례와 율례를 버린 자(22) / 사악한 자(26) / 교만한 눈(27)

         → 하나님: 붙잡아 주시고, 건져내시다(16)

                         인도하시고, 구원하시다(19)

 

      다윗: 깨끗한 자

      의(20a,24a) / 깨끗한 손(20b,24b) / 도를 지킴(21)

      자비로운 자(25) / 완전하 자(25) / 깨끗한 자(26)

         → 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성벽)을 뛰어넘나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25-30)

 

하나님은 누구신가? 사울왕가는 왜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가? 놀랍게도 다윗은 이 둘을 절묘하게 연결한다. 이것이 문제를 통찰하는 다윗의 시각이다. 든든한 것은 이러한 통찰력의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고백이 자리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사건(사람)을 읽어내는 다윗의 마음과 영혼의 울림을 배우게 된다.

다윗이 사울왕가의 참담한 종말을 보면서 동시에 경험을 통해 생생하게 깨닫게 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깨끗한 자’(자비로운 자, 완전한 자)는 구원하시고 사악한 자’(교만한 눈)는 낮추심으로써 공의의 빛을 밝히시는 분이시다(25-28). 결국 다윗은 사울(적군)의 포위망을 넘어 방패 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게 된 이유를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하게 의탁한 결과인 하나님의 공의의 성취로 이해하고 있다(29-30). 하나님을 읽어낼 수 있는 다윗의 영성이 잔잔한 감동으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능력자이신 하나님(31-45,47-48)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31)

 

하나님의 능력을 주께서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35a), 또한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48a)라고 고백하는 다윗 언어에서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시각이 느껴진다. 다윗의 하나님은 다윗의 ’(32), ‘’(33), ‘’(34), ‘걸음’(36)은 물론 당신의 능력의 오른손으로 그를 붙드시는 분이시다. 그는 생사(生死)의 무수한 갈림길에서 이처럼 지키시며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동시에 이와 비례해서 비참하게 몰락해 가는 사울왕가(원수들, 치는 자들, 미워하는 자들, 대적하는 자들, 포악한 자, 37,39,40,48)를 또한 생생하게 바라보았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과 원수들 사이에서 자기 백성들 편에서 일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보았다(40-48). 하나님의 반대편에 선 자들을 어떻게 심판하시며(40-42), 동시에 무명의 초라한 목동이었던 자신을 또한 어떻게 여러 민족의 으뜸’(43)으로 세워가시는가도 역시 보았다. 그 과정에서 더 놀라운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방인, 43b,45,49)들에게까지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신 것이다. 이렇듯 다윗은 이미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크신 일까지를 바라보는 놀라운 고백을 자기 간증에 담아내고 있다.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다윗의 영적 통찰이다.

   

 

부스러기 묵상

 

   “여호와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46)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15.9)

 

다윗의 하나님은 찬송 받으실 하나님이시다(46,49-50).

이는 오랜 망명생활을 통과해 오면서 세파에 찌들어 버리지 않은 승리자만이 토해 낼 수 있는 살아있는 간증이다. 다윗은 사울왕가와의 전쟁에서 하나님을 붙들었고,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지키셨다. 어떤 형편과 처지 속에서도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 하나님은 바로 그 사람 편에 서서 그의 결정과 이에 따른 삶이 옳았음을 밝히 드러내 주신다. 지금 다윗이 그러하다.

찬송은 승자(勝者)의 몫이다. 이 찬송의 무대에 서 있기까지 다윗의 달려온 인생행로(人生行路)를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는 다윗의 마음을 생각한다. 다윗은 안다. 원수들이 왜 포말처럼 사라졌는가를, 자신이 왜 승리하게 되었는가를, 이방인들까지 하나님께 나아오게 되는가를 다윗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읽어내고, 깨닫고, 보고 있다. 승자의 찬송은 아무 대가 없이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삶으로 연주해 낸 찬양이 가장 힘 있고 또한 값진 것이다. 지금 다윗이 그렇다.

한편 49절이 로마서 159절에 인용되고 있음이 흥미롭다. 더 놀라운 것은 로마서의 문맥이다. 사실 신약의 빛에 비춰 구약을 읽어낸다는 것은 구약의 고유한 의미를 흔들어 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은 완성될 계시를 향해 점진적으로 그 빛을 그러내고 있다는 것을 역시 받아들이게 된다면 지금 다윗의 고백은 -물론 그가 이것까지를 알았을까는 또 다른 토론이라 할 수 있을지라도- 예사롭지가 않은 게 사실이다.

바울의 통찰과 시편을 이어본다면, 메시야를 통해 돌아올 이방인들은 다윗의 승리를 통해 하나님과의 거리를 좁히게 된 이방인들은 메시야를 통해 돌아올 이방인들의 희미한 그림자가 된다. 이는 메시야(그리스도)의 조상인 다윗, 다윗의 자손인 그리스도(메시야)라는 신학의 앵글에 비춰볼 때도 그 의미는 비슷하다. 공의가 사람(다윗)에 의해 좌우 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의 손에 의해 다스려지기를 기대했던 다윗에 의해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게 되었다. 이렇듯이 다윗시대나 주님이 공생애를 사셨던 때나 어김없이 원수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실패케 하려고 몸부림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삶의 표준은 다윗처럼이다.

지금 우리시대 역시 하나님의 공의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집행되고 성취되기 위해서는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릴 사람들이 요구된다. 세상이 아무리 자기들의 방식과 논리를 동원해서 다윗의 후예인 성도들을 공격해 온다 해도 이 영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방식대로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그 길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다윗이 그러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다울 하나쯤은 단칼에 날릴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았다. 이것이 다윗에게서 배우는 시대를 읽어내는 거룩한 눈이다.

결국 하나님이 승리하신다는 확신, 역사의 물꼬를 그렇게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신뢰, 그렇다면 다윗처럼 사는 거다.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라 목이 터져라 찬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인자와 구원을 베푸신다(50). 정말 할렐루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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