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찬가(시 21.1-13)

20200523(묵상)

  

 

 

승리찬가

Ps. 21.1-13

  

   본문 관찰

 

   승리의 추억(1-6): 과거

   오늘의 고백(7): 현재

   승리의 확신(8-13): 미래

   

 

승리의 깃발 앞에서

 

지난 세월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아름답다.

하나님이 영원토록’(4,6) 변함없으시듯 다윗 역시 오늘이 있기까지 지나온 세월을 한결 같은 기쁨으로 추억해 낸다. 그는 왕이 되기 위하여 움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신뢰로부터 떨어져나가지 않으려고 지금껏 애써왔다(1-7/A). 동시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8-13/B). 지금 다윗은 오늘에 비춰본 뒷모습과(A), 역시 오늘에 비춰본 미래가 연속적이기 위해서 원수들’(적들, 8)DNA를 뿌리 뽑고자 하는 결단을 분명히 한다(B). 망원경으로 바라본 내일이 언젠가 오늘처럼 바라볼 수 있는 어제가 되기를 말이다.

 

 

뒷모습보기(1-7)

 

다윗의 기쁨과 즐거움의 근원, 평범하지만 놀랍게도 하나님이다(1). 어찌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고백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는 행복의 이유를 자신의 어떠함에서 찾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 이 찬양을 고백하는 시간 앞에 서기까지 지나온 세월을 이처럼 추억(되돌아보기)할 수 있음이 참 아름다워 보인다. 그만큼 다윗의 내면은 하나님으로 충만해 있고, 그것이 바로 오늘까지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본다.

오늘이라는 창에 그려진 기쁨이라는 밑그림을 좀 더 살펴보자: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의 소원뿐 아니라 입술의 소망까지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2). 다윗은 스스로 힘에 의해 왕을 만든 게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왕이 되어졌다(3). 때로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의 순간이 질풍노도(疾風怒濤)처럼 엄습해 올 때에도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맡겼고, 하나님은 다윗왕가의 언약에 신실하셨다(4-7, 삼하7.8-16 참조).

영원한’(4,6, 삼하7.13,16 참조)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다윗은 이 시편을 찬양하는 오늘까지 흔들림 없이 살아올 수 있었다(7). 왕권이 다윗을 지켜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을 신뢰하는 다윗뿐 아니라 그의 나라까지를 견고하게 시키신 것이다. 이것이 지난 세월을 기쁨으로 추억할 수 있는 이유다(1,7).

 

 

앉아서 내일을 본다(8-13).

 

인생 후반전’(8-13)에 대한 다윗의 고백에는 힘이 넘친다. 왜냐하면 인생 전반전’(1-7)을 승리케 하신 그 하나님을 지금 이 노래를 부르는 오늘까지 경험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을 당당하게 하는 왕가(王歌)의 멜로디이다. 이렇듯 뿌리가 견고한 만큼 내일은 희망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탄하여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거기에도 원수들, 그러니까 다윗을 미워하는 자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을 것이다(8). 다윗은 자신을 해하려 하는 음모를 꾸민 그들을 찾아낼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과 그들의 후손까지를 심판하는데 이때 하나님께서도 진노하사 그들을 소멸할 것이다(9-11). 여기서 다윗은 원수들에 대한 심판이 공정해야 함을 잊지 않는다(12).

역시 다윗이다: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13b) 이렇게 해서 1절과 13절이라는 창을 통해 어제와 내일을 하나님 안에서 바라보는 것에 견고하게 서 있음을 주님께 아뢴다. 모든 것을 하나님 안에서 읽어내려고 하는 다윗의 신앙을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묵상이다.

   

 

부스러기 묵상

 

다윗이 지금 이 시어(詩語)에 담아낸 왕은 누구일까?

물론 다윗의 시’(표제어)이기 때문에 분명 자기 자신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자기만을 지칭하고 싶어 하지 않은 듯하다. 앞으로 이어질 다윗왕가에서 동일하게 체험되어지는 고백과 찬양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보는 전반부(1-6)를 이처럼 한발 뒤에 서서 이야기하는 것 같이 쓴 부분을 읽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

지나온 인생시간표를 다윗처럼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나님과 함께 호흡한 정거장들이 있음이 그렇고,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에 와서도 그걸 하나님과 연결해서 동일하게 고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처음 생각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기에 더 이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좀 거시기한 말이지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하지 않나. 다윗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지난 세월들이 이처럼 읽어진다가 아니다. 그가 삶으로 맞았던 바로 그 시간에도 하나님은 지금 고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는, 때문에 내일도 역시 지나놓고 보면 오늘처럼 고백되리라는 걸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다윗이 서 있는 영성이다.

오늘 나의 형편이 무너지면 하나님도 흔들리는 좁쌀 같은 신앙에서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경지가 아닌가. 다윗이니까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 네 안에 꿈틀거리는 알량한 죄성(罪性) 때문이다. 다윗이 그럴 수 있었고, 또한 그에게 이처럼 은혜 베푸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내게도 이 찬양과 간증이 고백되어야 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한편 나도 나지만, 동시에 나를 다윗처럼 살아가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시험하는 원수들’(미워하는 자들, 8-9)과 그들의 후손(모리배, 10)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 깨어있음이 내일의 나까지를 다윗스럽게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다시금 이 기도를 품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겠다. 다윗처럼 사는 것은 고사하고 그의 고백을 이해하는 것을 위해서 읽고 또 읽어도 부족함을 느끼는 시편 21편이다. 그러니 다윗처럼 사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살았음을 고백하는 것, 동시에 그걸 기초로 또 그렇게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실전인가를 생각한다. 이것이 연약한 내가 아닌 완전하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는 절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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