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안에서 하나님을 본다(시 10.1-18).

   20200510(묵상)

  

 

 

문제 안에서 하나님을 본다.

Ps. 10.1-18

  

   본문 관찰

 

   악인

   여호와

   가련한 자

   

 

선악대로(善惡大路)

 

()과 악()의 싸움은 끝날 줄을 모른다.

악인(악한 자, 세상에 속한 자, 18)은 공격적이고, 그럴수록 이에 맞서 싸우고 있는 외로운 자(가련한 자)는 하나님을 향해 탄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둘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시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과연 하나님은 이를 어찌하실 것인가. 한편, 그 이전에 악인을 향한 탄원하는 사람의 시각, 내용, 목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과연 무엇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가를 아는 것, 이것이 문제 앞서 선 자가 찾아야 할 해답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이 시를 통해 독자인 내게 말씀하고 싶으신 하나님의 메시지다. 오늘 나 역시 당당하게 악인 앞에 선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악인의 노래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4a)

   “하나님이 없다.”(4b)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라.”(6)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11)

   “주는 감찰하지 아니하리라.”(13)

 

악한 자(2,15), 악인(3a,4,13,15), 탐욕을 부리는 자(3b)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시인은 악인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일에 실패하지 않는다: 교만(2), 가련한 자를 압박하고 잡음(2,9), 마음의 욕심을 자랑(3a), 교만한 얼굴(4),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7a,10),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7b), 하나님을 멸시(13), 세상에 속한 자(18) , 비슷비슷한 표현이지만 악인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난다.

악의 끝은 어디일까. 놀랍게도 하나님까지 겨냥하고 있다. 악인은 하나님을 향해 입술로는 뻔뻔스럽게도 라 하면서 하나님까지 멸시한다(4,11,13). 정말이지 겁을 상실해도 유분수가 아닐 수 없다. 마침내 적이 노출되었다. ()을 알아야 승리한다는 싸움의 법칙은 영적인 세계에서도 동일하기 때문에 이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필수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하나님에 대한 거짓된 지식을 진실인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오해케 한다. 이 전략에 말려들고 나면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대결하는 구도로 돌변한다. 이것이 사탄의 전형적인 전략 가운데 하나다. 마땅히 악인과 싸워야 할 영적전쟁의 칼끝이 하나님을 겨냥하는 꼴이 되는 셈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싸움이 얼마나 많이 자행되는가.

본문에 발표된 악인의 노래는 지금도 영적전쟁(靈的戰爭)이라는 치열한 싸움터에서 자주 듣게 되는 멜로디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말하려는 악인의 악성 루머 전략, 거기에 이것이 얼마나 가당찮은 헛소리인가를 아는 시인이 토해내는 악인을 향한 선명한 외침, 이 둘이 만들어 놓은 팽팽한 긴장감, 이것이 시인만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가 늘 언제나 대면하는 현실이다.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하나님까지도 이용해 먹는 악인의 몸부림에서 연민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그는 은밀한 곳’(8,9)에서 발 빠르게 움직인다. 세상에 어떤 멍청한 악인이 자신을 가리켜 나는 악인이다.”라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겠는가. 그런 자가 마치 먹이감을 보면 정확하게 움직이는 사자처럼 움직이고 있으니 정신을 차리고 근신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가련한 자의 탄원

 

   가련한 자들(2,8,9,10)

   무죄한 자(8)

   가난한 자들(12)

   외로운 자(14a)

   고아(14b)

   겸손한 자(17)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18)

 

악인의 파도가 크면 클수록 거기에 노출된 자를 구원할 수 있는 출구는 오직 하나다. 이 부분이 매우 절묘한 반전이다. 악인은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4)를 서슴지 않지만 가련한 자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는데(1,12) 여기가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마침내 입이 열리고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갈망함이 불을 뽑는다. 악인의 전방위 공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크고 확실한 안전감인가.

시인은 악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이를 기반 삼아 그의 정체를 세상에 밝히 드러낸다(1-11). 이 부분이 주는 복된 메시지는 우리가 싸우는 대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의 중요성이다. 악인에 대해 선명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무엇보다 하나님과 관계된 신학적 지식에 기반을 둔 시각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지식이다. 따라서 시인에게서 느껴지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힘, 이것이 악인을 제압하는 결정적인 힘임을 깨닫게 된다.

시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영적 분위기(1-11)를 밝히 드러낸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가 다스려지는 회복이 있기를 갈망한다(12-18). 이것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부르는 이유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악인을 꺾는 것이 약한 자들이 설 수 있는 길이기에 그렇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악인의 소용돌이를 주께서 보시며(14), 거기에 부표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 같지만 여전히 악인의 길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난한 자들을 잊지 않으시기를 빈다(12). 그리고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시는 것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통치와 공의가 회복되는 길임을 신앙고백에 담아 하나님께 외친다.

하나님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악인의 득세 때에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그분으로부터 오는 진정한 회복을 꿈꾸는 시인의 신앙이 부럽다. 세상이 악인들에 의해 요동치고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이 희망임을 믿고, 그를 피난처 삼는 자의 영성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묵상이다. 하나 더 놀라운 것은 악인에게서 자신을 구하여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 아닌, 가련한 자들(2,8,9,10)로 대표되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중보하는 삶을 사는 시인에게서 내가 품어야 할 기도의 용량을 생각하게 된다.

   

 

부스러기 묵상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1)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12)

   “주께서는 보셨나이다.”(14a)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17)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에게는 절망이란 없다.

혹 고통스러운 고난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닌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찾고 구할 수 있는 신앙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뒤에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디 하나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장감 넘치는 현실임에도 하나님을 향해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자,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그 사람의 편이시다. 하나님은 시편 10편을 통해 오늘 우리의 삶 역시 이래야 된다고, 생이 위기로 넘실거릴지라도 하나님만이 희망임을 믿는 자의 심장을 보여주시면서 말이다. 언제쯤에야 나도 시인처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노래할 수 있을까.

거침없는 악인의 언행 앞에 힘 없이 홀로 서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시인은 이 모든 문제를 안고 하나님 앞으로 달려 나간다. 이게 그가 토해내는 기도다. 그는 악인 앞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럴수록 더 하나님께 매달린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읽으면 시인은 중보자로 서 있다. 그는 악인의 손아귀에서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품고 있다. 저들을 둘러싼 악인의 계략이 하나님의 힘에 의해 무력화되기를 구한다. 이 부분이 절묘하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악과 악인을 대항하기 위한 물리적인 힘을 키우고 준비하는 것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 아닐 뿐더러 또한 우선순위는 더욱 아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눈, 현실을 읽어낼 수 있는 영성, 악과 악인의 경거망동(輕擧妄動)을 해석할 수 있는 안목, 그리고 이를 내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풀어주시기를 구하는 기도, 이것이 내가 품고 씨름해야 할 값진 흔적들이다. 시인처럼 약자들을 바라볼 수 있는 통찰을 구한다. 내 마음과 생각의 대상이 이처럼 낮은 자들을 향해 있어야겠다. 이것이 이 시편을 통해서 기대하시는 주님의 마음이니까.

악인들의 득세 앞에서도 이렇듯 평상심을 잃지 않고, 그러기에 감정에 휩싸이지 않는 균형감이 나의 연약함을 더 드러나게 한다. 악인 앞에 먼저 내 마음의 평온함부터 흔들려 버리는 자충수가 얼마나 못난 반응인지를 세삼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더욱 악인의 꼼수와 못된 심보에서 비롯된 사악한 시비를 하나님께 맡기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를 기대하시는 것 아닌가. 주께서는 이런 치열한 영적 전쟁 앞에서 기도의 문을 열도록 은총 앞에 세우신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서 악인의 패배와 기도자의 승리를 준비하고 계신다. 마침내 시편 10편의 문이 내 앞에 열린다. 이것이 시인의 기도에서 배우신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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