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0(묵상)
다시 의인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가.
Prov. 21.15-31
본문 관찰
악인 – 독생공멸(獨生共滅)
의인 – 상생공생(相生共生)
악인 vs 의인
다시 악인대로(惡人大路)와 의인대로(義人大路)가 펼쳐진다.
악인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낭비하고(17,20b) 또한 독불장군처럼 교만(24)으로 게으르고(25), 욕심만 부르며 살다가 결국 망한다(26). 하지만 의인은 자신이 가진 제물(20)을 쾌락과 향락에 낭비하지 않고(17), 공의와 인자(자비)를 이웃과 더불어 실천하며 산다(21).
악인 – 독생공멸(獨生共滅)
∙정의(공의)가 이루어지면 악인은 패망한다(15).
∙의인(정직한 사람) 대신 치르는 몸값이 된다(18).
∙그가 드리는 제물이 역겹다(27).
∙가짜 증인은 망한다(28a).
∙얼굴이 굳어진다(29a).
정의(공의)와 인자(자비)라는 앵글에서 볼 때 악인의 모습은 분명하다. 공의와 인자가 누룩처럼 영향력을 이룰 때 악인은 파멸에 이르고 만다(15). 이는 정직한 사람인 의인을 대신해 치르는 몸값일 뿐이다(18). 그럼에도 주제를 모르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하게 행동하는 사람, 그는 교만하고 고만하여 냉소적인 사람”(24, 우리말성경)으로 넘치는 교만으로 행한다. 결국 그것이 자신을 죽이는 부메랑이 될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25).
의인 – 상생공생(相生共生)
∙정의(공의)가 이루어지면 의인은 기뻐한다(15).
∙그의 말에는 힘이 있다(28b).
∙그의 길이 순탄하다(29b).
의인은 언제나 정의(공의)가 이루어지는 곳에 서 있다(15). 그는 자신을 절제할 줄 알며(17,20), 입과 혀를 지킴으로서 이를 통해 자신을 환난(재앙)으로부터 지켜낸다(23,28b). 놀라운 것은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위치와 형편을 정확하고 정직하게 읽어낸다. 교만하지 않으며, 자만하지 않으며, 하나님께 악인처럼 언행하지 않는다. 이 지혜의 잠언만큼 하나님을 향해 온 몸과 마음과 영혼을 집중한 고백이 있을까:
“어떤 지혜나 깨달음, 계획도 여호와께 대항할 수 없다.
전쟁을 위해 말이 준비돼도 승리는 여호와께 달렸다.”(30-31, 우리말성경)
악인과 의인이 자기의 언행으로 자신의 생사(生死)의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게 아니다. 피조물이 조물주를 능가할 수 있겠는가. 이것을 알고 믿고 고백하는 자가 의인이다. 하지만 악인은 어리석고 교만하여 하나님이 설 자리를 자신이 차지한다. 마음의 중심의 자리에 자신이 앉아 이러쿵저러쿵 헛되고 죄악된 말들을 토해낸다. 가히 죽음으로 가는 길을 스스로 자청하는 셈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끝이 사망이고 심판인 줄 모른다. 그래서 악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