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S TO GOD!(시 37.1-40)

20201028-29(묵상) 양무리교회(20191117)

  

 

 

THANKS TO GOD!

시편 37.1-40

  

   [관 찰]

 

   의인():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9)

      여호와께서 붙드시나니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17-18)

      환난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 것이나(19)

      주의 복을 받은 자들 땅을 차지하고(22a)

      넘어지나 붙드심이로다(24)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삼을 보지 못하였도다(25)

      영원히 살리니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27,28,29)

      악인의 손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33)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40)

         → 불평하지 말며(1,7,8)

             여호와를 기뻐하라 즐거워하리로다(4,11)

             영원하리로다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18,27,28,29)

  악인(): (불의)을 행하는 자들(1)

      속히 베임을 당할 쇠잔할 것임이로다(2)

      악한 꾀를 이루는 자(악을 행하는 자) - 끊어질 것이나(7,9)

      주께서 그를 비웃으시리니(13)

      멸망하고 없어지리로다(20)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 - 끊어지리로다(22b)

      악인의 자손(미래)은 끊어지리로다(28b,38)

         → 부러지나 멸망하고 없어지리로다(15,17,20)

             끊어지리로다(9,22,28,34,38)

 

 

영원히 주의 복을 받은 자

 

다윗은 30세에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되어 40년 동안 통일왕국을 다스린다. 본문 중 내가 늙기까지”(25a)로 봐 아마도 인생후반전인 60세를 전후한 때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지나온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돌아보는 간증(회고록, 보고서)이라 할 수 있는 말씀이다.

 

    시인은 인생을 두 부류로 나눈다.

    ❶ 의인(성도, 주의 복을 받은 자; ):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9)

       → 명가(名家): ‘영원히

    ❷ 악인(주의 저주를 받은 자; ): (불의)을 행하는 자들(1)

       → 멸문(滅門): 끊어지리로다

   

 

의인():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9)

 

[1] 먼저 다윗은 자신을 존재됨을 하나님 앞에서 잘 이해하고 있다. 그는 복을 만드는 자가 아니라 받는 자다(22a). 누구에게인가? 하나님께로 부터다. 그렇다면 복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자신이 아무리 의인답게, 성도답게 산다할지라도 그것이나 그것으로부터 복이 만들어지고 또 오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자손으로 이어지는 후대의 복 역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선물이다. 다윗은 이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정직하게 잘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에는 자수성가(自手成家)란 없다. 있다면 신수성가(神手成家)가 있을 뿐이다. 인간이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자신이 얻고자 하는 복을 만들 수 있다면 인간이 곧 신이다. 신은 무용하다. 왜 그런가? 인간이 신이 할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럼 뭐하려고 신이 고고한 신으로 존재하고 살아가지 인간이 되어 그 생고생을 해 가며 복을 만들어 가는가. 그냥 복에서 복으로 직행하면 될 것 아닌가. 인간이 곧 신이라면 말이다.

 

일반 종교들 자신의 열심과 선행과 정성으로 자신과 자신의 자손들의 복을 만들어간다.

기독교 복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다.

  ➜ 만복의 근원 하나님! 복의 근원 강림하사 ~”

 

[2] 한편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26a)며 사는 균형 잡힌 의인()으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의 노정에 넘어지”(24a)는 일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26a절처럼 사는 게 의인인 것도 맞고, 그렇게 살아도 이런 의인에게도 넘어지는 좌절이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부분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벨런스를 잃어버리곤 한다. 의인으로 살면 넘어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러려고 마치 보험들 듯이 믿음생활을 한다. 그래서 반대 결과가 나타나면 여기서 그만 꼬인다.

자신의 전 삶을 드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자에게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고, 그 정도는 당연히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자신을 중심에 놓고, 자신도 뭔가를 했으니까 하나님도 그런 자신에게 뭔가를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소위 인간의 공로사상에 깊숙하게 빠져있을 때 반복적으로 발행하는 아주 나쁜 습관이다. 기독교의 무속화다. 하지만 다음 몇 가지 경우와 성경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아브라함처럼 살아도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려야 한다.

*모세처럼 살아도 40년 광야생활처럼 늘 백성들로부터 불평을 듣고 살아야 한다.

*스데반처럼 성령충만하고 설교자로 부름 받았어도 돌에 맞아 순교한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어도 고난을 받아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한다.

  ➜ 그러나 우리는 알고 믿는다. 이 모든 것이 영광이고 축복이었다는 것을!

 

[3] 하나님은 당신이 인정하는 의인스럽게 사는 복을 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그의 인생의 노정에 넘어지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보험회사 사장이 아니시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엎드려지지 아니”(24)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신다. 왜 그런가? 넘어지는 것은 의인()이지만 완전히 실패하지 않도록 붙드시는 것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24b).

*요셉처럼 노예, , 가정총무, 감옥을 통과해야 할 때가 있다.

*다니엘처럼 사자굴과 풀무불에 던져지는 시련을 통과해야 할 때가 있다.

*세례 요한처럼 목이 잘려 순교하는 죽음을 통과해야 할 때가 있다.

*바울처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할 때가 있다.

  ➜ 고난은 축복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하나님은 오늘 다윗의 간증을 들려주시면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는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로, 너의 인생을 그렇게 드리며 살라고 하신다. 다시 말하지만, 이처럼 사는 것은 넘어지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게 아니다. 의인으로 살아도 넘어지고, 휘청거리고, 고난과 눈물이 있다. 그러나, 진정 하지만 이처럼 말씀하신다: “삶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하며 롤러코스트를 탄 것처럼 끊임없이 흔들릴지라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달려가거라. 그리하면 너는 물론 너의 후손에게까지 주의 복을 받는 자의 영광을 영원히 허락할 것이다.” 이것이 흔들리는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고, 약속이다.

다윗이 그러했다. 그러기에 다윗은 인생 노년에 이 시편에 자신의 인생을 간증으로 담아낸다. 언젠가 우리도 이 말씀을 인생보고서에 담아 간증하게 하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기에 지금 비록 넘어졌다 할지라도 다시 일어나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로 서 보자. 하나님은 이를 위해 오늘도 예배자로 부르셔서 말씀하신다.

   

 

악인(): (불의)을 행하는 자들(1)

 

(불의)을 행하는 자들은 풀(푸른 채소)에 비유된다(1-2). 얼른 보기에는 잘 자라고, 곧 열매를 맺을 것 같은 형통처럼 보이지만 결국 베임을 당하고 시들어 쇠잔하게 될 것이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겉모양만 푸른 악인의 길이 형통하다는 것 때문에 악한 꾀를 행하는 자를 기웃거리며 불평하거나 시기하는 것으로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불평하지 말라!’(1,7,8) 악인의 결국은 끊어지고 부러져 멸망함으로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9,22,28,34,38 15,17,20).

새벽이나 이른 아침 안개가 온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동녘에 태양이 떠오르면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어진다. 악인과 악을 행하는 자들의 소망이 이와 같다. 그렇게 헛된 재물을 모으고(21), 가난하고 정직한 자들의 것을 빼앗고(14), 그래서 한 때 풍부함’(16)에 이르는 듯 보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주 하나님께서 저들을 비웃으시며 이 모든 것을 연기처럼 없어지게 하신다(13,20).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는 말씀이다.

 

 

부스러기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25)

 

다윗이 살아온 일평생 삶의 진솔한 고백을 들어보라.

무엇인가: ‘하나님은 의인의 편이시다!’(25) 그렇다. 하나님은 그와 그의 자손이 영원히 살게 하시고 또한 보호하신다(27,28,29). 따라서 잠시 잠깐인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며 바라볼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저들의 끊어짐과 멸망을 보는 것도 잊지 말 것을 말씀한다. 동시에 지금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의인들의 평범한 삶을 바라보는 일에 실패하지 말라 하신다. 비록 오늘은 가난하듯 보이지만 대()를 이어 영원히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을 보라고 말씀한다.

비록 늘 휘청거리며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들어와 있음이 기적 중에 기적이다. 더는, 오늘은 물론 어제와 내일을 하나님과 연결해 읽어내고 바라볼 수 있음이 또한 기적이다. 돌아보면 내가 나를 어떻게든 붙들고, 씨름하고, 땀 흘리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달려온 것 같은데, 놀랍게도 지나고서 오늘에 와 보니 이게 다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면 지금 이보다 더 큰 감사와 은혜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의인의 곁에는 악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늘 함께 계신다. 이것이야 말로 놀라운 은혜 아닌가. 악인의 소용돌이로부터 우리를 지키시며(피난처) 보호하시며(보호자) 영원한 하늘의 은혜로 이끄신다(인도자). 그러니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할 것도 없고, 원망하고 시기할 이유도 없다. 악인의 성공을 따라갈 것 없다. 묵묵히 의인의 편에서 동행하시는 주님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답이다. 잔머리 굴리다가 베짱이처럼 놀부처럼 허사가(虛事歌)나 부르는 인생으로 전락하지 않아야 한다. 제발 악인이나 의인을 설명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지 말자. 악을 버리고 의를 행하는 수준을 따라 살아가 보자. 이제 그럴 때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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