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과 악(惡)이 만나면 일어나는 일들(시 35.1-28)

20201025-26(묵상)

  

 

 

()과 악()이 만나면 일어나는 일들

Ps. 35.1-28

  

   본문 관찰

 

   선을 악으로 갚는 원수들: ‘그들

      → 다윗: 악을 선으로!

      → 하나님: 심판 & 저주

   

 

주의 공의대로 판단하소서.

 

사울과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방식이 달랐다.

다윗만 놓고 보자면, 그는 사울을 하나님이 세우신 종이라 보았고 따라서 그의 칼을 피했지 자신 역시 칼을 들고 사울과 대항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삶이라는 언행이 탄원시(저주시)라고 할 수 있는 이 시편에 잘 드러나고 있어 보인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신앙이 동반되지 않으면 이어질 수 없는 실천이다. 또한 어느 한 순간의 감정이나 생각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이 신앙이 자신을 지배하지 않으면 이 고백처럼 살아낸다는 것은 실행할 수 없는 언어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바탕을 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가 일치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선을 악으로갚는 원수들: ‘그들

 

   나와 다투는 자(나와 싸우는 자, 1)

   나를 쫓는 자(3)

   내 생명을 찾는 자들(나를 상해하려는 자들, 4)

   까닭 없이 나를 잡으려고 함정(그물을 웅덩이에 숨김)을 파는 자(7)

   불의한 증인들(11)

   내가 넘어짐을 기뻐하는 불량배(15)

   망령되이 조롱하는 자(16)

   멸망자(17)

   나의 원수된 자(19)

   나를 미워하는 자들(19)

   평안히 사는 자들을 거짓말로 모략하는 자(20)

   나의 재난을 기뻐하는 자들(26)

   나를 향해 뽐내는 자들(26)

 

다윗이기에 이런 특별한 위기와 아픔과 흔들림이 있는 것일까. 아니다. 마치 큰 나무가 바람 잘 날 없듯이 이처럼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향해 공격해 들어오는 것들을 향해 이기기 위함 몸부림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악한 사람은 늘 악의 편에 있기 때문에 악을 친구삼아 살아간다. 그러니 죄와 악과 불의에 그만큼 민감할 수 없다. 하지만 좀 더 바르고 거룩하게 살려고 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지금 다윗이 그러하다.

그들’(5,13,24)로 그려진 원수들은 마치 카멜레온처럼 여러 모양과 모습으로 다윗을 전방위적으로 원수들의 바이러스는 어느 특정 말씀이 아닌 한 절 한 절 전체에 골고루 흩뿌려져 있다.- 공격해 온다. 어찌 보면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만큼 교묘하고 사악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영’(삼상16.13)으로 무장한 다윗의 실력에 맞서 싸우려면 다윗만큼의 수준은 되어야 어찌 해 볼 수 있는 일이기에 이 싸움은 초보(예선)들이 싸우는 전초전이 아니다.

아무튼 다윗 잘 되는 꼴을 누 눈 뜨고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원수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가 않다. 이처럼 사탄은,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려는 성도들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이게 악과 죄의 특성이다. 세상은 언제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이 잘 되는 것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은 선()을 먹고 자란다. 그렇게 해서 악이 악을 낳고, 그 악이 다시 선을 집어 삼키면서 세상으로 하여금 죄악이 가득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런 죄악된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말씀하신다.

   

 

다윗: 악을 선으로!

 

다윗은 자신의 능력이나 실력이나 힘으로 이 원수들과의 전쟁에 나서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탄식함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정에 이 원수들을 고소(고발)한다. 다윗은 그들’(5), 즉 선을 악으로 갚은 원수들을 하나님의 법정에 호소한다. 하지만 다윗은 그들에게 다윗의 그러나’(13-14)로 호의를 베풀며 악을 선으로 돌려줌으로써 놀랍게도 복음을 따라 언행한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레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17-21)

 

하지만 그들의 그러나’(15-16)는 참으로 가관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다윗의 불행을 기뻐하며 다윗을 안주 삼아 야비하게 조롱하며 입방아 찢기에 취해 있다. 저들은 다윗이 휘청거리는 것처럼 보이자 이 영적 전쟁에서 다윗이 그만 실패하고 무너진 줄 알고 기다렸다는 듯이 기뻐하며 서로 모여서다윗을 치며 찢기를 마지아니하고 있다. 이것은 상상이나 소설이 아니라 실전이다. 다윗만이 그러한가. 아니다. 오늘을 사는 성도들도 동일한 고난과 싸움을 싸우는 중이다.

   

 

하나님: 심판 & 저주

 

그들을 향한 다윗의 시선이 절묘한 것은 그가 이 싸움의 방향을 처음부터 여호와여!’(1)를 부르며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가고 있음이다: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이르소서.” 이게 핵심이다. 다윗은 원수들이 하나님에 의해 수치를 당하고 물러가게 되기를(4), 바람 앞에 겨와 같기를(5), 멸망이 순식간에 임하기를(8), 그리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변함없이 주를 찬양하는 자로 서게 하시기를 기도한다.

 

    악인들의 언행심사

    ❶ 하하 우리가 목격하였다.’(21)

    ❷ 아하 소원을 성취하였다.’(25a)

    ❸ 우리가 그를 삼켰다.’(25b)

       → 주의 공의대로 판단하소서.”(24)

 

다윗의 선(, 13-14)과 대조되는 그들의 악을 보라. 하지만 다윗만이 본 게 아니다. 우리 하나님도 원수들의 악을 보셨다: “주께서 이를 보셨사오니 ”(22) 그러므로 악인들의 언행심사(❶❷❸)주의 공의대로 판단하사 그들이 다윗으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24) 하시기를 또한 기도한다. 참 감사와 기쁨은 원수들의 몫이 아니고(15,24,26a), 반대로 수치와 욕이 저들의 상급이다(26b). 기쁨은 승리한 다윗의 찬송이자 다윗의 평안을 기뻐하시는”(27) 하나님의 몫이다(28).

악한 자들의 설레발을 헛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잠시 죄와 불의가 이기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은 다윗(하나님의 사람)의 실패와 흔들림을 자신의 성공과 승리로 도적질하고자 한다. 그래서 언제나 악이 승리하고, 선이 힘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부분이 위기다. 의인이 고난과 고통을 당하고 악인이 지배하고 승리하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다윗처럼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의 공의가 집행되기를 기도하고, 그리하여 최후 승리 얻기까지 주님 바라보며 이 험한 세상을 달려가야 한다.

세상은 언제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곤 한다. 공정한 사회, 공정한 세상은 하나의 이상이고 구호 문구일 수도 있다. 그렇게 느껴지는 게 악한 세상의 모습 아닌가. 하지만 이처럼 악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러한 부조리하고 불의한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다스리시며 섭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그러할 때 다윗처럼 하나님께 호소하고, 하나님의 공의대로의 집행을 바라보고 기도할 수 있다.

 

 

부스러기 묵상

 

주님은 악하고 불의한 로마제국과 대항하여 싸우지 않으셨다.

그리스도는 유대가 요구하던 정치적 메시야로서의 혁명가를 단호히 거부하셨다. 주님은 십자가로 나아가 피 흘리사 죽으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다. 사도행전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복음을 핍박하는 자들과 역시 대항하거나 싸우지 않았다. 목을 배면 순순히 순교했고, 돌을 던지면 그 돌이 무덤이 되도록 하였다.

성도는 고난 받은 자로 사는 자다. 그리고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다. 어치피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비바람과 폭풍우도 있는 법이다. 오늘이 그렇다면 앞으로 올 내일 역시 이처럼 고난은 있다. 동시에 하나님은 아직은 미래이지만 그것이 오늘이 되어 우리에게 올 때에 이 역시 그것으로부터 성도들을 지키시고 원수 갚는 일이 하나님 자신의 몫임을 실행하실 것이다. 그 속에 우리의 기도가 자리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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