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시간표를 바라보나이다(시 77.1-20).

20220224(묵상)

 

 

 

하나님의 시간표를 바라보나이다.

Ps. 77.1-20

 

    본문 관찰

 

    인간의 시간표(1-9): 절망

    하나님의 시간표(10-20): 소망

  

 

내가 하나님이여

 

시인의 시간표는 환난 날이다(2).

그런데 그날에,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며(1), 슬픔 가운데 주를 찾는다(2). 하지만 하나님의 위로응 받지 못한다(3). 그 순간 그는 지난 날들을 회상해 보기 시작한다(4- ). 그러자 자신에게는 절망을, 그럼에도 하나님께는 소망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절망의 끝에서 하나님을 다시 만났고, 그가 이루시고 함께 하신 역사에 지금 그 자신 역시 이어져 있음을 고백한다. 인간의 절망의 시간표가 비로소 하나님의 소망의 시간표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있다.

 

 

인간의 시간표(1-9): 절망

 

    [절망하여 근심으로 한 생각들]

    “주께서 우리를 영원히 버리신 것인가?

      다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실 것인가?

      주의 변함없는 사랑이 영원히 사라졌단 말인가?

      주의 약속은 영영 헛되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심을 잊으셨단 말인가?

      주의 노여움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지 않으신단 말인가?”(7-9, 쉬운성경)

   

지금이라는 시간은 환난 날’(2)이자 슬프고 괴로운 날이다(4). 때문에 영혼이 위로 받지 못한 것을 이처럼 고백한다: “내가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3) 그러자 그는 지나간 날들을 회상하기 시작한다(5- ). 그러나 꼬리에 끄리를 무는 질문들이 토해진다(7-9). 그는 지금 하나님과의 단절이라는 고통과 그에 따른 절망 때문에 괴로워 부르짖는다.

왜 이처럼 휘청거리는가. 고통과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려진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에서, 그것으로부터 이어지는 두려움과 불안감과 근심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고 기도하고 있어도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연약한 인생의 모습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인생의 여정이 고난이고 인생사 삶의 여정이다. 그렇다면 고통에서 뜻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 고통과 고난을 좀 더 다른 시각(앵글)에서 읽어내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시간표(10-20): 소망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11b)

 

시인은 고난과 고통이라는 흔들림에서, 그 모질고 험한 삶의 파도 속에서 하나님을 다시 새롭게 묵상하기 시작한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을 믿는 믿음이 연약해진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고서(10), 그런 후에 그렇다면 믿음이 약해진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마침내 자신 너머에 계신 하나님께로 중심을 이동한다: “곧 하나님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11)

마침내 시인은 주께서 행하신 일들을 묵상하고 생각하기로 결정한다(12). 비로소 인간의 시간표인 절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시간표인 소망 앞으로 나아간다. 인간의 반환점을 돌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길로 뒤돌아선 셈이다.

 

    “, 하나님! 주의 길들은 거룩합니다.

      그 어느 신이 우리의 하나님처럼 위대하단 말입니까?”(13, 쉬운성경)

 

출애굽과 함께 홍해를 건너 약속(언약)을 지키신 하나님, 바다를 가로질러 길을 내신 위대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억해 낸다. 그렇다면 지금 비록 고난과 고통의 시간표를 지나고 있을지라도 홍해에 길을 내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음을 비로소 고백해 낸 것이다. 그 큰 일을 이루신 지나간 세월에 역사하신 하나님과(15-20), 지금 환난 날 가운데서 찾고 있는 하나님이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라면, 그렇다면 지금 고난의 시간표를 소망의 시간표로 만드시는 분 역시 하나님이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는 셈이다.

   

 

부스러기 묵상

 

슬픈 가운데 주를 찾았으나 고난의 끝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그렇다면 시인의 고난은 죄와 허물이 가져다준 게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마치 해산의 수고와도 같은 것이며, 눈물로 씨를 뿌리지만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이며, 모래를 품고 절규하는 조개 안에서 자라는 진주와도 같은 것이다. 동시에 이것이 우리가 지금 통과해 가는 환난이라는 슬픔이고, 그 가운데서 주를 찾는 자의 시간표다.

환난과 근심은 우리를 무너지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게 하는 멍에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경험하고, 다시 일어나 하나님이 하셨음을 고백하고 간증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축복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내가’(1-9) 부른 노래는 절망과 고통의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넘어져 그만 끝나버리지 않게 하셨고(10-12), 다시 하나님이여’(13- )를 부르며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때 출애굽과 홍해의 영광을 지금 다시 맛보게 경험하고 고백하게 하시는 시간표에 우리를 올려놓으셨다.

다시 일어나 주를 찬양하고 노래하려면 이처럼 그렇게 일어날 정거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출애굽과 홍해가 하나님으로 다시 일어나는 영적(靈的) 추억이자 새로운 은혜의 씨앗이다.

이렇듯 나에게도 하나님으로 충분한 고백과 간증이 토해지는 그런 은혜의 샘이 있는가. 이럴 때면 어김없이 지난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QT)할 때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추억한다. 지난 40년을 훌쩍 넘은 시간 동안 나와 함께 하시며, 내 시간표를 하나님의 시간표로 새롭게 하신 주를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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