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회복을 기도하라!(시 74.1-23)

20220220-21(묵상)

 

 

 

하나님의 회복을 기도하라!

Ps. 74.1-23

 

    본문 관찰

 

    이스라엘의 실상(1-9): 어찌하여 우리를 버리시나이까.

       ① 성전이 무너지다(1-3).

       ② 말씀이 희귀하다(4-9).

    하나님의 구원(10-23):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셨나이다.

       ① 회상 - 구원하소서(10-17).

       ② 기도 - 기억하소서(18-23).

   

 

탄식을 넘어 소망으로

 

이스라엘의 상태가 심각하다(1).

어찌하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토해지는 탄식이라는 점이 심상찮다. 위기와 상황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읽어내고 있음이 그나마 희망이다. 한편 이런 탄식의 상황은 원수’(대적; 4-9,10,18)로부터 왔다는 점이 중요하다. 과연 시인은 문제를, 그리고 이것을 극복할 해법을 어디에서 그리고 누구에게서 찾고 있을까.

 

 

이스라엘의 실상(1-9): 어찌하여 우리를 버리시나이까.

    ① 성전이 무너지다(1-3).

    ② 말씀이 희귀하다(4-9).

 

시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하나님의 진노 앞에 고통스러운 탄식을 토해낸다(1). 원수들은 성전을 파괴하고 불태움으로써 이스라엘의 희망이자 전부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구히 파멸하려고 한다. 이러한 탄식 중에도 시인은 이스라엘을 속량하사 주의 기업을 삼으신 분도(2a), 시온 성전을 지으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고 고백한다(2b). 그러면서 바로 그곳 원수에 의해 파괴된 성전에서 주의 임재를 구하며 하나님을 바라본다(3).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찬송 소리로 가득해야 할 성전에서 대적의 떠드는 소리와 깃발이 휘날린다(4). 온통 불타는 소리, 성전이 파괴되는 소리, 원수들의 조롱 소리가 난무할 뿐이다: “우리가 그들을 진멸하자.”(8a) 원수들을 향해야 할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을 정조준한 셈이다. 이렇듯 원수들의 언행만 있을 뿐 정작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희귀할 뿐이다. ‘어찌하여에 설상가상으로 진정 어찌할까. 문제는 이러한 절망의 페허가 언제 끝날지를 아는 자가 전무하다는 점이다(9). 그렇다면 이렇게 끝인가.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다. 마침내 시인은 다시금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구원(10-23):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셨나이다.

    ① 회상 - 구원하소서(10-17).

    ② 기도 - 기억하소서(18-23).

 

그렇다. 오직 희망의 출구는 하나님 뿐이다(10-11): “하나님이여 대적이 원수들을 멸하소서.” 오직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다시 회복되기를 갈망한다. 탄식과 절망하기로 끝이 아니다. 그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과 그의 구원을 향해 기도의 무릎을 꿇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을 향한 기도는 포기될 수 없다. 하나님은 태초에 예로부터지금까지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며 운행하시는 분이신 것을 회상한다().

세상이 온통 원수들(포악한 자, 대적들; 18,20,23)로 넘쳐나는 것 같지만, 그래서 순간 당황한 나머지 그저 어찌하여’(1)로 떨던 것에서, 또한 성전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오직 희망의 출구가 하나님이심을 기도하기 시작한다. 희망이다. 하나님은 지금 혼돈과 환난의 때에만 찾고 구하는 그런 분이 아니라 예로부터’(12) 지금까지 하나님이심을 회상하며 기도한다.

무엇보다 번쩍이는 빛이 있다: “그 언약을 눈여겨 보고서.”(20a) 시인은 하나님의 언약에 호소한다. 이러한 총체적 혼돈 가운데 고통과 학대를 당하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주의 백성들을 잊지 않고 기도의 손에 올려놓는다. 오직 이스라엘을 살리고 회복할 자는 하나님 밖에 없음을 통곡과 눈물로 기도의 향에 담아 하나님께 올력드리고 있는 것이다.

 

 

부스러기 묵상

 

    “주의 멧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며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을 영원히 잊지 마소서.”(19)

 

일그러지고 깨진 그릇 같은 이스라엘이지만 희망은 여전히 있다.

하나님 때문이다. 이 황무한 황무지에서도 주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소서.”(21b)라고 기도할 수 있다. 역시 하나님 때문이다. 성전이 무너지고, 예배가 끊어졌으나 그럼에도 희망의 줄을 놓치지 않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에게 희망과 소망과 회복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라. 탕자의 희망은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탕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희망의 끈을 잇게 된 것은 순전히 아버지 하나님 때문이다. 인간은 절망을 심지만 하나님은 그곳에서도 희망을 싹트게 하시고, 그 흔들리는 나무에서도 영광의 열매를 거두시는 분이시다. 절망이나 포기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언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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