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시 7.1-17)

20200507(묵상)

  

 

 

악인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Ps. 7.1-17

  

   본문 관찰

 

   하나님

     다윗

   원수(대적, 악인)

   

 

피난처에서 만난 하나님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은 사람(1), 그는 다윗이다.

자신을 뒤쫓는 모든 원수들에게 포위되어 찢고 뜯길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의 때에 오직 하나님께 피하는 자로 당당하게 선다(1-2). 그는 이러한 고통을 신파조(新派調)로 풀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난 당해야 할 아무런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음을 담담하게 고백한다(3-4). 보통 이 대목에서 질질 짜고, 일단 생각나는 것을 다 회개하면서 최대한 약하고 불쌍하게 보이려는 식으로 접근하는 방식과 어찌 그리 대조적인지, 조금은 부끄럽다. 오직 하나님만이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릴 분이심을 고백하는 다윗(5-16), 이것이 죄와 악을 자행하는 원수(대적)를 읽어내는 다윗의 시각이다. 그러니 이 와중에도 감사와 찬양이 터지는 것 아닐까(17).

   

 

나를 구원하소서.

 

다윗은 생사(生死)의 갈림길에 서서 건져낼 자(2)이신 하나님을 사모하고 있다. 그는 사자같이 찢고 뜯는 원수(대적, 악인)를 향해 보복하기를 원치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이 직접 악인을 심판하는 것을 통해 자기를 건져내는 구원 같은 것은 원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판주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두드리면서 절박하게 움직인다.

그는 자신을 압박해 오는 베냐민 사람 구시를 대면하는, 그래서 담판을 벌이는 것은 생각지도 않고 있다. 구시가 움직인다면 자신도 그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께 피하여 도움을 청한다(1). 이렇듯 하나님이 먼저 생각난 사람이 다윗이다. 자신이 결백한 만큼 이제 싸움은 자신과 구시가 아니라 하나님과 대적들이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3-5 6-9).

다윗이 믿고, 그래서 구하는 하나님은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는 분이시며(6a), 저들에게 심판을 행하시는 분이시다(8a). 이처럼 하나님은 악인의 편이 아니라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10). 이어지는 바른 신관(神觀, 11), 이것이 다윗의 바른 기도를 낳는다는 점, 다윗의 고백에서 배우는 중요한 교훈이다.

   

 

원수를 심판하소서.

 

   ‘쫓아오는 모든 자’(1)

   원수(대적, 악인, 5,6,9,14)

   자업자득(自業自得, 14-16)

 

앞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무죄함을 토로하였다(1-11). 그러면서도 자신을 고통 가운데 몰아넣은 베냐민 사람 구시를 원수’(대적)이라 부르면서 그를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 호소한다. 이것은 원수에 대한 신약의 입장과 그 맥을 함께 한다(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바로 이처럼 하나님께만 호소하며 기도하면서, 동시에 죄인이 회개하지 아니하면”(12a) 하나님께서는 그를 향해 심판의 칼을 가실 것임을 분명히 한다. 그런데도 악인은 여전히 칼을 갈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다(12). 하지만 그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런 배은(背恩), 즉 회개의 기회를 선용하지 않는 것은 결과적으로 심은 대로 거두는 결과를 낳게 될 뿐이다는 점이다(14-16; 6.7 참조).

이런 자를 향한 다윗의 언어가 빛난다: “악인이 악을 품고 못된 것을 임신하여 거짓을 낳았구나.”(14, 현대인의성경) 여기서 악을 품고는 이어지는 문맥과 연결해 볼 때 악을 잉태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결국 베냐민 사람 구시의 언행은 잉태에서 출산까지의 모든 여정이 다 악인으로서 자행하는 짓이고, 그 결과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일 뿐이다는 통렬한 선언이 주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에 호소하는 심판이다.

  

 

부스러기 묵상

 

다윗은 베냐민 사람 구시의 말()로 큰 위기를 만났다(표제어).

그게 어떤 식의 언행(言行)인지, 또한 구시가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기에 뭐라 단정할 순 없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원수들의 광포에 대한 다윗의 반응이다. 그는 곧바로 하나님께 피신한다(1a). 이것저것을 넣고 빼는 식으로 복잡하게 문제와 상황을 확대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님만을 생각한다. 그냥 하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한다. 이것보다 더 단순한 해법이 또 있을까.

 

   [결백서약](3-5)

   베냐민 사람 구스에게 찢기고 뜯길 일을 행하지 않았다(3a).

   내 손에 죄악, 곧 불의가 없다(3b).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지 않았다(4a).

   대적에게서 이유 없이 빼앗지 않았다(4b).

 

결백선언(3-5)은 계속된다. 만일 자신의 고백이 가짜라면 원수에게 짓밟히고 명예가 실추되어도 상관없음을 담대하게 외친다(5). 이것이 다윗이 선언하는 자신의 죄 없음에 대한 의()의 고백이자 결백서약이다(8b). 그만큼 베냐민 사람 구시의 언행(言行)에 대해 하나님께 대하여, 또한 공격하는 자에 대하여,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하여 결백하다는 얘기다.

이 시편의 압권은 17절이다. 다윗은 베냐민 사람 구시의 일이 아직 종결되지 않은 진행형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노래(기도)의 대미를 감사와 찬양으로 마무리하고 있다는 점이다(17).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쇠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로 이어지는 찬양이 생각난다. 그렇다. 벌어진 문제 앞에 서 있는 다윗의 견고한 신앙과 오직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흔들림 없는 모습에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발견한다. 다윗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같은 마음으로 순례의 길이 이어지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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