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답(答)이다(시 11.1-7).

   20200511(묵상)

  

 

 

하나님이 답()이다.

Ps. 11.1-7

  

   본문 관찰

 

   문제에 대한 이해(1-3)

   해답에 대한 믿음(4-7)

 

      나 마음이 바른 자(2) - 의인(3,5,7) - 정직한 자(7)

      너희 악인(2,5,6) - 폭력을 좋아하는 자

      여호와 인생을 통촉하시고(4) - 감찰하시다(4,5)

         → 의인 좋아하시나니 여호와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 악인 그물을 던지시리니 -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다윗일기

 

다윗은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게 분명한다.

왜 그럴까? ‘너희’(1)그들’(4,6)은 또 누구일까. 대부분 다 그렇지만 이 시편 역시 역사적 배경을 알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뭘 말하려고 하는지를 안다는 건 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악인과 대면하고 있는 자신을 시()에 등장시켜 놓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런 구도로 말미암은 문제를 하나님께 토로하고, 그분으로부터 도우심을 앙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뭔가 출구를 찾게 된다.

 

 

악인의 도전

 

다윗은 지금 악인에게 포위 되어 있다. 다윗임에도 말이다. 다윗처럼 위대한 신앙과 삶을 살아가는 자에게도 악인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뭐든 위로 올라갈수록, 깊어질수록 치열한 승부가 펼쳐지듯 신앙하기 역시 치러야 할 값의 밀도는 점점 높아만 간다. 신자란 본시 악과 악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베드로의 통찰이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아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5.8-9)

악인의 화살이 다윗의 심장을 겨냥하고 있다(2). 적은 자신을 누출하지 않으려고 어두운 데서 쏘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윗 역시 어두운 곳에서 나라오는 화살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는 얘기가 아닌가. 이를 본 너희가 움직인다(1): “새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시상(詩想)을 그려보면 지금 다윗은 적군에게 포위가 되다싶은 위기의 때이다. 그런 급박한 때에 어디론가 피해야 할 상황이다. 과연 그곳이 어디인가?

바로 이러한 때에 너희로부터 하나의 해법이 제시된다. 그렇다면 너희는 아마도 지금 다윗의 위기와 한 배를 탄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점은 이것이다. 이미 다윗이 여호와께 피하였거늘임에도 너희는 또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음이다. 위기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다윗의 사람들까지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안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게 결코 예사롭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밖으로는 악인이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는데, 안에서는 하나님으로는 안 된다는 제안이 공론화되고 있다. 이처럼 적()은 늘 내부에도 있다. 이것이 문제다. 돕는다고 하는 게, 최선이라고 내 놓은 게, 이것이 살 길이다고 뜻을 합한 것이 결국은 하나님께 피하였거늘로는 안 된다는 것이라니 말이다. 이렇듯 다윗에게서 하나님을 분리시키는 것,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제안, 이것이 어찌 다윗만의 형편일까. 내 안에도 또 다른 나인 너희가 자리 잡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7.23).

   

 

의인의 승전

 

다윗은 산으로 간 도망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은 도피자로서 문제 앞에 선다(1). 이것이 생명의 위기로부터 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3). 악인은 물론이고(2), 가까이에 있는 너희까지 흔들리는 상황에서 다윗은 오직 하나님(1), “그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간다(4). 다 아는, 너무도 뻔한 평범한 것이지만 그러나 이것이 다윗이 따르는 신앙이자 해법이다.

다윗에게는 늘 하나님이 있다. 단지 머리로만, 생각으로만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그에게 있어 하나님은 명사이자 동사다. 하나님이 명사인 사람은 신앙은 좋으나 무능력하고, 하나님이 동사인 사람은 능력은 있으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별로인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다윗은 이 둘이 탄탄하게 균형 잡혀 있다. 그러니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의 때에도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 때 하나님이 생각나는 사람은 복되다.

마침내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한다(6). 하나님께 피한 의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악인의 운명은 이렇게 뒤바뀐다. 다윗은 하나님께 피한 것 뿐인데 하나님이 그 다음을 다 책임지신다. 이것이 의인의 승전이 갖는 비밀병기다. 무수한 화살이 자신의 심장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도 칼과 방패로, 그게 부족하니 다시 요새와 같은 산으로, 이처럼 떠도는 자로 전락하지 않는 다윗을 본다. 이게 승리를 낳는 씨앗임을 곰곰이 생각하는 묵상이다.

   

 

부스러기 묵상

 

위기 앞에 설 때 무엇보다 하나님이 보여야 한다.

이게 해답이다. 이것이 악인과의 싸움을 승리로 역전시킬 배수의 진이다. 하나님은 이렇듯 자기를 의지하는 자를 위해 싸우신다. 유감스럽게도 광풍을 만난 제자들에게는 이게 없었다(8.22-25). 가장 잘 준비되어 있을 것 같고, 또 그래야 할 사람들에게 정작 필요한 때에 그게 없다니...

문득 다윗의 전쟁터에 서 있는 나를 생각한다. 이럴 때 하나님께 피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뭘 뜻하는 것일까. 지금 내가 다른 것이 아닌 하나님께 피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일까. 진심으로 하나님을 우선하여 생각하고 있는가. 위기의 때에 하나님이 생각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만큼이 그의 믿음이니까.

생의 한 중심에서 만나는 위기는 삶의 전부를 흔들어 버리곤 한다. 이때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복되다. 다윗은 자신의 자전적 경험과 간증을 통해 우리에게도 이 시편이 노래되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다윗의 지략과 힘과 땀으로 만들어진 승리라고 한다면 문제 앞에 그만 항복할 수 있다. 다윗과 비교할 수 없는 연약함과 무능력 때문이다. 그런데 다윗은 악인들의 움직임이 깊어질수록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피난처이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식()이라면 해 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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