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할 때 강함 주시네!(시 6.1-10)

   20201227(양무리교회)

  

 

 

약할 때 강함 주시네!

Ps. 6.1-10

  

   본문 관찰

 

   주님을 향해(1-7)

   원수를 향해(8-10)

  

 

 

내유외강(內柔外剛), 영적 맷집

 

   병든 자의 고통이 알알이 전해져 온다.

다윗은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2,3,4), 급기야 죽음까지(5), 때문에 주야(晝夜)로 눈물 흘리는 탄식으로 점점 쇠약해지고 있음을 솔직하게 토로한다(6).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 와중에서도 하나님만이 희망임을 놓치지 않고 있음이다(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이것이 다윗의 당당함(8-10)을 지탱하는 힘이다.

그렇다면 다윗으로 하여금 이처럼 하늘과 땅을 향해 쉼 없이 몸부림치게 하는 자는 누구인가? 처음엔 주의 진노(분노)에 의한 징벌처럼 받아들이는가 싶었다(1). 그럼 그렇지, 뭔가 다윗이 죄를 범한 것이겠지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육간에 처참한 모습을 그대로 한 채, 그럴수록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깊어져감에 따라 마침내 뼈()와 영혼을 떨게 하는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마침내 다윗은 자신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자들을 대적’(對敵, 7b)이라 부르더니, 급기야 자신에게 나쁜 짓()을 행하는 원수들임을 분명히 한다(8-10). 하나님을 향해 납작 엎드리더니 원수를 향해서는 거룩한 소리를 발하기 시작한다. 그는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서 이 모든 것의 실상이 주의 진노(분노)에 의한 것이 아닌, 또한 자신의 죄악에 의한 것도 아닌, 다름 아닌 사탄의 졸개들인 원수들로부터인 것을 깨닫게 된다(7). 그러니 당당할 수 밖에!(8-10)

 

 

주님을 향해(1-7): “돌아와 건지시며 구원하소서!”

 

다윗은 자신이 처한 영육(靈肉)간의 고통을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온다. 그는 화려한 왕의 옷을 벗어버린다. 지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을 의지하며 거들먹거리듯 허세(虛勢)를 부릴 때가 아니다. 영육이 다 무너진 인생의 막장에서 마침내 죽음까지 생각해야 할 때(5), 그렇다면 다윗은 지금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음에 이르는 병 때문에 생사(生死)의 기로에 서 있는 때를 지나고 있다. 보통 이쯤 되면 생을 포기하든지, 그렇게 만든 것들을 향해 원망하든지, 더 진도를 나가면 하나님을 떠나 다른 대용품을 찾든지, 뭐 대략 이런저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다. 이 부분이 절묘한 대목이다. 그는 잠시 자신의 처지가 혹 하나님의 분노(진노, 노여움)에 의한 것이지 않나 싶어 순간 휘청거리는 것 같았다(1).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는(2a), 그래서 그분으로부터 고침을 받는(2b), 그러나 그 기간이 어서 빨리 왔으면 하는(3), 매우 인간적인 하지만 더욱 신앙적인 자세로 하나님을 찾고 있다. 비록 온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을지라도 기도자의 자리를 온 몸으로 붙들고 있다.

하나님만이 희망임을 아는 자의 기도가 가슴으로 전달된다(4). 문제 앞에 설 때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들 수 있는 사람, 세상의 모든 선()들을 끊고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의 줄을 연결하는 사람, 다윗은 지금 바로 그 사람의 자리에 서서 하나님께 기도의 무릎을 꿇는다. 바로 여기가 다윗을 통해 말씀하시고 싶어 하시는, 다윗처럼 동일한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자들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희망의 출구가 닫혀 지면서 절망의 입구가 점차 가까워올 때, 바로 그때 닫혀버린 것 같은 희망의 입구에 서서 하나님만이 이 문을 여실 자임을 주야로, 쉼 없이 고백하는 다윗에게서 조그만 힌트를 발견한다. 무엇인가: ‘절망하고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왜 그런가.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두드릴 수 있는 것만큼이 아직 남아있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국 하나님이다. 하나님만 남는다. 다윗은 지금 이것을 보고 있다. 그래서 생사를 오가는 절망의 고통 중에도 하나님을 향해 기도의 거친 호흡을 몰아쉬고 있다.

 

 

원수를 항해(8-10): “다 나를 떠나라!”

 

하나님을 향해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를 집중하며 기도의 무릎을 꿇음으로써 얻은 자신감일까. 그럴 지도 모른다. 위로부터 오는 은혜로 인한 힘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오늘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원수에 대해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 준다. 다윗에게서 늘 놀라는 부분 가운데 하나는 그는 늘 자신이 싸우는 대상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원수를 결코 시야에서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나 그것을 가장 작은 것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 버리고 마는 탁월한 능력 또한 소유하고 있다. 이것이 그의 영성이다.

지금 다윗의 이 거침없는 언행(言行)은 바로 하나님 때문이다. 하나님 안에서의 당당함 말이다. 마치 골리앗 앞에 나아갈 때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하다. 역시 큰 싸움을 해 본 사람은 어떤 대상 앞에서도 흔들리는 법이 없다. 설령 조금 흔들거리는 듯하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평상심을 회복한다. 지금 다윗은 이를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가고 있다. 1절을 뛰어넘자 하나님에 대한 보다 선명한 지식과 믿음이 자리한다. 기도는 이렇듯 한 사람의 영성을 더욱 더 견고하게 만들어준다.

이런 다윗의 몸놀림이 가능한 배후에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 계신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듣고 또 응답하시는 분이시다(9). 무엇보다도 그의 눈물(7)은 물론 울음소리(신음소리)도 듣는 분이시다(8b). 이쯤 되니 도리어 이번에는 원수가 떨 것이라는 점을 예측할 정도로 여유를 보인다(10). 그야말로 절망과 탄식으로 몸과 마음이 전부 다 이처럼 떨던 다윗은 당당해졌고, 그런 다윗을 전방위적으로 공격하던 원수는 부끄러워 몹시 떨게 되는 쪽으로 역전된다(2-3a). 이렇듯 누구나 자신을 보면 절망하고 근심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볼 때 갑자기담대하게 일어서게 된다.

   

 

부스러기 묵상

 

하나님을 비빌 언덕으로 삼는 자의 복, 다윗을 두고 하는 말 같다.

그는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사시나무 떨 듯 흔들리다 못해 완전히 무너지기 직전이다(5). 그럼에도 그 순간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고 두드리고 구하며 끝내 하나님만을 붙들고 사투(死鬪)를 벌인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연약함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보았고, 자신의 울음(신음)소리를 듣고 계신 하나님 앞에 그 모습 그대로 납죽 엎드린다. 그야말로 백기를 든 항복이다. 하나님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그만큼 절박하고, -하지만 밑져야 본전 같은 그런 식은 아니다.- 진지하면서도 정직함 그대로를 기도에 담아 하늘을 향해 무릎을 꿇는다.

그는 먼저 자신과의 싸움에서, 그리고 자신 안에 엄습해 온 고통과의 싸움에서, 동시에 그런 자신을 넘어뜨리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하는 원수들’(나쁜 짓 하는 자들)과의 영적 전쟁에서 멋들어지게 승리한다. 그는 가장 약할 때 가장 강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향해 머리를 들 수 있는 신앙의 견고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무릇 사람의 진가는 그가 만난 위기의 때를 보면 대략 느낌이 온다. 이 땅의 문이 막히면 하늘의 문을 열 수 있는 사람, 그는 고통 중에 절망하지 않고 또 다른 희망의 출구를 찾는 사람이다. 다윗에게는 이런 위기관리 능력이 탁월하다. 다윗은 위기의 파도를 탈 줄 아는 멋이 있다.

다윗처럼 자신의 문제를 그야말로 통째로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사람, 모든 성도는 그런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고민하고 낙심만 하고 있는 한 문제는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다. 내 힘과 능력을 의지해 해결해 보려고 발버둥을 쳐 보지만 오히려 문제가 문제를 낳는 악순환을 반복할 때가 더 많다.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라는 식으로 건방을 떨어야 할까. 아니다.

다윗은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고통 앞에 처절할 정도로 하나님을 찾고 구한다. 그렇게 당당하고, 용감하고, 능력 있고, 모든 것을 다 소유한 왕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로 눈물 흘리며 무릎 꿇은 약하디 약한 사람이다. 이 부분이 다윗에게서 다시 배우는 약할 때 강함이라는 복음의 역설이다. 다윗의 처절함을 배우고자 시편 6편의 단어들 사이에서 하나님을 바라본다. 희망이다.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다. 그러기 때문에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주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고, 그래서 기도하는 것 아닌가. 한 해를 이처럼 이겨냈다면 또 한 해도 그러해야 한다. 다윗처럼 울부짖더라도 하나님을 구하며 약하고 부족하고 연약한 때를 견디며 이겨낸다면 분명 우리에게도 승리를 얻게 하실 것이다. 다시 시편 6편의 다윗처럼 살라 부르신다. 그래서 오늘 예배로 응답한다: ‘하나님, 다윗의 고백과 간증이 나의 노래와 찬송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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