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드리는 예배(시 63.1-11)

20210818(묵상)

 

 

 

광야에서 드리는 예배

Ps. 63.1-11

 

    본문 관찰

 

    광야에서 쏘아 올리는 생방송

    예배자 다윗

 

 

유대 광야에 있을 때에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주를 갈망하며 주를 앙모하나이다.”(1)

 

다윗은 분명 광야에까지 밀려나 있다.

하지만 광야도 다윗을 어찌하지 못한다. 그것에 우겨쌈을 당하지 않고, 가장 위험하고 메마른 땅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으로 되돌려 버린다. 그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예배자의 삶을 포기하거나 약화시키지 않는다.

 

 

광야에서 쏘아 올리는 생방송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1b)

    ‘이와 같이 성소에서’(2b)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5a)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7)

    ‘하나님을 즐거워 하리니 자랑할 것이나’(11a)

 

거꾸로 생각해 보면, 아프거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먹고 자고 살 길을 찾는다. 그렇다면 위기와 절망과 시한부의 여정일지라도 살기 위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어떻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게 맞다. 그렇다면 유대 광야에 홀로 버려진 것처럼 생사(生死)의 갈림길에 있을 때 포기하고, 절망하고, 원망하고, 탄식하는 것으로 더 추락해야 할까. 아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쪽으로 걷는 자로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보여주는 광야의 영성이다.

감사할 때 감사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 좋을 때, 만족할 때, 형통할 때야 못할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비정상이 정상처럼 밀려오는 그야말로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1b)과 같은 거친 광야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성소’(2b)로 만들어 버리는, 그리하여 영혼이 만족’(5a)함을 누리며, 하나님을 즐거이 부르며(7), 하나님으로 즐거워 하며, 이를 자랑하는(11a) 곳으로 바꿔버린다. 바로 다윗이다. 최악의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이를 최상의 무대로 만들어 버리고야 마는 다윗이다.

 

 

예배자 다윗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2)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3-4a)

    ‘나의 입이 주를 찬송하되 주의 말씀을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5b-6)

       ↔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그들은 먹이가 되리이다.’(9-10)

            ‘거짓말 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11b)

 

광야의 예배자 다윗을 만난다.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광야를 예배하는 곳으로 만들어 버리는 다윗이다. 마치 빌립보 감옥에서도 찬송하며 하나님을 예배했던 바울처럼, 어쩌면 그는 하나님과 가장 먼 곳일 수 있는 광야(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으로 바꾼다. 광야가 성소다 되는 순간이다(2). 땅 끝 그곳에서도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고 또한 찬송하고 싶어서다(3-4a,5b-6). 이런 반전을 이루는 사람이 다윗이다.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여유로울 때가 아니다. 오히려 다윗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9) 자들이 호시탐탐 다윗의 목숨을 노리는 상황에서다. 더욱 다윗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온간 험담과 유언비어로 거짓말 하는 자’(11b)가 놀아나던 때다. 성령이 임하셨고, 골리앗을 물리친 용사 다윗은 과거형에 불과하다며 다윗의 이름을 꺾고, 그를 매장시키려는 원수들의 우겨쌈이라는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정면승부를 한다.

 

 

부스러기 묵상

 

    모든 상황 속에서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찬양할지라 주는 너의 큰 상급 큰 도움이시라

    주의 얼굴 구할 때 주의 영을 부으사 크신 사랑 안에서 주를 보게 하소서

    내 영혼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내 영혼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찬양할지라 주는 너의 큰 상급 큰 도움이시라

    주의 얼굴 구할 때 주의 영을 부으사 크신 사랑 안에서 주를 보게 하소서

    내 영혼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내 영혼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주를 찬양할 땐 주의 나라 이미 임했네 그 영원한 나라 보게 하소서~

    내 영혼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내 영혼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의 일상이다.

병 들어 죽어갈 때에도 우리는 밥을 먹고, 약을 먹고,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고, 옷을 입는다.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포기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일상은 어떤가. 마찬가지 아닐까. 고통과 좌절과 실패와, 더불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는 중에도, 원수들의 우겨쌈이라는 광야의 여정 중에도 하나님을 잃지 않고, 포기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예배할 수 없는 환경이거나, 예배하지 않아야 할 상황은 없는 것이다. 시편 63편에 오뚜기처럼 예배자의 자리로 나아가는 다윗이 그렇다.

고통스럽기 때문에 예배자로 서는 것이다.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것 같으니까 예배자로 나아가는 것이다. 예배는 평안할 때, 아무런 어려움이고 고통이 없을 때에나 행하는 그런 의식이 아니다. 예배는 생사의 갈림길인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축복의 문이다. 성도는 하나님을 예배할 때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거룩한 발자국을 하늘 향해 내딛는 자다. 세상과 다르게 사는 자는 누구인가. 그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다. 다윗의 광야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믿음의 고백이 바로 예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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