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7(Eccl. 11.1-10)
최선의 삶을 경주하는 자는 아름답다.
본문 관찰
내일 일은 알 수 없다(1-4).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다(5-8).
젊음에는 특권과 의미가 함께 있다(9-10).
그 날을 생각할지로다.
“헛되도다!”는 허무와 그것으로부터의 절망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혜자는 지금 헛됨을 초극하고 그 너머에 있는 ‘무엇’에 관심을 갖는다. 세상은 허무로부터 절망을 열매맺고 그것으로 끝을 고하지만, 전도자는 지금 헛됨 그 이후의 희망과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허무를 이야기한 것은 희망찾기를 위한 나름대로의 몸부림이었다. 이제 그것을 마칠 때가 되었다. 마침내 ‘사람의 본문’(12.13-14)에 서기 위해 몇 가지 주위를 환기시키는 일이 시작된다.
내일 일은 알 수 없다(1-4).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2b)
자신만을 섬기며 사는 우매자의 헛됨과는 다른 삶을 사는 자는 이렇게 산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며, 그것도 할 수만 있으면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면서 산다(1-2a). 그 이유는 그럴 수 있는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며, 내일 일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 나누며 살면 불현듯 찾아온 재앙의 때에 서로 위로하며 식물을 나누며 살 수 있다. 재앙의 때는 “이럴 줄 알았으면 좀 할 껄!”이라며 후회하고 좌절하는 때가 아니라 어제의 나눔의 부스러기를 먹고 나누며 사는 때여야 한다. 나눌 수 있는 오늘을 최선의 삶으로 경주하는 자가 재앙의 내일을 후회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자이다.
한편 내일 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은 갈팡질팡 거리며 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풍세만을 보면 파종할 수 없고, 구름만을 보면 추수할 수 없다(4). 그러니까 완벽한 때는 없다. 오직 최선의 삶을 경주하는 것만이 재앙의 때를 이기며 살 수 있다. 자연현상을 돌이킬 수는 없다(3). 이처럼 천기는 분별하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주목하지 못한다면 그는 지혜자일 수 없다. 무슨 재앙이 나를 찾아올 지 알 수 없는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이라는 기회의 때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완벽한 때는 없다. 내 유한한 머리만으로 파종과 추수의 때를 결정하려고 하지 말자. 내가 알 수 없는 일과 때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다(5-8).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5b)
인간은 전적으로 무지하다. 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지혜의 첫걸음은 인간이 알지 못하고, 또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전도자는 그 예들을 계속해서 제시한다(2b-5a).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무지가 있다. 그것은 온 우주를 주관하시며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다는데 있다. 신학에서는 이를 한마디로 선언한다: “유한은 무한을 파악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우매한 자신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살아갈 때만이 가장 아름답다.
그래서 6의 교훈이 빛난다. 내일도, 하나님도 알 수 없으니 ‘열중쉬어’ 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지금은 최선을 다 해 일 할 때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내가 미리 그것을 예측하고서 내 방식대로 처리해 버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자리를 스스로 넘보는 패역이 아닐 수 없다. 빛은 아름답다(7). 하지만 그 빛이 언제 캄캄함으로 바뀔지 알 수 없는 게 인생 아닌가(8). 빛과 어두움은 늘 공존한다. 그 공존의 그늘 아래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일 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기 이전에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 안에서 최선의 삶을 경주하는 자가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사는 자다.
부스러기 묵상
“일찍 핀 꽃은 일찍 진다.”
인생은 젊음의 때만 있는 것이 아니다. 10대, 혹은 20대에 피고 지는 꽃과 같은 인생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한 때 뿐인 것을 탐닉하다가 영원한 것을 잃어버리거나, 놓치고 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생은 살만 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래서 지혜자는 젊음의 때를 “즐거워하며 … 기뻐하여 … 원하는/보는 대로 행하라.”(9a)고 격려한다.
하지만 이러한 특권과 기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동시에 의무와 책임이 주어져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9b) 이렇듯 젊은이에게는 특권과 책임이 동시에 주어져 있다. 어떻게 사느냐가 오늘을 내일 되게 하는 일에 결정적인 씨앗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을 지혜자에게서 배운다.
인생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비록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2b,5,6b) 할지라도 능동적인 것은 버리고 수동적인 처신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열심히 하는 것과 바른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모든 일에는 항상 그 책임이 엄중하게 물어진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자의 반열에 입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솔로몬은 지금 책임 때문에 본분을 희생하며 사는 것을 피하라 얘기한다. 최선의 삶을 경주하며 사는 자는 아름답다. ‘사람의 본분’ 앞으로 서서히 진입하고 있는 중이다. 그 길을 따라 오늘 하루도 열심히, 동시에 바르게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