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우매일지라도 지혜를 패하게 한다(전 10.1-11).

  20221215(Eccl. 10.1-11)

  

 

 

작은 우매일지라도 지혜를 패하게 한다.

  

 

    본문 관찰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낫다(1-4).

    우매자가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5-7).

    작은 실수가 전체를 망치게 한다(8-11).

 

 

지혜자와 우매자

 

    “향수에 빠져 죽은 파리가 향수에서 악취가 나게 하듯이,

      변변치 않은 적은 일 하나가 지혜를 가리고 명예를 더럽힌다.”(1, 표준새번역)

 

어리석음보다 지혜가 더 낫다.

마치 지혜우위론에 대한 후렴구처럼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낫다(1-4)는 솔로몬의 문구가 반복된다. 솔로몬은 여기서도 지혜와 우매를 각각 비교하다가 그것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 확증한 다음에(1-4 5-7), 작은 실수가 전체를 망하게 할 수 있다(8-11)는 점을 상기시킴으로써 우매의 도전으로부터 지혜를 지키기 위한 세심함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깨우친다.

()의 티가 옥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것처럼 지혜 역시 작은 우매가 복병이다(1). 사실 자신이 지혜롭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나, 반대로 자신이 우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사람들은 이 두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러한 불안한 조화가 깨지는 것은 자신의 언행(言行, 2-4)에서 비롯된다. 사람은 자신의 품행에서 지혜와 우매를 드러낸다. 마음이 기우는 쪽도 다르고(2), 삶에서 그대로 드러나며(3), 분노할 수 있는 상황에서의 처세(4)가 그 사람의 질()을 결정한다. 지혜와 우매는 속일 수 없고, 잠깐은 위장할 수 있어도 변화무쌍(變化無雙)한 생활의 순간 순간이 정확하게 그의 수준을 노출하게 만든다. 지혜는 우매를 부끄럽게 하지만, 우매는 지혜를 패하게 만든다. 지혜와 우매의 자리가 바뀌어져 있으면 세상이 시끄럽고 요란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러한 일들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우매한 통치자(5-7)

 

    “유대인에게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고전10.32)

 

한 사람의 우매는 또 다른 사람의 어리석음을 부채질한다. 나의 우매가 너의 우매가 될 수 있다는 지혜자의 충고가 예사롭지만은 않다. 통치자의 어리석음은 다른 무엇보다 파장이 크다. 어리석은 자가 높은 지위에 앉게 되고, 또한 존귀한 자를 낮은 자리에 앉히는 것은 모두가 다같이 감당하기 힘든 악순환을 낳는다(6).

모든 사람에게는 지혜와 우매가 각각 어느 정도는 다 있다고 본다. 하지만 주권자(통치자)처럼 위에 있는 사람의 우매는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높아지는 것, 위로 올라가는 것이 중요하기보다 거기에 걸맞은 자질과 품성을 지혜로 더불어 준비하고 쌓는 것이 더 우선한다.

 

 

지혜는 성공의 어미니(8-11)

 

항상 하고 있는 일상의 일들이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결과만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라는 생각이 든다. 나무를 쪼개는 자는 그 나무에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때문에 캄캄한 방에서 떡을 반듯하게 잘 썰 수도 있지만 그러나 손을 다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 내가 지혜롭다는 것이 모든 일의 성공과 복된 성취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지혜는 어리석은 실패가 면제되도록 해주지 못하며, 지혜는 자동적인 성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지혜를 따라 살아가는 길에는 무수한 복병들이 놓여져 있다.

하루를 돌아보면 너무 많은 여러 일들을 하는 것 같다. 오늘도 아마 8-9절처럼 많은 일들을 하게 될 것인데 지혜와 어리석음이 나를 비웃지 못하도록 좀 더 신중함과 기본을 지키는 겸손함을 따라 살아야겠다 싶다. 이런 동화(우화)가 생각난다. 나무찍기가 시작되었는데 한 사람은 곧바로 나무 찍는 일을 시작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기 도끼를 먼저 갈고 있었다. 분명 전자(前者)가 먼저 시작했는데 결과는 후자(後者)가 더 빨리 나무를 찍어냈다는 얘기다(10). 일이 터진 다음에 수습(AS)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리 예방(豫防)하는 것은 더 중요하지 않을까(11). 여기가 지혜가 서는 자리다.

 

 

부스러기 묵상

 

    “무딘 철 연장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10a)

 

지혜를 무너뜨리는 것은 작은 우매일 수 있다.

변변치 않은 적은 일 하나가(1b), 생각 없이 입 밖으로 발설해 버린 말 한 마디가(3), 나보다 힘있는 자가 듣기에 거북한 말을 한 것에 대한 나의 드러나 버린 반응이(4), 항상 하던 익숙한 일에서 만나는 불식간의 실수들이 지혜의 든든함을 허무는 작은 여우들이다. 이렇듯 말할 때와 말을 들을 때 둘 다를 지혜로 다스릴 수 있어야겠다. 지혜는 전혀 뜻밖의 복병들 앞에 힘없이 무너질 수 있다. 그러므로 무디어질 수 있는 지혜임을 잊지 않아야겠다. 나의 게으름이나, 혹은 도끼가 무딘데도 불구하고 쉽게 생각하고 덤벼드는 오만한 습성 때문에 지혜롭게 사는 것이 힘들어지지 않도록 지혜로 가는 길을 늘 살피며 살아보자.

말할 때도 중요하지만(3) 말을 들을 때도 역시 중요하다(4)는 지혜자의 권면을 기쁨으로 받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마다 이 시편의 기도를 드린다: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141:3) 하지만 이처럼 하루를 사느냐의 문제는 언제나 실망이고, 그래서 고통스럽다. “이런 말들은 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라고 후회가 되는 말들이 얼마나 많이 이미 내 입 밖으로 나가버렸는지 모른다. 후회하는 것으로 약간의 심리적인 안정은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변변히 나의 못남과 수준 없음을 아파한다.

고장난 것은 고치면 되고, 잘못 간 길은 다시 돌아오면 되고, 기술(기능)은 연습하면 된다. 하지만 지혜는 배운다고 얻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깨닫는 것은, 지혜는 그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주는 처세술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진짜 지혜가 내 안에 가득하기를 기도한다.

나는 물론 사람들을 평안하게 해 주는 지혜, 사람을 살리는 지혜, 절망이 아닌 희망과 용기와 격려를 주는 지혜, 이렇듯 하나님의 지혜의 통로로서의 지혜를 열어가는 자로 살고 싶다. 목회도 그렇다고 본다. 30대 때까지만 해도 오직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목회라 생각했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뭔가를 하는 것이 충성된 일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다. 하지만 많이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하는 것이, 그리고 바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묵상]

 

실패했다는 것은 그만큼 성공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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