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자는 오늘에 내일을 담는다(전 8.1-8).

  20221211(Eccl. 8.1-8)

  

 

 

지혜자는 오늘에 내일을 담는다.

  

 

    본문 관찰

 

    지혜자 같은 자 누구며(1a)

    무슨 일에든지 시기와 판단이 있으므로(6a)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7a)

    죽는 날을 주장할 자도 없고(8a)

 

 

지혜자 같은 자 누구냐?

 

지혜는 만드는 것도, 만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본분’(12.13-14)을 따라 사는 자나 헛된 노고(勞苦)를 따라 사는 죄인(2.26)이나 공히 지혜의 주인은 아니다. 해 아래서 살아가는 모든 인생은 다 무슨 일에든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6-7)라는 말씀의 지배권 아래 있다. 솔로몬은 점차 이러한 인생의 비밀을 그가 받은 지혜를 통해서 겸손하게 시인하기 시작한다. 지혜자라 할지라도 알 수 없는 그 무엇의 영역이 엄존한다는 것을 좀 더 생각하는 아침이다.

 

 

1

 

    “어떤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인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지혜는 사람의 얼굴을 밝게 하고 굳은 표정을 바꾸어 준다.”(표준새번역)

 

질문은 있으나 답은 없다. 그토록 지혜를 찾아, 그것을 깨달아 보려고 몸부림쳤지만 말이다(7).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질문 밖에 없다. 사실 하나님에 관한 지식(Knowing about God)은 어느 정도 소유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 그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그는 지혜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과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이렇게 묻고 있을 뿐이다: “지혜자와 같은 자 누구냐?”

그래서 전도자는 지혜를 통해서 나오는 하나의 결과를 경험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지혜는 사람의 얼굴을 광채가 나게 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그 얼굴의 사나운 것을 변하게 한다. 지혜는 속사람을 건강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겉사람의 모양까지 아름답게 만든다. 이것이 지혜의 미학(美學)이다. 지혜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한 사람의 영혼을 만져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만났던 모세가 생각난다. 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을 받은 이후에 다시 산 아래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에는 영광의 광채가 났었다(34.29-35). 그의 얼굴이 하나님을 만난 하나의 결과(징후. 증거)를 드러내 주고 있다. 이렇듯 지혜는 전인(全人)을 온전케 하고, 영육(靈肉)의 균형과 건강을 열매맺게 한다.

 

 

6-8

 

    “우리가 비록 장래 일을 몰라서 크게 고통을 당한다 해도,

      모든 일에는 알맞은 때가 있고 알맞은 방법이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하여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자기가 죽는 날을 피하거나 연기시킬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악은 행악자를 놓아 주지 않는다.”(표준새번역)

 

지혜있는 사람은 또한 누구인가? 지혜있다 해도 장래 일을 아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크게 고통을 당하는 일 앞에 그대로 노출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혜는 고통을 면하게 만들어 주는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7.25a,27a)까지는 동일하다. 역시 물과 햇빛과 공기를 모든 사람에게 다 주신다(5.45).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사람의 본분을 다하며 사는 사람도 암()에 결려 죽는다. 그러니까 지혜는 이 세상을 좀 더 편하고, 유리하고, 고생 않고, 좋은 일만 만나고 얻게 되는 것을 위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지혜를 주신 하나님의 목적에는 별 관심이 없고, 지혜를 통해서 얻고 누리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혜는 세상을 좀 더 편리하게 살도록 주신 처세술이 아니다. 오히려 지혜는 사람의 본분’(12.13-14)을 다하며 살아가는 자들로 하여금 그 이름’(하나님)의 명예를 지키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나침반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솔직하게도 장래 일을 잘 모르지만 그러나 시기와 방법이 있을 것이라 말한다(6-7). 지혜는 그런 의미에서 신출귀몰(神出鬼沒)한 어떤 신비한 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혜는 능력이거나 그것을 얻는 무슨 방법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자세요 삶을 대하는 태도다.

 

 

부스러기 묵상

 

한 사람의 영적 건강이 얼굴에 나타난다는 지혜자의 통찰이 정말 옳은 것 같다.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 사람의 본분을 다하는 자라면 어찌 그의 얼굴이 사나운 것으로 표가 나겠는가. 이 역시 심는대로 거두는 것 아닐까. 하나님의 지혜를 심었다면 하늘의 기쁨이 나오는 것이고, 반대로 그 지혜가 아니라면 얼굴의 사나움이 그대로 있을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지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나의 언행심사(言行心事)로 나타난다. 나는 지금 지혜자의 얼굴로 새롭게 변화되어져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내 마음의 밭에 위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의 씨앗을 뿌려서 지혜 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자로 거듭나기를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

사람들에게 나의 얼굴이나 마음을 속일 수는 있다. 속은 그렇지 않은데 겉은 그럴듯한 모양새를 꾸밀 수는 있다. 배운 만큼, 나이가 든 만큼, 눈치가 쌓이는 만큼, 사람들 사이에서 생존의 게임을 해야하는 만큼, 뭐 좋은 게 좋은 것이니까 완전히 곪아 터져 서로 결별하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대충 속고 속이면서 가면을 쓰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약자의 처세술이니, 지혜로운 방법이니, 노련한 기술이니 하면서 변명을 늘어놓는다. 지금 이처럼 하는 것이 옳다는 얘기는 아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속이고, 자신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이 부분이 걸린다.

위장된 거짓 지혜에서 위선적이고 가증한 얼굴을 만들 수 있다. 이 정도면 정말 큰 일이다. 하루 종일 내 얼굴은 어떤 모습을 풍길까를 생각하면서 지냈다. 조심스럽다는 생각도 해 보고, 표정 관리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도 해 보고, 이제 내 얼굴을 책임질 때가 임박했다는 생각도 해 보고, 사람에게 비췬 내 모습,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내 얼굴의 됨됨이를 여러 모양으로 생각해 보면서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지혜가 얼굴을 밝게 해 주고, 굳은 표정을 바꾸어 준다는 지혜자의 충고를 명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의 본분을 다 하는 지혜를 따르는 삶에서 나온 모습을 소망한다. 지금은 내 얼굴이 나의 삶을 말해주는 지혜의 거울이라는 지혜자의 권면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할 때다. 지혜에 담긴 나의 오늘이 아름다운 내일로 빛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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