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9b(Eccl. 7.8-14)
보다 더 나은 지혜로(智慧路)가 보인다(2).
본문 관찰
…이 …보다 나으니라.
③ 일의 끝
④ 참는 마음
⑤ 지혜
⑥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
‘두 가지를 병행’(14) 하는 터치가 전도서를 생명있게 하는 뿌리 같다.
‘헛된 수고’(1.2-2.23, 3.16-4.16, 5.8-17, 6.1-12)와 대조를 이루는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본분’(2.24-3.15, 5.1-7,18-20, 7.1- , 12.9-14)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전도자의 설교가 다시 7장에서부터 고개를 내민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것 역시 하나님의 작품(13-14)임을 새삼스럽게 발견한다. 허무라는 헛된 수고로부터 ‘사람의 본문’으로 이동시키는 또 하나의 지혜 앞에 겸손히 서 본다.
…이 …보다 나으니라(Ⅱ)
지혜③ - “일찍 핀 꽃이 일찍 진다.”
지혜④ - “사랑은 오래 참는다.”
‘받음’이 시작이라면 ‘누림’은 끝이다. 그런데 “하나님께 받았으니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6.2)에서 알 수 있듯이 시작은 나았지만 일의 끝은 좋지 못하게 되는 것이 헛되기에 전도자는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8a)라고 말한다. 역시 누리게 하심이라는 일의 끝이 중요하다. 이것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얻는 것이기에 그렇다. 사실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또 모르고서 받음과 누림 이 모두를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얻으려고 하는 것에서 빗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시작은 그럴듯한데 일의 끝이 늘 문제가 되는 이유도 이것 아닐까 싶다.
국화꽃 한송이도 봄부터 소쩍새가 울어야 비로소 가을에 핀다면 시작한 일이 아름답게 마무리되기까지, 그래서 시작보다 더 나은 끝이 되기까지 더 얼마나 깊고 진득한 지혜가 필요할까.
이렇듯 시작의 꿈과 눈부심 때문에 교만(자만)한 마음으로 휘청거리는 것을 피해야겠다. 시종(始終)이 하나님이 주신 낙(樂)으로 채워지려면 ‘참는 마음’(8b, 인내, 오래 참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9) 지혜는 오래 참음에서 더 깊어지고 풍성해지는 열매를 맺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되새김질한다.
지혜⑤ - “지혜는 그것을 얻은 사람의 생명을 보존한다.”
지혜는 과거로 가는 문이 아니라 미래로 가는 길이다. 지혜가 햇빛에 비유된다(11).
지혜⑥ -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지혜가 해 아래의 것들과 비교(10-12)되는 것을 지나 지혜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12a)는 차원으로까지 초대한다. 참 지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생각해 보는 것에서 맛있게 익어간다. “…이 …보다”의 사이에서 만나는 것이 14절이기에 더욱 그렇다. 즉, “…이 …보다”에 들어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13b). 하나님은 이처럼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보다 더 나은 것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것들까지도 버릴 것이 없음을 주목하게 하신다. 이게 진짜 지혜다. 이것이 해 아래서 헛된 욕망과 허무의 늪에 함몰되어가는 것을 막아내는 힘이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14a)
형통과 곤고가 이처럼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8.28). 지혜 밖에 있는 어리석고 헛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이 역설의 진리와 지혜를 결코 알지 못한다.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마음가는 대로, 발 가는 대로 언행(言行)하며 사는 자는 결코 ‘참는 마음’의 끝을 맛보지 못한다. 그만큼 지혜와 상관없이 자가발전(自家發電)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부스러기 묵상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지혜③ - “일찍 핀 꽃이 일찍 진다.”
지혜④ - “사랑은 오래 참는다.”
지혜⑤ - “지혜는 그것을 얻은 사람의 생명을 보존한다.”
지혜⑥ -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인간은 그 마음과 심령과 영혼이라는 속사람까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다. 비록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여 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속하사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셨다. 다윗의 기도는 여기까지 이어진다(시51.10). 이 지혜의 문을 열고 은혜 앞으로, 진리 앞으로, 그러니까 하나님의 지혜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