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4]: 앗수르대첩에서 승리하다(대하 32.1-33).

20201213-14(묵상)

   

 

 

히스기야[4]: 앗수르대첩에서 승리하다.

2 Chr. 32.1-33

  

    본문 관찰

 

    앗수르대첩(1-23)

      A. 히스기야(1-8): “모든 성벽 보수 하나님 대신하여 싸우시리라.”(5,8)

      B. 산헤립(9-19): “하나님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겠느냐?”(14b)

      C. 히스기야와 이사야(20):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D. 승 리(21-23):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 보호하시매”(22b)

    히스기야의 훈장들(24-33)

  

 

히스기야만 같아여라!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다.

이는 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되는 일이 많다.”라는 뜻으로, 결국 좋은 일은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히스기야가 지금 그렇다.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1a) 앗수르의 산헤립이 유다를 침입해 들어온 것이 그것이다(1-2). 여기에 대한 히스기야의 반응과 응전의 모습이 23절까지 이어진다.

   

 

앗수르대첩(1-23)

 

앗수르라는 대국 앞에 조그만 유다가 응전을 하겠다는 것은 -산헤립의 비방(9-19)에서처럼 이를 단지 헛풍이라만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도 히스가야를 떨게 했을 수도 있었을 법하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이번에도 당당하다. 먼저 방백들과 용사들과 의논하고서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 밖 모든 물의 근원을 차단하고(2-4), 성벽을 보수하고, 외벽을 쌓고, 무기를 만들고, 군대를 정비하여 결사항전을 준비한다(5-6).

그리고 온 백성들에게 위로하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통해 안심을 이끌어낸다(7-8). 하지만 앗수르 왕 산헤립의 유언비어는 과연 힘이 있었다(9-19). 산헤립은 하나님이 앗수르의 손에서 유다를 건지시라는 거짓말에 속지도 말고 믿지도 말라며(11,13,15), 하나님을 욕하고 비방한다(17). 이렇게 해서 결국 금도를 넘은 것이다.

여기에 대한 히스기야의 반응(응전)이 눈부시다. 다름 아니라 그가 기도의 무릎을 꿇고 있어서다(20): 이르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물론 히스기야는 전쟁을 위해 해야 할 준비들(3-6)을 치밀하게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것들을 점검하고 의지하여 싸움에 나아가려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앗수르 산헤립이 비빙하고 모욕하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는 소위 기도한 것이 아니다. 그는 기도했다.

그러자 앗수르 진영의 큰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21a),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역사가 일어났다(22):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그야말로 하나님이 보호하사 유다와 예루살렘 만세다! 그 결과 산헤립은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돌아가고, 결국에는 아들들에게 살해되어 생을 마감한다(21b). 진실 같이 말하던 산헤립의 죄악되고 거짓된 말은 힘없이 패하고, 진심으로 언행심사(言行心事)를 믿음에 담아 하나님께 고백(기도)한 히스기야의 간구는 승전가가 되어 돌아온다.

   

 

히스기야 리포트(24-33)

 

     ⑫ 의롭다, 히스기야(25+29) - 29-32| 아비야, 스가랴의 딸(1)

     ⑬ , 므낫세(12+55) - 331-20| 헵시바(왕하21.1)

 

한편 히스기야가 죽을 병이 들었고, 선지자 이사야는 그가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왕하20.1). 그러나 히스기야의 기도의 눈물을 보시고 치료하실 뿐만 아니라 그의 생명을 15년 연장시켜주신다(24; 왕하20.2-7). 하지만 바벨론 왕에게 왕궁에 있는 것을 다 보여주었고(왕하20.12-15), 교만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온 이스라엘 위에 임한다(25). 이때 히스기야가 교만을 뉘우치고 회개하자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게 된다(26).

히스기야의 부와 영광과 형통은 어느 왕과 비교할 수 없는 심히 큰 축복이다(27-30). 여기서 흥미로운 것 하나가 있다. 다름 아닌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왕이 된 때는 그의 나이 12세다(33b, 33.1). 무슨 말인가. 만약 히스기야의 생명이 15년 연장 받지 않았다면 므낫세는 없다. 놀라운 것은 히스기야의 범죄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그를 긍휼이 여기실 뿐만 아니라 영원하리라 언약하신 유다왕조(다윗왕조)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신다. 이 시간과 역사의 사이에 히스기야의 회개와 기도가 자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보여주시는 절묘한 은혜에서 비롯된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또한 포로기 독자들에게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소망이 있다는 희망의 복음이었으리라.

   

 

부스러기 묵상

 

다시 한 번 더 히스기야를 생각한다.

악한 왕 아버지 아하스와 어머니 아비야(‘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스가랴의 딸) 사이에 태어나, 조부 요담의 의로운 통치를 9, 그리고 이어 아버지 아하스의 악한 통치 16년을 오로지 보며 자란 히스기야였다. 어쩌면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성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어머니의 신앙을 이어 받았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대학 졸업할 정도의 나이인 25세에 왕이 되자마자 첫째 해 첫째 달에’(29.3a)서부터 곧바로 성전과 유월절(제사, 예배)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명을 받는 선한 청지기로 끝까지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다. 무려 왕자로 25, 왕으로 29년이었으니 그의 생애 54년이다. 비록 약간의 뒤뚱거림이 있었다고는 하지만(25) ‘죽을 병을 통해서도 그 연장된 생명의 때에 자신의 뒤를 이어 유다의 왕이 될 므낫세가 태어났다는 것은 놀랍고도 신비한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한 번 더 돌아보게 한다.

물론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1년은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10년을, 10년을, 또 그만큼의 세월을 변함없이 한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다. 히스가야가 살았던 생애를 조금씩 넘어서 걸어보니 초심(初心)을 잃지 않고 끝까지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값진 보물인지를 공감하게 된다.

지킬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지키고 붙들어야 할 게 많은 사람은 또 그 사람대로 어제가 쌓여 된 오늘을 잘 지키고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그 오늘들이 모여 내일이 되고 역사가 되는 법이다. 어떤 인생인들 쉽고 가벼운 걸음이 있을까. 더욱 한 나라의 왕으로 세움 받아 살아간다는 것은, 그것도 자기 마음대로 다스리는 세상 나라와 달리 하나님의 말씀(율법)이 명한 바를 따라 살아가고 세워가야 할 유다의 왕이라는 자리는 그 영적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사실 이 어찌 왕에게만 적용해야 할 기준이겠는가. 작게는 한 가정의 부모로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리더십을 부여 받은 자로서, 정말 좀 더 들어가 보면 한 사람 청지기요 종으로서 그가 짊어지고 가야 할 사명과 소명의 짐을 히스기야와 다를 바 없다. 조그만 한 눈 팔거나, 교만이라는 악한 옷을 걸쳐 입기라도 한다면 한 순간 와장창 무너져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다 잃고 후회로 뉘우쳐 봐야 소용없다는 걸 누구 모르겠는가. 하지만 이 소용없는 것이 자꾸만 나를 끌고 가려고 달라 붙는다. 위기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자비와 붙들어주심을 구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은혜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게 히스기야만이 아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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