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2]: 유월절을 회복하다(대하 30.1-27).

20201210-11(묵상)

   

 

 

히스기야[2]: 유월절을 회복하다.

2 Chr. 30.1-27

  

    본문 관찰

 

    유월절의 회복

    A 준 비(1-12) -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두루 다니며 전하니”(6a)

       *이스라엘(10-11): “조롱하며 비웃었더라.”

           → 그러나

               “몇 사람이 스스로 겸손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이르렀고

       *유 다(12): “하나님의 손이 한 마음으로 준행하게 하셨더라.”

    B 의 식(13-27) - “둘째 달 열넷째 날에 유월절 양을 잡으니

       *유다 온 회중 + 이스라엘에서 온 모든 회중 + 나그네들(25)

   

 

유월절 축제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1b)

 

히스기야가 왕위에 오른 첫째 해 첫째 달’(29.3)이다.

그는 25세에 왕이 되어 29년 동안 유다를 다스린다. 놀라운 것은 왕 하나 바뀐 게 유다다. 그런데 지난 아하스의 16년과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역대기가 히스기야를 유다왕조(다윗왕조)를 대표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의 모델처럼 제안하는 이유가 희미하게 드러나고 있다. 성전을 회복하더니(29), 이제 유월절을 회복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온 유다가 나아가기 시작한다. 분명 은혜다. 분명 희망이다.

   

 

유월절을 준비하다(1-12).

 

히스가야는 유다 방백들과 온 회중으로 더불어 유월절을 지키기로 의논하였고(1-2), 모두가 이 일을 좋게 여기고”(4), 이에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두루 다니며”(6a) 전했다. 이를 위해 행한 히스기야의 소위 국정연설’(기자회견)은 한 편의 설교다(6-9). 마치 왕이 아닌 제사장 같은 분위기다, 이로 보건데 히스기야가 얼마나 율법은 물론 다윗언약(삼하 7)과 성전언약(대하 6-7)에 대해 정통하고 있었는지, 동시에 이것이 그의 입술만이 아닌 그의 심령과 마음에 불타오르는 하나님을 향한 청지기적 소명에 깊이 헌신되어 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한편 북왕국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이후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하나님께 범죄함에 있으니(7), 그러므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만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임을 분명히 고백한다(9). 하지만 북이스라엘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10-11): “조롱하며 비웃었더라.”(10b) 그러나(11) 모두가 다 복음을 거절한 것은 아니다: “몇 사람이 스스로 겸손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이르렀고”(11)

이는 마치 씨 뿌리는 예수님의 비유와 같다(8.4-15). 모든 마음밭(4 종류)이 다 뿌려진 씨앗이 열매를 맺은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중요한 것은 결실을 방해한 여러 요인들이다. 그렇다면 씨앗(말씀, 8.11)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받는 인간 마음의 밭이 문제다. 결실을 방해한 것은 마귀, 시련,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이다(8.12,13,14). 북왕국은 이미 나라가 결실로부터 멀어졌음에도 저들은 완악한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고, 결국 길가와 바위와 가시떨기와 같은 악한 마음을 회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유다는 북왕국 이스라엘과 달랐다(12): “하나님의 손이 또한 유다 사람들을 감동하사 그들에게 왕과 방백들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한 명령을 한 마음으로 준행하게 하셨더라.” 그렇다. 이들은 앞서 씨 뿌리는 비유에서 결실한 좋은 땅으로 히스기야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한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8.15)

   

 

유월절을 지키다(13-27).

 

    “둘째 달 열넷째 날에 유월절 양을 잡으니”(15a)

 

모두가 다 귀로 복음을 듣지만 이를 마음으로, 또한 삶으로 행하고 따르는 것은 아니다. 유월절 회복이라는 율법 준수에도 이 두 양면은 여전하다. 이 또한 모두 심은 대로 거둘 것이다. 유월절 준수를 위해 먼저 성전은 물론이고 예루살렘에 아직 남아있는 우상 제단들(향단들)을 제거하여 기드론 시내에 던진다(14; 29.16-19). 이어서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성결하게 하고(15-16), 회중 가운데서도 성결하지 못한 부정한 사람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성결하게 한다(17).

한편 유월절이라는 내용이 옳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드림이라 할지라도 그것의 형식도 율법의 규례대로 행해져야 한다. 내용과 형식, 그러니까 언행이 일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북왕국 이스라엘의 많은 무리는 자기들을 깨끗하게 하지 아니하고 유월절 양을 먹어 기록한 규례를 어긴”(18b). 그렇다면 이것은 내용은 붙들고 형식은 버린 셈이다. 이때 히스기야가 솔로몬의 기도에 의지하여(7.14) 허물을 용서하시기를 중보자적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의 허물을 사하신다(19-20).

자칫 유월절의 영광과 축제가 이들의 허물 때문에 슬픔과 하나님의 진노로 바뀔 뻔하였다. 하지만 인간의 연약함과 율법의 형식을 범한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용서하시고 사하여 주시기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문제를 해결하신다는 점, 이게 포로기 독자들에게 전하는 은혜와 자비의 메시지 여백이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히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5.15)

마침내 7일 동안의 유월절을 크게 즐거워하며 날마다 여호와를 칭송하며 여호와를 찬양하였으며”(21-22), 그리고 7일 동안 유월절 음식을 먹으며 화목제와 함께 하나님께 감사하였다(22). 그 기쁨과 감사가 너무나 크고 또 넘쳤을까. 유월절이 다시 7일 동안 연장된다. 마치 큰 집회(행사)가 마치고서 이후에 열리는 큰 기쁨의 피로연과 같은 후집회 분위기다(23-27).

 

      [다시 7일 동안 지킨 큰 기쁨의 후집회](25)

      유다 온 회중

    +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 이스라엘에서 온 모든 회중

    + 이스라엘 땅에서 나온 나그네들

    + 유다에 사는 나그네들

 

실로 기도의 향이 하늘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간다(27).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와 기쁨으로 나아가는 것은 모두에게 열려있다. 비록 이방의 나그네들일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 안에 보호를 받고, 구원의 하나님 안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은 저들을 유월절의 은혜 안에 품으신다. 그러할진대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은 없다. 회개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거부하는 죄인이 있을 뿐이다.

   

 

부스러기 묵상

 

     ▪모세의 율법이 명한 유월절 114

     ▪히스기야가 의논한 유월절 214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2.27)

 

유다는 유월절을 기록한 규례대로 오랫동안 지키지 못하”(5b)고 있었다.

히스기야가 이를 의논’(2)하자 왕과 온 회중이 이 일을 좋게 여기고”(4), 하지만 몇 가지 이유들 때문에 한 달 뒤인 214일에 유월절을 온 이스라엘과 유다가 다같이 지키게 된다(1,3). 어찌보면 히스기야가 이번에는 율법이 정한 규례를 어긴 것처럼 보인다. 모세의 율법은 유월절을 114일에 지키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히스기야가 한 달 뒤로 미룬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히스기야는 모두와 의논하고 마음을 모아 형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이것을 내용 안에 진심으로 담아낸다. 그는 형식과 내용 둘 다를 잃지 않고 품은 셈이다. 이는 예수께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는 말씀을 기억하게 한다(2.27).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 하신 것처럼 역대기의 유월절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흠향하신다.

유월절은 하나님께는 구원을 이루신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성도들에게는 이를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기쁨과 감사를 예배의 영광에 담아내는 살아있는 절기다. 이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다. 예배는 성도들을 치료하고 회복케 하는 은혜의 창고다. 역시 이 일은 한 사람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 있을 때 일어난다. 사실 유다는 왕 하나 바뀐 것 아닌가. 그런데 이 하나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 유다를 치료하고 고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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