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삿 8.24-35).

20211118(묵상)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Jdgs. 8.24-35

 

    본문 관찰

 

    왕 같은 기드온 가문(24-31)

    기드온의 죽음(32)

    이스라엘의 범죄(33-35)

   

 

또 하나의 올무

 

기드온, 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23b) 했으니 그럼 된 것 아닌가. 그런데 여러 정황이 심상찮다. 겸손한 언어 뒤에 숨어있는 포장된 욕망 덩어리와 같은 왕으로서의 가증한 모습 때문이다(24-26,29-32).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하지만 불법을 행하는 자들인 가짜들과 동일하게 보여지기 때문이다(7.22-23). 사사가 이 꼴이니 이스라엘의 영적 기상도는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두 얼굴의 기드온에게서 두 얼굴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본다. 아프다.

   

 

24-28

 

성공 뒤에 찾아온 공백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는 걸까? 기드온은 그의 인생의 마지막과 사역의 마무리 부분에서 그만 흔들린다. 그의 성공이 위대했던 것을 주목했던 우리로서는 전편(前篇)과 다른 미묘한 쪽으로 본문이 흐르고 있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느냐 하면, 지금까지는 상대방(미디안 or 이스라엘) 쪽에서 뭔가를 요구하던 분위기였는데 이번에는 기드온이 선수를 치고 나오는 부분에서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24a) 과연 기드온은 백성들에게 무엇을 요구할까? 본문에는 어떤 긴장이 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각각 그들의 고별설교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는 죄악을 범하지 않게 되기를 요구하였다(30.1-20, 24.1-28)는 점에서 기드온의 요청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마음이 아프다.

사실 바로 앞에서 새달 형상의 장식(21)을 취하는 부분에서 좀 걸렸는데 결국 이번에는 금귀고리를 청구한다. 이 대목에서 뭔가 이상한 기류를 탐지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무려 1,700 세겔이나 되는 금귀고리와 그 외의 여러 장식들과 패물들이 백성들로부터 기꺼이 모아졌고(25-26), 그 가운데 기드온은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서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다(27a). 문제는 에봇이다. 좀 더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에봇은 기드온이 결정적으로 몰락하게 되는 실패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설명하면, ‘에봇은 제사장과 관련된 예복의 한 부분이다(28.4-30). 기드온은 사사이지 제사장이 아니다. 제사장과 사사는 그 역할과 기능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다른 영역이다. 따라서 사사인 기드온이 에봇을 만들었다는 것은 정상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다. 여기에 뭔가가 있다. 그는 성공 뒤에 오는 영적 자만에 빠진 것 같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을 통하지 않고 사사인 자신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으로 봐 그들은 있으나 마나 한 기능 상실자로 취급한 모양이다. 이 판단이 옳다고 치자.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 그렇다고 기드온까지 그렇게 행동할 일은 못된다. 아무리 하나님이 쓰신다 한들 그 또한 죄인인 사람이요, 그 사람 가운데 특별히 하나님이 은혜를 받고 있는 도구에 불과한 것 아닌가.

이로써 이스라엘은 영적으로도, 영적 지도력으로도, 영적 권위로도 다 무너지고 만다. 한 사람의 오류와 영적 자만은 이처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지도자는 한 공동체의 최후의 보루이다. 그는 도미노의 첫 벽돌과 같은 존재이다. 특권과 은총을 받았다면 그만큼 책임도 주어진 것, 그것이 지도자의 몫이다.

염려했던 대로 이스라엘은 마침내 또 하나의 올무 가운데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증언한다: “온 이스라엘이 이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에 올무가 되니라.”(27b) 이것이 기드온을 통한 이스라엘의 평화가 40년으로 끝나는 이유가 된다(28). 기드온은 미디안의 7년 통치를 종식시킨 장본인이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의 평화를 40년으로 제한한 사람이 되었다.

   

 

29-35

 

기드온의 몰락은 여러모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성령충만(6.34)한 사람도 이처럼 추락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대목에서 씁쓸한 여운이 계속 맴도는 이유는 왜일까? 성숙을 향한 걸음은 더디고 멀지만 타락을 향한 추락은 그렇게도 쉽게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수록 아프다.

그는 민족(공동체)을 위해서는 성공했지만 가정(자신)을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실패한 사람이었다(29-32, 9.5). 자신의 영혼을 위해 투자하는 일에 게을렀음이 얼마나 큰 오점일 수 있는가를 아픈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는 자기를 돌아보는 을 갖는 일에 실패한 셈이다.

우리가 여기서 묵상할 수 있는 또 다른 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죄는 이처럼 무섭다는 점이다. 죄는 인간의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이것이 죄의 힘이다. 죄는 지위고하(地位高下), 남녀노소(男女老少), 빈부귀천(貧富貴賤)을 막론하고 시공을 초월하여 그 영향력과 지배력을 확장하는 무서운 힘이 있다. 마치 암 세포와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몰락하게 만든다. 결코 죄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새가 내 머리 위를 날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내 머리에 둥지를 내리는 것은 막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기드온이 놓쳤던 부분이 아닌가 싶다.

죄가 다시 온 이스라엘을 덮어버린다(33).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바알들을 음란하게 위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신으로까지 삼는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억지 아니하는 전적 타락으로 몰고 간다(34). 이럴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나 역시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음을 인하여 깊은 심령의 통증을 느낀다. 처음에는 기드온 때문에 애통해 하다가 지금은 나 자신 때문에 애통해 한다. 배은망덕(背恩忘德)도 유분수지, 어찌 그럴 수 있을까.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고 말한다.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Andre Kempen )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다시 오실 왕 여호와께

     오직 주만이 나를 다스리네.

     나 주님만을 섬기리 헛된 마음 버리고

     성령이여 내 영혼 충만하게 하소서.

     주님 앞에 내 생명 드리리라.

 

이 찬양을 계속해서 부른다: “나 주님만을 섬기리 헛된 마음 버리고 마음으로 눈물이 흐르고, 내 영혼을 촉촉하게 만져주시는 그분의 임재 앞에 조용히 두 손을 모은다. 무릎 사이로 흐르는 기도가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주여, 받으소서!

   

 

부스러기 기도

 

하나님 아버지, 기드온이 무너진 오늘 아침,

이스라엘의 내일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나의 오늘과 내일을 하나님 앞에서 다시금 새롭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했던 사람이 무너질 때 그걸 바라보실 수 밖에 없으신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실까 감히 묵상해 봅니다.

 

사람을 통해 일하시면서도 그 사람이 아버지의 곁을 떠나갈 때,

그를 붙드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기드온의 추락이 나에게도 역시 큰 충격으로 자리합니다.

나 역시 혹 언젠가 아버지의 말씀을 버릴 때가 있다면

그때 아버지 역시 저를 버리시겠지요.

두렵습니다.

장담한다고 될 일도 아니기에 더 없이 겸손으로 무릎을 꿇습니다.

내 비빌 언덕은 아버지 밖에 없나이다.

사랑 받았으니 사랑하다 주 앞에 서게 하시고,

사명 받았으니 충성하다가 부르시면 깨어나는 곳이 아버지 품이고 싶습니다.

 

한 가지 욕심이 있다면, 그 기드온이 무너졌다고 해서,

그래 나도 넘어질지 모른다는 악한 생각 때문에

기드온이 밟아보았던 정상을 지금부터 포기해 버리는

그런 어리석음은 결코 따르지 않을 겁니다.

이것 역시 내 힘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다시금 주의 보좌를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성령님, 나를 도와주소서.

아버지의 사랑을 기드온처럼 갚는 배은(背恩)은 아예 생각에서도 제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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