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 사사 예훗(삿 3.12b--31)

20211107(묵상)

  

 

 

왼손잡이 사사 예훗

Jdgs. 3.12b-31

 

    본문 관찰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대적하게 하시매 모압 왕 에글론을 18년을 섬기니라

    부르짖으매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왼손잡이 에훗이라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왕에게 아뢸 일이 있나이다

    에훗이 왼손을 뻗쳐 그의 오른쪽 위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이미 땅에 엎드러져 죽었더라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수들인 모압을 너희의 손에 주셨느니라

    모압이 이스라엘 수하애 굴복하매 18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원인과 결과

 

오늘 본문은 두 번째 사사기 사이클(cycle)에 해당한다.

아름다운 것은 흐르는 물에 새기고, 좋지 않은 것은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다. 이스라엘은 40년이란 은혜를 이렇듯 18년이라는 심판으로 바꾸어 버리고 만다. 하나님은 이번에는 모압 막대기를 사용하사 이스라엘에게 죄에 대한 심판을 행하셨다.

 

12b-13

 

종려나무 성읍’(13b)은 여리고성이다. 가나안 정복전쟁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바로 그 여리고를 적()의 손에 넘겨주고 말았다.

   

14-15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18년 동안 섬기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40년의 평화는 다시 하나의 과거, 그러니까 기억 속에나 남아있다. 은혜와의 단절, 과거와의 불연속성이 오늘의 이스라엘을 혼돈 속에 밀어 넣고 있다. 어제의 은혜가 오늘의 샬롬(평화)을 보장하지 않는다. 은혜는 자동적으로, 인간이 그 은혜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와 상관없이 그냥 계속해서 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거두어 가시면서까지 죄의 값을 치르게 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이게 은혜 아닌가. 18년 동안이나 당신의 품을 떠나 한 번도 찾지 않던 자기 백성들이,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그 모습 그대로 받으신다. 찢기고 상한 심령들, 죄로 물든 영혼들, 죄로나 우로 치우쳤던 백성들, 하나님의 법을 세상의 악으로 대치시켰던 선민들, 이렇듯 지난 18년 동안 철저하게 하나님을 외면했던 성도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다시 돌아왔다: “빈 손 들고 앞에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샘에 나가니 맘을 씻어 주소서.”(찬송가 494????만세 반석 열리니???? 3)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죄악으로 보답했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범죄를 다시금 은혜로 용서하신다. 이 은혜는 하나님께서 한 구원자 사사 예훗을 세우심으로 시작하신다. 은혜는 이처럼 언제나 위로부터 임한다. 하나님이 한 사람을 찾아오심으로 그는 사사가 되고 하나님의 뜻은 마침내 다시 가나안에서 부흥케 된다. 결코 짧지 않았던 18년의 고통은 물러간다. 어둠의 세력은 힘을 잃게 된다.

 

20

 

에훗이 그에게로 들어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 에훗이 이르되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왕에게 아뢸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의 좌석에서 일어나니

 

예훗은 자기의 뜻을 펼치지 않는다. 이것이 위로부터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하나님의 뜻은 땅의 소산이 아니다. 이것이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라고 선언하는 예훗의 고백 속에서 발견되는 신앙이다.

나는 나의 생각과 계획을 주장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도서쯤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는지, 이를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신앙은 내 뜻에 하나님의 것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는 것이다. 예훗은 이 원리에 매우 충실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지도자의 모습이다. 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과 성경, 심지어 성령님까지를 수단으로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인생은 불행한 사람이다.

사사는 하나님의 뜻을 모압 왕에게 고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선포된 말씀(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기록된 말씀을 통해, 육신을 입으신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하신다. 지위고하(地位高下), 남녀노소(男女老少), 빈부귀천(貧富貴賤)이 하나님의 뜻을 고하는 일에 걸림돌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이 전하는 자를 통해서 왜곡되어서는 안되지만, 또 대상 때문에 가감되어서도 안된다.

 

 

27-29

 

그가 이르러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오니 에훗이 앞서 가며,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수들인 모압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매 무리가 에훗을 따라 내려가 모압 맞은편 요단강 나루를 장악하여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그 때에 모압 사람 약 1만 명을 죽였으니 모두 장사요 모두 용사라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였더라.”

 

에훗이 앞장을 선다(27). 지도자의 모습이다. 어려운 일을 남에게 시키고, 일이 다 되어지면 얼굴 내미는 것이 아니라 앞서 가며 나를 따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수들인 모압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28a)는 선언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비롯된 언행임을 보게 된다. 믿음 없은 말 만 앞서는 허풍(虛風)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신앙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지도자 에훗에게는 이러한 믿음이 있었다. 나에게도 이러한 언행이 믿음에서 비롯되도록 다시금 나를 말씀과 기도 앞으로 나아간다.

모두 장사(壯士)요 모두 용사(勇士)”1만 명의 정예병을 물리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어떤 생각,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궁금하다. 무엇보다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면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가를 경험하는 기적을 체험한다. 기적은 멀리 있지 않다. 기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하는 바로 거기에서 경험된다. 하나님 안에 불가능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있을 뿐이다. 문제는 나다. 믿음 없는 내가 문제다.

 

30

 

그 날에 모압이 이스라엘 수하에 굴복하매 그 땅이 18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80년이면 세 세대 정도 해당하는 세월이다. 말씀대로의 순종은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의 세계를 여는 열쇄와 같다. ‘그 날이 왔다. 평화의 날! 주님, 우리에게도 복음 안에서 승리하는 그 날을 주옵소서! 우리의 믿음 없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이미 승리해 놓으신 싸움이 초라해지지 않도록 최후 승리를 얻는 그 날까지 십자가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아가는 성도의 행진 앞에 항복하게 되어 있다. 세상이 아무 일 없이 그냥 먼저 항복하는 일이 먼저 있지 않다. 사탄은 스스로 자기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엄밀하게 말하면 포기하게 된다. 그의 계략이 꺾이게 된다. 그렇다면 왜 악의 세력이 항복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가? 역시 원인은 우리에게 있다.

한편 평화는 자동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이것을 위해 마땅히 치루어야 할 대가가 있다. 나는 하나님의 평화가 내가 속한 공동체 위에 이루어지기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대가를 지불하기를 원하시는가?

 

소사사 삼갈(31)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아낫은 이스라엘 여신의 이름인데 그런 가계(家系)의 후손이 사사로 쓰인다. 뭔가 비정상적인 플롯(plot)이 자꾸 반복되어 나타난다(15절 왼손잡이).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 부족하고 뭔가 어색한 것을 통해서도 역사를 이루신다. 사람에게 제한되지 않으시는 분이시게 때문이다.

   

 

부스러기 묵상

 

신앙은 내 뜻에 하나님의 것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 불가능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있을 뿐이다.

 

한 구원자 에훗의 모습이 흥미롭다. 그는 왼손잡이’(15)로 소개되는데 원어(原語)를 살펴보면 그는 오른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다. 한편 [사시기]를 하나의 문학적 앵글로 들여다 볼 때 이스라엘이 지금 온전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심각한 영적 장애(障碍) ()이다.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에훗을 들어 쓸 만큼!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 들어서, 무식한 자를 들어서, 부족하고 못난 자를 들어서 부요하고 유식하고 잘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는 한 소년의 도시락으로 5천명이 먹고도 12 광주리가 남게 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 한 마디로 홍해를 가르시며, 천지를 창조하시는 분이시다. 이렇듯 사사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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