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하나님께 묻지 아니할 때 일어나는 일들(수 9.1-15)

20210606(양무리교회)

  

 

 

하나님께 묻지 아니할 때 일어나는 일들

Josh. 9.1-15

 

    본문 분석

 

    가나안일보(1-2)

        1 요단 서쪽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 연안에 있는

           헷,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이 이 일을 듣고

        2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

       무혈전쟁(無血戰爭, 3-15)

        3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4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14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15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두 전쟁(6.10-17): ()과의 동침

 

이스라엘은 보이는 전쟁에서는 승리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는 실패한다. 기브온 거민(居民) 히위 사람의 계략에 말려들어 언약을 맺게 되어서다. 아이성을 정복함으로써 마침내 순탄하게만 보이던 가나안 정복은 또 하나의 변수를 만남으로써 휘청거리며 위기를 만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약속의 땅으로 들어왔지만 이스라엘은 가나안이 만만치 않는 곳이라는 점을 이 사건을 통해서 다시 새롭게 깨닫게 된다.

가나안에 있으나 여전히 광야의 파편들이 그들을 위협한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나 여전히 옛 성품(자아)의 지배를 받게됨으로써 성령 안에서의 풍성한 생활이 위협받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가나안은 무풍지대가 아니다. 예수 안에 살아도 고난과 시련과 실패가 피해가지 않는다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들이 왜 시작되고 있으며, 또 어떻게 하면 이러한 죄로부터 자유하게 될 것인가. 기브온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무엇을 교훈하는가.

   

 

1-2

           1 요단 서쪽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 연안에 있는

              헷,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이 이 일을 듣고

           2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

 

가나안의 족속들은 이 일을 듣고서 하나님의 계획을 정면으로 대적(항거)한다.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을 자청한 것이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에 의하면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듣고 인간이 나타낼 수 있는 반응은 다음 2가지다.

a. 2.37 -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b. 7.54,57-58 -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c. 불행하게도 가나안 족속들은 후자, 곧 스데반의 청중의 길을 택한다.

 

인간(세상)은 악을 위해서는 서로 하나가 되어 뭉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다가도 하나님을 대항하고, 복음을 거부하는 일에는 친구가 된다. 죄와 악의 유유상종(類類相從)이다.

a. 23:11-12 -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b. 2-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 ()은 자기들끼리 뭉칠 뿐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대항한다. 요한계시록을 보라(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가나안은 이처럼 멸해야 할 7족족이라는 죄와 악의 세력과 이스라엘 사이의 영적 전쟁터다. 이렇듯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그저 우연히, 그냥 쉽게, 자동적으로, 그래서 때가 되면 얻어지는, 싸움과 전쟁 없이 승리만이 보장된 그런 곳이 아니다.

바울의 [영적전투 선언문]을 보라. 사도 바울 역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성령 안에 살아가지만 여전히 죄의 법이 우리를 주장하여 우리를 실패하게 하려는 거대한 전투가 곧 신앙생활이라 선언한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1-24)

   

 

3-13

         3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4 꾀를 내어 6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8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1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도 죄는 은밀하게 계획되고 또한 진행되고 있다.

a. 죄와 악은 언제나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통해서 죄는 마침내 인간의 머리와 가슴과 영혼까지 장악(침노)해 들어온다. 옛날 가나안에서만 아니고 지금 우리 각 사람에게도 그럴 수 있다.

b. 때문에 영적 자각이라는 센서가 작동해야 하고, 그리될 때 죄의 짐 앞에서 비로소 몸부림치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죄가 아파 눈물 흘려보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그러기에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감격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자신의 죄에 대해서 통곡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하나님에 대한 간증을 들어 보라(7-10, 20.10-18 참조). 최소한 표면적으로 볼 때는 얼마나 멋진 간증인가. 그러나 거기에는 엄청난 계략이 숨어 있다. 독버섯일수록 아름답고 가짜일수록 꼭 진짜 같다.

a. 신앙은 그럴듯한 말에 있지 않다. 사탄도 광명한 천사로 위장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에 등장하는 옛 뱀(12.9, 마귀, 사탄)과 그의 쇼에 놀아난 하와의 그럴듯한 언어를 보라(1-6). 사실 말이 그럴듯한 사람 치고 진실한 사람이 드물다.

b. 따라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영적 분별력이다. 여호수아가 거짓의 세력의 위장술에 속을 정도라면 우리는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가나안은 결코 안전 지대가 아니다.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우리는 여기서 대단히 중요한 영적 원리들을 깨닫는다.

a. 믿는 가정에 태어났다는 것이 하나님 안에서 누릴 풍성한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

b. 교회의 회원, 즉 교인이 되었다는 것이 곧 구원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c. 한 번의 승리(여리고와 아이성 전투)는 그 뒤의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우리 역시 언제나 패배할 가능성이 있다. 지상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이다. 결코 완전하거나 안전하지 않다.

d. 우리는 이 배후에서 끊임없이 믿는 자들을 미혹하는 악의 세력, 사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성경의 가르침을 계속 들어보자.

*22.31-32 -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6.13 -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벧전5.8-9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14-15

           14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는고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15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가나안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간략하게나마 이를 먼저 알 필요가 있다.

a. 3.8,17 -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8)

b. 33.51-53,55-56 -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깨뜨리며 산당을 다 헐고, 그 땅을 점령하여 거기 거주하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소유로 너희에게 주었음이라.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

c. 20.16-18 -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d. 그리고서 본문(3~13 11.19) - “기브온 주민 히위 족속 외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고 이스라엘 자손이 싸워서 다 점령하였으니”(참조; 23.12-13,16)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처럼 계속해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족속을 다 진멸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기브온 거민(히위 사람)을 가나안 땅에 용납하는 언약을 맺고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15a)고 맹세하고 말았다.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는가? 그것은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14b)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14b) 그렇다. 죄가 행해지는 곳, 또는 죄를 선택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공식과도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 없음’(하나님 부재 )이라는 일그러진 자유함이다. 죄로 오염된 인간의 마음과 심령은 아무리 최선의 결정과 선택을 했을지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닌 자신의 주관(主觀)에 따른 결정일 경우에 그것은 불완전하여서 결국 범죄하기에 이르게 된다.

a.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일을 결정할 때의 최종적인 권위는 언제나 말씀에 두어야 한다. 자신의 경험, 지식, 확신, 주관으로부터 나온 생각이나 결정은 위험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계시의 빛의 조명을 받을 때에만 하나님과 멀어지는 악순환을 벗어날 수 있다.

b. 무엇인가 결정하고, 선택해야 할 일이 있는가? 기도하라!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대로 따라가지 말고, 다시 말하면 자신의 주관주의(主觀主義)적 적용에 맡기지 말고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따르라!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결정한 것은 모래 위에 세운 집처럼 언젠가 무너지게 되어 있다.

 

 

부스러기 묵상

 

영적 혼합주의를 경계하라!

이스라엘 백성들과 여호수아처럼 동일한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하나님은 세상이라는 거짓과 악이 거룩한 것과 섞이는 것을 가장 싫어하신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 가나안이 죄로 물드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 죄를 물리치며 악의 세력을 정복하기를 기대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동일한 말씀이 우리에게도 주어졌다.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다시는 죄의 노예로, 옛 성품의 존재로,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로, 진노하심 아래로, 자연인으로, 사탄의 졸개로, 다시 애굽으로, 뽑아 버려야 할 가라지로, 돌밭이나 가시밭처럼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1. “날마다 성경을 상고(詳考)하므로

 

그렇다면 이러한 오류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없는가?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한다(17.11-12a):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

 

(1)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 여호수아는 이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어떻게 할 것을 하나님께 묻는 자세를 취했어야 한다. 그러므로 해답은 말씀밖에 없다. 말씀에 의지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열쇠다. 그렇다면 말씀을 먼저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말씀을 들어야 한다! 겸손히 무릎 꿇고 말씀에 귀 기울이면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말씀의 샘을 깊이 파라!

 

(2)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갈림길에 서게 될 때 우리가 취해야 할 선택은 이것이다:

 

정말 말씀이 이것을 명하고 있는가?

지금 내가 따르려는 결정은 말씀의 지지를 받고 있는가?

하나님은 이 문제에 대해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3) 여호수아의 오류(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묻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여호수아의 교훈을 기억하는 것이다. 즉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을 때 일어난 고장난 상태, 무너진 외양간, 잃은 것들의 충격, 깨어지고 넘어진 실패의 시간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또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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