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사밧[2]: 아합과 동맹이라고?(대하 18.1-27)

20201121-22(묵상)

   

 

 

여호사밧[2]: 아합과 동맹이라고?

2 Chr. 18.1-27

  

   본문 관찰

 

   여호사밧과 아합

   이스라엘[아합]과의 동맹(1-3) - “2년 후에”(2a)

   거짓 선지자 400vs 미가야(4-27)

   

 

아합동맹

 

   “그가 왕위에 있은지 3년에 ”(17.7a)

   “2년 후에 ”(2a)

 

여호사밧이 사돈인 아합을 만나러 사마리아(북왕국의 수도)로 내려간다(1).

이어 이 둘은 소위 아합동맹을 맺고 길르앗 라못을 치기로 약조를 맺는다(2-3). 하지만 여호사밧은 하나의 조건을 제시하는데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4) 묻기를 제안하고, 아합은 400인의 선지지를 모아 그들로부터 올라가소서라는 답을 듣는다(5). 하지만 여호사밧은 다른 선지자에게 묻기를 청하고, 아합은 탐탁찮은 선지자 미가야를 통해 이 아합동맹의 부정적 결과를 통고 받는다(6-19). 다름 아닌 거짓말 하는 영’(21)이 아합을 꾀어 결국 그가 전사하게 될 것이 예고되고(20-22), 미가야의 생사는 전쟁 후로 미뤄진다(23-27).

   

 

이스라엘[아합]과의 동맹(1-3) - “2년 후에”(2a)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아합의 딸과 혼인을 한다(21.6). 이는 여호사밧과 아합이 사돈 관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2년 후에소위 길르앗 라못을 정벌하려는 아합동맹이 맺어진다(2-3). 앞서 보여준 여호사밧의 모습에 비춰볼 때 우려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유다왕 답게 여호사밧은 역시나 싶은 하나의 제안을 더한다: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오늘 물어 보고서!”(4)

분위기는 좋지 않다. 북왕국과의 혼인에, 동맹에, 하지만 하나님께 묻자고는 하는데 결국엔 그 물음과 답에 관계없이 전쟁에 출정하는 것 등 여러모로 혼돈스러운 게 사실이다. 사실 앞서 17장에서 보여준 여호사밧의 출발은 눈부셨다. 그런데 늘 그렇듯 좋은 분위기가 그렇지 않는 쪽으로 향한다. 그래서 왜 이러지 싶다. 결국 북왕국과 정략적이고 정치적인 선택(결정)을 한 셈이다. 이것은 유다가 가야 할 길은 아니다. 북왕국이 어떤 나라인가.

   

 

거짓 선지자 400vs 미가야(4-27)

 

   ① 올라가소서 하나님이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5)

   ②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10)

   ③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11)

   ④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19)

 

다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예언을 한다. 하지만 다 거짓 선지자들이 한 말이다. 무려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이 거짓을 외친다(5, ). 시드기야는 철로 만든 뿔들 상징’(10a, )까지 들고 나와서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진짜처럼 말하는가. 그는 미가야의 뺨을 치면서 한 술 더 뜬다: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아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23) 어떤 선지자들도 덩달아 날뛴다: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승리를 거두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11, )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미가야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이렇다: “누가 이스라엘 왕 아합을 꾀어 그에게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까.”(19, ) 결국 한 영이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21a) 하나님에 의해 이렇게 허락된 재앙이다(21b-22). 그런데 가짜들이 날뛴다. 가히 종교놀음이고 가짜놀이다. 이를 한 나라와 왕의 이름으로 자행한다. 이게 북왕국 이스라엘(아합)의 적나라한 실상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까지를 빙자해 여호와의 신탁쇼를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벌이는 위인들이다. 성령은 보이지 않으니 종교가락에 올려 자기들 마음대로 연주해 낼 수 있다. 이는 무서운 일이다. 하나님을 속이고, 성령을 거스르면서까지 인간이 자기 욕망과 욕구를 이루려고 할 수 있다니 심장이 멈출 일이다. 어떻든 그래도 북왕국 이스라엘 아닌가.

 

 

부스러기 묵상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각각 평안히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16)

 

하나님은 미가야 선지자를 통해 아합의 최후를 보여주셨다(16).

그는 길르앗 전쟁에서 죽을 것이고, 그리고서야 백성들은 평안히 귀가하게 될 것이다. 아합은 목자가 아니다. 그러니 목자 없는 양 같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고달플까. 그럼에도 그는 평안히 돌아올’(26a)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평안히 돌아올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다(16). 아지만 끝내 죽음으로 되돌아올 때까지 아합은 불행하고 가련한 존재일 뿐이다. 그래, 왕이어서 더 불쌍할 뿐이다. 그는 이처럼 끝을 맞을 것이다.

하지만 선지자 미가야는 거짓 선지자 시드가야에게 뺨을 얻어 맞고(23), 아합은 그를 옥에 가두고 죽지 않을 만큼의 음식(‘고난의 떡과 고난의 물’. 26)을 먹으며 고통과 시련을 맞는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실만을 외친 결과가 이 꼴이다. 하지만 미가야는 잠시 고난 받는 편을 택하였고, 아합은 영원히 저주 받은 쪽에 선다. 믿음의 사람들이 그랬다. 진정한 하늘의 은혜는 이처럼 늘 핍박을 겸하여 받는다.

한편 이 이야기는 유다 여호사밧의 부록(삽화)에 해당한다. 그럼 역대기 기자는 왜 남왕국 유다편에 북왕국 이야기를 예화처럼 집어넣었을까. 열왕기에 기록되어 있는 중요 이야기(사건)를 기록하지 않았으면서도 유독 이 북왕국 이야기를 그것도 비교적 길게 역대기에 언급하고 있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여러 가지 목적(이유)이 있을 것이다. 유다와 비교되는 북왕국의 실상을 보여주면서 일순간 헛발질을 하면 이처럼 추락할 수 있는 게 인생인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또한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양발을 하나씩 걸쳐놓고서 다중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것 같은 유다왕 여호사밧의 못남이 자칫 온 유다를 불태울 수 있는 시한폭탄과도 같음을 보여준다. 두 왕들이 똑같이 하나님 밖에서 놀아났지만 다른 결과를 맞은 것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작동되고 있는 유다를 바라보게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북왕국)을 의지할 때 어떤 위기와 고통이 오는가를 깨닫게 한다. 세상의 권력과 시류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 미가야가 보여주는 언행을 보면서 잠시 평안한 것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평안 쪽에 설 것인가를 바라보게 한다.

하나님의 선지자로 살아도 위기와 고통은 늘 필수품처럼 따라온다. 반대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왕이 주는 빵 부스러기를 받아먹는 맛에 취해 살아가는 자들이 얼마나 추악하고 부끄럽고 볼품 없는 인생인가를 두 눈 똑바로 뜨고 보게 한다. 지도자가 잘못 결정하고 그릇된 길을 가면 주변의 많은 사람이 고생하고 바른 길을 잃어버린 채 고통 속에서 살게 된다. 세상에는 하나님보다도 사람(, 권력자, 가진 자)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것에 인생을 건 자들이 많다. 종교적인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가 종교적이거나 바른 진리에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성령을 속이면서까지 자기 목적을 성취하려는 자들이 득세하는 게 세상이다.

세상에는 어디나, 어느 때나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이 공존한다. 하지만 이 흐름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악을 물리치시며, 저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이제 아합의 최후는 이미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여호사밧은 어찌될까. 이어지는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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