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13 - 신수성가Ⅱ.神手成家Ⅱ(룻 4.13-22)

20201018(양무리교회)

  

 

 

룻기13_ 신수성가(神手成家)

Ruth. 4.13-22

  

   본문 분석

 

   13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 찬양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18 베레스의 세계는 이러하니라

   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회 복

 

룻기의 1장과 4장은 극적 대조를 이룬다.

죽음으로 시작하더니 출생으로 맺는다. 장례식으로 막을 열더니 결혼식으로 막을 내린다. 하나님을 부재하게 만든 비극으로 출발하더니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과 소망으로 마무리된다. 한마디로 회복과 부흥의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여호와께서

이 모든 일의 주도권은 하나님이 쥐고 계신다. ‘여호와께서’(11-14)로 계속 이어지는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부재와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1장은 하나님 없이 살았고, 동시에 그럼에도 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인생들의 결론, 하지만 그것은 참담한 실패였다. 약속의 땅에 들어왔으나, 택한 선민이지만, 언약의 백성이지만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언행함으로써 잃어버렸던 10년은 가히 충격 아니었던가.

룻기 시대 여호와를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이 부재중인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여호와께서 이루신 영광을 볼 수도 없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살아가는 자들에게 4장은 없다는 얘기다. 때문에 하나님은 이미 우리와 함께 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부재 아래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룻기의 교훈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찬송할지로다!

나를 마라’(고통, 슬픔)라 칭하라.”(1.20-21) 이것이 나오미가 1장에서 자신을 가리켜 한 고백이다. 그녀는 탄식과 절망의 비가(悲歌)를 불렀었다. 그런데 4장에 이르러서 이웃들로부터 찬송하리로다’(14)로 화답을 받는 자리까지 나아가 있다.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한 사람들은 이처럼 살아간다: “찬송할지로다!” 누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가. 자신의 인생에 개입하신 하나님을 보고 체험한 사람이다. 하나님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가 여호와께서 이루셨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 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한다. 룻기는 그 하나님이 임재하신 바로 이 지점까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갔다.

   

 

족보 이야기

 

하나님의 부재를 통한 고통은 10년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통한 영광은 대()를 이어가고 있다. 짧은 13절이 1년의 세월을 요약하고 있고, 17절은 무려 3()에 걸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비추어준다. 룻기의 저자는 매우 간결한 족보를 드라마가 끝나고 난 자막에 타자기가 만들어주는 활자기법과 같은 방식으로 비추어 주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먼 미래를 바라보도록 이끈다.

성경을 연구해 보면 참 많은 족보들이 발견된다. 그런데 모든 족보가 다 룻기의 것처럼 되어 있지 않다. 성경에는 고라나 아간과 같은 족보도 있다. 이처럼 두 종류의 족보가 다 등장한다. 성경의 족보들 가운데 몇을 좀 살펴보자.

  

 

1. 자신으로 끝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부모들의 대에서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을 잘 관리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자식들의 대에로 물려주어야 할 몫까지 자신의 대에서 거덜내 버리고 영적인 거지로 전락해 버린다. 뿐만 아니라 자신으로 그 동안의 족보가 끝나 버리는 비극을 맛보게 된다.

 

(1) 고라 & 다단과 아비람의 가문(16.1-35)

  ▪레위 고핫 이스할 고라 ?

  ▪르우벤 엘리압 다단아비람 ?

 

고라(레위)와 다단과 아비람(르우벤)이 당을 짓는다. 같은 레위 족속이면서 지도자로 있는 모세를 시기하였고, 이스라엘의 장자인 르우벤 족속을 뒤로 하고 셋째인 레위 족속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있는 것에 불만을 품고 반역을 시도하였다. 결국 이들은 땅이 갈라져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 체로 음부에 빠지며”(16.32-33a) 완전히 패망하는 가문이 되고 말았다.

 

(2) 아간의 족보(7.1,16-18,25)

  유다 족속 세라 족속 삽디 갈미 아간 ?

 

여리고성을 정복하면 모든 물건이 다 여호와께 바쳐져야 했으나(Herem, 6.17-18), 사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하나님께 바치지 않고 누군가가 감추었다(7.21). , 이 불순종 때문에 유다 족속 아간의 가문이 패망한다. 아간은 내일보다는 오늘이 더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에게 소망이 있을 수 없었다.

 

(3) 엘리 제사장의 가문(삼상1.9, 4.12-22, 왕상2.27)

  ▪아론 이다말 엘리 홉니와 비느하스 이가봇 ?

 

한 때는 4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의 사사로, 또한 제사장으로 쓰임 받았지만 엘리의 집안은 완전히 패가망신(敗家亡身) 하게 된다. 블레셋 전투에서 언약궤를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은 이 전투에서 사망한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아버지 엘리는 목이 부러져 죽고, 비느하스의 아내는 아들을 낳았으나 시부와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이라 부르고서는 숨을 거둔다.

 

(4)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가문(삼상9.1, 31.6, 삼하4.1- , 9.1- )

  베냐민 지파 아비아 기스 사울 요나단 므비보셋 역대상 8.33-40

 

그는 왕이 해서는 안 되는 죄를 범함으로써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삼상13.13-14)는 선지자의 선언과 함께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왕권을 넘기실 것이라는 선고를 받게 된다.

사울의 집에 남은 자는 요나단의 아들 장애인 므비보셋 뿐이다. 다윗은 요나단과의 우정을 생각하여 그를 왕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나누는 자로 살아가는 은혜를 베푼다(삼하9.13). 그에게 젊은 아들 미가가 있었는데 그의 후손의 족보는 역대상 833-40절에 기록되어 있다. 만약 사울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그의 일생을 마쳤다면 그의 후손들이 다윗의 신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을 것이다. 그의 족보는 명맥을 유지하다가 흔적 없이 사라진다.

   

 

2. 전혀 새로운 출발(시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다 끝난 인생이 아니라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 그렇게 사라져버린 잡초들이 아니다. 1년생, 혹은 하루살이 인생이 아니라 오고오는 세대에 영롱하게 빛나는 한 알의 밀알들이다. 그들은 여느 사람들처럼 다 죽었으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었고, 오늘보다 더 확실한 내일(미래)을 개척해 내는 한줄기 빛이었다. 이들의 족보는 생생하게 살아 있다. 생명이 있다. 죽었으나, 그러나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다. 그리하여 다윗으로, 또한 그리스도에게로까지 이어지는 축복의 연결 고리들로 쓰임 받았다. 이처럼 쓰임 받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다말, 라합, 룻이다.

 

다말: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를 낳고 ”(18a, 1.3a)

야곱의 손자이며 유다의 맏아들인 엘의 아내 다말은 계대결혼법의 우여곡절을 따라 시아버지 유다와의 사이에서 쌍둥이 형제인 베레스와 세라를 낳게 된다(38.1- ). 그녀는 가나안 여인으로 추정되지만 메시야의 족보에 오르는 것 이외에는 전혀 알려진 바 없다. 그녀는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 그 뒤를 잇는 축복이 유다에게로 이어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라합: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21a, 1.5a)

여호수아 2장에 나오는 여리고 정탐 때 그곳에서 기생으로 살아가던 여인이다(2.1- ). 그녀 역시 믿음’(11.31)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속을 받았으며, 유다 자손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고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르게 된다. 그녀는 자신뿐만 아니라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2.13)와 함께 약속의 계보에 참여하게 되는 축복을 받는다.

 

: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21b, 1.5b)

모압 여인이었지만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은총을 받고 메시야의 계보에 당당히 참여하게 된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룻기를 산책하면서 깨닫게 된 묵상의 부스러기들이다.

 

이들은 다 한결같이 이방인들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다들 초신자들이다. 또한 제1대 신앙의 사람들이다. 먼저 믿은 우리로서는 나중 된 자로 먼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긴장하며 수납할 수 밖에 없다. 우리 역시 그럴 수 있다. 자칫 멍 때리고 있다가 그럴 수 있다. 주님은 언제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시기에 그렇다. 때문에 우리 역시 날마다 영적으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결국 레이스에서 탈락하거나 도태(淘汰)될 수 있다. 잠시 위에서 살펴보았던 사람들처럼, 아니 룻기에 등장하는 그 기업 무를 자, 아무개씨처럼 말이다.

   

 

당신의 족보는 건강한가?

 

나로 끝나 버리는 족보인가?

그러니까 내가 최고의 정점(정상)에 기록된 족보인가? 그리하여 당대 이후에는 서서히 내리막길에 들어서는 몰락해 가는 족보인가? 아니면, 마치 다말과 라합과 룻처럼 새롭게 시작되는 축복의 밀알인가?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성경은 사람을 주목한다. 그의 지위나 직업이나 재산이나 권력의 눈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거나 가치와 영향력을 말하지 않는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가 만난 하나님을 그의 후손에게 이어주는 역할을 믿음으로 감당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오늘 룻기 4장에도 사람들의 이름이 하나 둘 등장한다. ‘낳았고로 이어지는 족보일 뿐이다. 나오미를 보아도 그렇다. 그녀는 다 잃었으나 모압에서 룻 하나, 사람을 얻는다. 그리고 그 룻이 모든 이야기의 흐름과 이 이야기의 열매를 바꾸어 버린다. 사람이 희망이다.

 

유다와 살몬과 보아스처럼 되어야 한다.

 

복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세속적인 입장에서, 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그런 계산되는 방식으로 살아서는 이러한 역사를 이룰 수 없다. 이것이 룻기가 주는 거대한 영적 교훈이다. 이 사람들처럼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들처럼 영적 안목과 깊이가 있어야 한다. 다름 아닌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가 필요하다.

 

[개인적 적용] 나보다 자식들의 대()에 더 소망이 있는 족보여야 한다. 다음 대()에서 더욱 빛나고, 아름답고, 영광스럽고, 축복된 족보를 만들어 갑시다. 이것이 룻기 앞에 서 있는 우리가 깨닫는 하나님의 복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어떤 믿음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가?

내가 축복의 정상이 아니라, 그것의 시작이 되는 대가를 기꺼이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무슨 말인가? 나를 한 알의 밀알로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죽어짐으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동시에, 이를 위해 아낌없이 희생하고, 기도하고, 인내하고, 헌신하고, 충성하는 개인과 교회가 이러한 하나님의 은총을 맛보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당신은, 여러분의 자녀들은 지금(현재)이 최고인 족보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미래보다는 당장 지금이 좋은 편을 택하고 만다. 마치 이솝우화에 나오는 배짱이처럼 말이다. 부모보다 자녀의 신앙이 더 좋은 가정(家庭)이어야 소망이 있다. “부모는 그럴듯한데 자녀는 영 아니다라면 그것은 아주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크게 회개해야 한다. 정신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대에서 아주 끝나 버리는 족보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 나오미처럼 룻과 같은 후손에게 이 족보를 물려 주기를 소망하는 가정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공동체적 적용] 교회도 지금이 5년 후보다 더 좋은 쪽이라면 소망이 없다. 물론 지금도 좋고, 미래도 좋아야 한다. 우리 교회 역시 과거나 지금좋으면 안 된다. 그래서는 소망이 없다. 초등학생은 중학생이 더 좋은 시절이 될 때 의미가 있다. 마찬가지다. 우리의 신앙도 오늘만 살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

지금이 미래보다 더 좋을 것 같은 교회는 소망이 없다. 그러지 않으려고 주일학교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다. 한 가정도 자녀들을 위해서는 가장 좋은 책상, 의자, 책들, 에어컨 등등을 기본적으로 갖춘다. 그러므로 교회도 역시 교육관 시설은 아주 기본이고, 교사들의 영성 훈련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미래는 매우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자기 자녀들을 위해서는 최고의 시설과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 또한 않았으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자녀들을 위해서는 그렇지 않다면 그는 회개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이 부분이다. 심방을 해 보면 자녀 공부방은 으리으리하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교회 교육관에 가서는 전혀 신앙적 가책이라고 하지 않는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기적이다.

 

하나님은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이 사실을 믿으라.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는 존재로서 살아가야 한다. 분명 베레스의 가문은 갈수록 더 좋은 가문이다. 베레스에서 보아스로, 보아스에서 다윗으로, 다윗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어지는 메시야의 가문을 우리는 주목한다. 분명히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복된 가문이 아닌가.

혹시 여러분이 가문의 제1대 믿음의 계보인가. 하나님 없이 살았던 선조들과 달리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영원한 생명의 밀알이 되라. 룻처럼, 나오미처럼, 보아스처럼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 한 사랑의 사람이 되라. 그러면 당신과 당신의 가정을 룻기처럼 기록되게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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