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차대조표.貸借對照表(삿 2.1-10)

20211104(묵상)

  

 

 

대차대조표(貸借對照表)

Jdgs. 2.1-10

 

    본문 관찰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을 헐라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평가와 요약

 

마침내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

어떤 하나님으로 찾아오시는가. 왜 오셨을까. 긴장이 있다. 2장의 하나님은 본격적인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반응하시는 사사기 싸이클에서 경험되는 하나님의 모습에 비하면 매우 인내하시는 듯하다. 먼저 여호와의 사자는 지난 가나안 정복전쟁의 역사를 평가하고 책망한다.

 

 

정복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1-5)

 

1-2

 

(1) “여호와의 사자가 올라와 말하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찾아오셨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은 그럴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기는 커녕 반대로 그들로부터 쫓아냄을 당하는 형국으로까지 추락한 지 이미 오래다. 그들은 하나님을 볼 여력도 없었다. 문제에 찌들어 살아가고 있었다. 이미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거룩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가나안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점점 혼돈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a. 이스라엘이 순종(정복)과 불순종(미정복)의 사이에서 주춤거리고 있을 바로 이때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오셨다. 이는 매우 적절한 시점이다. 하나님이 인생을 찾아오심은 그 자체가 은혜다.

b. 하나님은 두 지평 하나님 vs 세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실 필요를 느끼셨을 것이다. 문제는 인생이 만들지만 정작 해답은 인생에게 없는, 더더욱 자신이 만든 문제와 그 결과가 무엇일지조차 알지 못하는 무지한 인생들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찾아오신다.

 

(2)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 찾아오셔서 예전에 이스라엘과 함께 했던 과거를 회상하신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향하신 첫 번째 말씀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이스라엘과의 약속을 먼저 기억하셨다. 이처럼 찬란했던 지난 날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3)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어서 하나님은 현재를 진단하신다. 하나님이 질타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이다. 이것이 가나안에 있으나 애굽에서처럼 살아가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4)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나님 앞에 들어나지 않을 것이 없다. 특별히 허물과 죄는 더 그렇다.

  

3

 

이스라엘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빛나던 과거와, 거기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현재를 그대로 공개하신다. 그러시더니 마침내 두 번째로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미래와 관련된 말씀이다. 여호수아 말씀의 성취에 대한 증언이다(23.12-13).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이스라엘에게 예고된 미래는 참으로 두려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심었으니 거둘 수 밖에 없다.

   

4-5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백성의 반응이다. 이스라엘은 마침내 회개한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죄를 돌이킬 능력이 없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다. 울며 제사를 드리고는 있으나 그럼에도 쫓아내어야 할 가나안 원주민을 향한 믿음은 전혀 발휘되지 않는다.

   

 

여호수아 그 이후(6-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라.”(10)

 

여호수아 24장 마무리 부분과 오버랩(overlap) 된다.

24.28 6

24.31 7

24.29-30 8-9

 

사사기의 이스라엘에게는 슬프게도 하나님에 관한 지식’(Knowing about God)은 풍부하다. 그러나 정작 있어야 할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은 없다. 이로써 호세아의 선언이 여기서도 하늘을 가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6.3a,6)

   

 

부스러기 묵상

 

폭풍전야(暴風前夜)와 같은 가나안이다.

이제 불어올 가나안을 향한 하나님의 일하심, 그러나 그것이 기대되고 기다려지기보다는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3.8) 아담 부부와 같은 심정임은 어찜인가? 하나님의 찾아오심은 이스라엘의 처신과 깊은 함수관계에 있음을 볼 때 저들을 향한 하나님의 예고편을 다시금 주목할 수 밖에 없다. 이스라엘의 행한 바 행위와 삶에 대한 하나님의 성적표는 어떨까? 그리고, 그것에 따른 그들을 향한 예고편은 또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스라엘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회개를 현실화(현재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울기도 하고, 제사(예배)도 드리고 하지만 그러한 마음의 결심과 결정들을 계속해서 유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익숙해지고 종교화된 예배(제사)는 그렇다면 하나의 형식이자 습관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한번 크게 울고 회개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실력은 없었던 셈이다. 신앙은 이처럼 한번 제사(예배)를 드리고 울며 회개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마음과 심령으로는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이 종교성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능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형식화되고 습관화된 제사는 하나의 연기이자 공연에 불과하다.

 

  

제목 날짜
삼손이 오고 있다(삿 13.15-25). 2021.11.23
삼손 에피소드1(삿 14.1-20) 2021.11.24
왼손잡이 사사 예훗(삿 3.12b--31) 2021.10.27
전쟁에도 신학이 있다(삿 6.29-40). 2021.11.08
기드온의 신앙고백(삿 8.10-23) 2021.11.09
당신은 영적 군사인가?(삿 7.1-8) 2021.11.08
입다를 주목한다(삿 10.17-11.11). 2021.11.22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삿 8.24-35). 2021.11.09
헌신이 먼저다(삿 6.25-28). 2021.11.08
하나님을 떠나면 대용품을 찾는다(삿 18.14-20). 2021.12.01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삿 17.7-13) 2021.11.29
입다에게서 듣는다(삿 11.12-28). 2021.11.22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삿 18.1-13) 2021.11.29
전쟁일기Ⅰ.戰爭日記Ⅰ(삿 20.12-23) 2021.12.07
잠자는 40년을 깨운다(삿 13.1-14). 2021.11.22
정복신학.征服神學(삿 1.1-15) 2021.10.26
미가의 사이비성을 주목한다(삿 17.1-6). 2021.11.29
전쟁일기Ⅱ.戰爭日記Ⅱ(삿 20.24-48) 2021.12.07
대차대조표.貸借對照表(삿 2.1-10) 2021.10.26
폭행일기.暴行日記(삿 19.16-30) 2021.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