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불의와 공의 사이에서(삼하 4.1-12)

20220924(묵상)

  

 

 

다윗, 불의와 공의 사이에서

삼하 4.1-12

 

 

    본문 관찰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암살되다(1-3,5-7).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남다(4).

    다윗이 암살자들을 처단하다(8-12).

 

 

이스보셋 이야기

 

아브넬이 죽자 이스보셋의 몰락은 급물살을 탄다.

이로써 사울는 문을 닫는다. 한편 아브넬과 이스보셋의 죽음에 대해 다윗은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는 북쪽 지파들과의 긴장이 해소되는 기회가 된다. 마침내 외적인 퍼즐, 즉 다윗이 통일왕국의 왕으로 등극할 수 있는 환경이 무르익어간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다윗을 세우시는 흐름이다. 이것이 몰락하는 사울가와 점차 강하여가는 다윗가의 영적 경사도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1-3,5-12)

 

어떻든 북쪽 지파들은 사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웠고, 그의 곁에는 아브넬 장군이 버티고 있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아브넬이 죽고, 이들은 무너질 듯 흔들린다. 이스보셋의 군지휘관인 바아나와 레갑 두 사람이 이스보셋을 죽이는 것으로 파국은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치닫는다. 무엇보다 사울왕가의 멸문 분위기다.

한편 바아나와 레갑 이 두 사람의 처세다. 이들은 불의한 이익 앞에 줄을 선다. 이스보셋을 암살한 저들은 그의 목을 베어 그의 머리를 가지고 다윗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이처럼 다윗에게 고백한다: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8)

하지만 이들의 언행은 역시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절된다: “내 생명을 이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9b) , 흥미로운 것은 둘(바아나와 레갑 vs 다윗) 다 모두 여호와의 이름으로다. 놀랍지 않은가.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익과 목적을 위해 도용하고 이용한 것이다.

과연 누가 승자인가: ‘눈앞의 불의한 이익을 쫓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공의를 믿는 자로 살 것인가.’ 하지만 정치공학적인 면에서 볼 때 다윗에게는 이것은 호재다. 손에 물 하나 더하지 않고서 정치적 라이벌이 무력하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울고 뒤에서는 웃을 분위기다. 하지만 다윗은 이런 인간적인 판세에 휘둘림 당하지 않는다. 다윗은 불의한 이익에 편승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래야 하지 않겠는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4)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만이 남는다(4a):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 저는 아들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사울왕가의 후손들이 다 죽어서 마치 멸문(滅門)의 분위기다. 그런데 므비보셋은 살아있다. 하지만 5세 때 사고로 인해 다리를 다친 장애인이다. 만약 이런 장애가 아니었거나, 사울(이스보셋)의 뒤를 이어 북쪽 지파들의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므비보셋마저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그럼 무슨 말인가. 사울가의 후손들 가운데 사울 이스보셋, 그리고 그 다음을 이을 혈통이 없다는 얘기다. 이것은 사울왕가의 비극을 보여주는 슬픈 액자다.

 

 

부스러기 묵상

 

아브넬의 뒤를 이어 레갑과 바아나가 이스보셋의 군지휘관이 된다(2).

이들 두 사람은 점차 몰락해가는 이스보셋을 죽이고 그의 머리를 가지고 다윗을 찾아간다. 분명 적장의 목이었으니 출세길이 열리는 공신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자신들처럼 생각할 것이라 믿었던 다윗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완전 달랐다. 이것이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의 전혀 다른 방식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여호와께서’(8b)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일일까. 그렇지 않다. 이렇듯 바아나와 레갑이 부른 하나님은 다름 아니라 자신들의 성공과 야망과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조건으로 가져다 쓴 이름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위해 주의 이름을 부르고 찾고 구한 게 아니다.

그러나 다윗이 부르는 여호와’(9)는 저들처럼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필요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아니다. 이 부분이 이들이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되는 분깃점이다. 세상은, 그리고 언젠가부터 교회까지도 이제는 하나님을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되어 버렸다. 무서운 세상이다. 불의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하나님을 수단으로 사용한 두 군지휘관은 심은대로 거둔다.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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