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스라엘/엘리압 vs 골리앗] VS 다윗 (삼상 17.1-40)

20220603-04(묵상)

  

 

 

[사울/이스라엘/엘리압 vs 골리앗] VS 다윗

1 Sam. 17.1-40

 

 

 

    본문 관찰

 

    [골리앗 vs 사울/이스라엘] VS 다윗(1-27)

    [엘리압 vs 골리앗] VS 다윗(28-40)

      28-29 엘리압 다윗: 노를 발하다.

      30       다윗: ‘돌이켜다른 사람을 향하여 전과 같이 말하다.

      32       다윗: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33       사울 다윗 : 너는 소년이다.

      34-37  다윗: 여호와께서 사자와 곰으로부터 건지셨나이다.

      39       다윗 사울 : 익숙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40       다윗: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자동차 이야기에서 시작해 보자.

예전에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하는 승용차 가운데 <엑센트>라는 차가 있다. 그런데 이 차는 시판할 당시 원래 20대를 겨냥하고 만들었고, -그래서 색상도 처음에는 원색이거나 파스텔 계통의 색들이 주종이었다.- 시판과 함께 수 십 억원을 투입해서 완전 신세대풍으로 광고를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현대자동차에서 예상했던 신세대구매층에서 팔리는 것보다 예상 밖의 층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부터다. 현대는 이때까지 투입된 광고비와 마케팅(시장조사)에 소요된 경비에 연연하지 않고 발빠르게 광고와 차 이미지를 신세대풍에서 실구매층으로 맞추었다.

 

 

[골리앗 vs 사울/이스라엘] VS 다윗(1-27)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는 아낙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았더라.”(11.22)

    “블레셋 사람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4)

 

완전정복에 실패하고 약간 남겨놓았던 그 가드에서 사울시대에 온 이스라엘을 모독하는 골리앗이 나왔다(4; 11:22 참조). 그 골리앗과 블레셋 이스라엘과 싸우고자 진을 쳤고(1-3), 불레셋의 장수 골리앗은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고 있고, 사울과 이스라엘은 두려워 떨고 있다(4-11).

이 때에 다윗이 등장한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에 출전 중인 세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오라는 임무를 수행한다(12-23). 이때 전시 상황을 파악한 다윗은 분노한다(24-27):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26b) 한편 전쟁터의 분위기는 승리 이후를 말하는 자들만 있을 뿐이다. 정작 그 이후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이를 위해 골리앗과 블레셋을 대항하여 싸울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것이 이스라엘과 사울의 모습이다.

 

 

[엘리압 vs 골리앗] VS 다윗(28-40)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엘리압과만 싸운다. 엘리압 밖에 보지 못한다. 이것은 한마디로 사탄의 고도의 전략이다. 흔히들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자존심이 상한다는 것이다: “이까짓게 감히!” 그러나 엘리압은 언제나 치고 빠지는 전법(戰法)을 구사한다. 이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대처한다. 슬슬 약이 오르고, 감정이 상하면 그때부터 일은 끝장나고 만다. 이때 사탄은 뒤에서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엘리압과 싸우고 있는 한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정작 골리앗과 싸우려 할 때에는 힘을 쓰지 못한다. 아니다. 골리앗은 처음부터 포기다. 엘리압을 상대하고 있는 한 영적 실력은 결코 성장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돈키호테 식으로 막무가내로 골리앗에게 덤비라는 말은 아니다.

 

1. 골리앗을 물리치면 엘리압은 사라진다.

그러므로 빨리 판단하라! 무엇이 엘리압이며, 골리앗인가를! 큰바다(골리앗)로 나아가지 못하고, 동네 앞바다(엘리압)에서 골목대장만 실컷 하고 끝나 버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본문에 보면 처음부터 골리앗은 포기한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영적 수준이다. 이들은 함량 미달인 셈이다. 그러니 노상 골목대장이나, 줄반장으로 살아간다.

엘리압: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28b) 엘리압은 정작 골리앗에게는 침묵하고 다윗에게는 화(분노)를 내는 못난이다. 약자에게는 먹이 앞에 으르렁 거리는 하이에나(표범, 독사) 같고, 강자 앞에서는 연신 허리를 굽히고서, 완전히 꼬리를 내린 사람, 바로 그가 엘리압과 같은 사람이다. 골리앗과 다윗 사이에 끼어 있는 이중 인격자엘리압을 보라!

사울: “너는 소년이다.”(33) 다시 말하면 까불지 마라. 우리 말로 하면 얘들은 가라!” 그 말이다. 문제는 사울과 그 군사들, 이스라엘 전체가 다 이처럼 겁쟁이였다는 점이다. 정말 있어야 할 곳, 말해야 할 자리에서는 양처럼 위장하며 살고, 자기 이익이 조금 깎이거나 손해가 오면, 감추었던 본성들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사람들로 가득 찬 이스라엘이었다.

 

2. 다윗은 더 이상 엘리압과 상대하지 않았다.

성경은 다윗이 돌아서서 다른 사람을 향하여 전과 같이 말하매”(30)라고 말한다. 다윗은 엘리압 앞에 더 이상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엘리압 앞을 재빨리 떠났다. 우리는 여기서 골리앗 앞에 설 수 있는 영적 수준은 어떤 것들인가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1) 결단(통찰): “돌이키라!”(30) 신앙은 독백이 아니다. 어떤 생각이나, 느낌, 감정, 마음을 정리하는 것 그 이상이다. 신앙은 결단이요, 행동이다. 아브라함이 그러했고(12.1- ), 베드로가 그러했다(5.1-11). 엘리압들로 득실거리는 곳에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영적으로 손해난다. 그러므로 빨리 그곳을 떠나라.

(2) 믿음(신앙고백): “여호와께서 건져내시리이다.”(37)

(3) 훈 련: 익숙한가 시험적으로 해 보라(38-39).

(4) 믿 음(행함): “손에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에게로 나아 가니라.”(40) 다윗은 평소 실력을 가지고 골리앗 앞에 선다. 신앙은 하루 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부스러기 묵상

 

믿음의 눈을 뜨면 엘리압과 골리앗이 동시상영을 해도 문제 없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의 토지 분쟁에서 롯을 상대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보다 그릇이 더 컸다. 그래서 하나님은 롯이 선택한 곳보다 더 넓고 광활한 동서남북을 주셨다. 눈 앞에 있는 경제적 이익에 급급(연연)하면 동서남북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현실, 엘리압)만 보면 내일(신앙,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은 없다. 따라서 지금은 골리앗을 무너뜨릴 수 있는 실력을 키워야 할 때이지, 엘리압을 상대하면서 시간을 보낼, 그리고 엘리압을 이겼다는 자만심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골리앗을 이기는 능력은 엘리압에게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사실 골리앗 앞에서 부들부들 떨면서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는 엘리압 앞에서 그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넘어진다.

지금 우리 시대는 엘리압이나 골리앗이 아니라, 다윗 같은 사람이 그리운 시대다. 엘리압이 득실거린다고 아우성만 하지 말고, 엘리압을 잠잠하게 만들 수 있는 다윗으로 준비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면 엘리압은 없어진다.

교회 내부에는 엘리압이, 교회 밖에는 골리앗이 우리를 향해 동시상영을 하면서 우리를 향해 돌진해 온다 할지라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말고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全身甲冑)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6.12-13)는 말씀을 굳게 붙들어 보자. 그리고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 앞에 담대하게 서는 살아 있는 다윗의 후예들로 승리하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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