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라 스타트(삿 4.1-5)

20211108(묵상)

 

 

 

드보라 스타트

Jdgs. 4.1-5

 

    본문 관찰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20년 동안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드보라_아내 & 여선지

 

평화는 80년으로 막을 내린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태평을 악행(惡行)으로 밖에 갚지 못한다. 샬롬을 거부하는 사람들, 화평을 도적질한 사람들, 그들이 가나안을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준(몰골)이다. 황무한 가나안, 다시금 옛사람으로 돌아간 가나안, 결국 진리의 깃발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직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1.8) 초라하기 그지 없는 빛바랜 성도 이스라엘을 보라.

   

 

가나안왕 야빈(1-3)

 

80년은 세 세대에 해당할 정도로 참으로 긴 세월이다. 그러나 이 긴 세월을 통해 신앙의 세대를 이어가는 전수(부흥)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훗을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경험했던 세대가 다 물러갈 즈음 이스라엘은 다시금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이탈한다(2.10). 사사기의 하나님은 마치 방전된 배터리(battery)처럼 취급을 당한다. 사사 예훗이 죽자 이스라엘이라는 건전지(신앙)는 완전히 방전(放電)되고 죄악을 그 자리에 충전(充電)함으로써 하나님을 떠난다.

이렇게 함으로써 드디어 20년이라는 역시 긴 세월 동안 야빈 막대기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진노의 채찍을 받게 된다. 충전한 죄악의 힘은 양()과 질()에서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이것이 죄의 영향력이다. 어느 시대나, 또한 개인의 역사에서도 이렇듯 악화(惡貨)는 언제나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법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빈’(2-3)에 대한 부분이다. 여호수아 11장에 가 보면, 하솔은 가장 강력한 가나안 토착 세력이었다(11.4). 하나님은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셨기 때문에”(11.8) 연합군과 싸운 여호수아는 하솔을 취하고 그 왕을 칼날로 쳐죽이고,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하솔을 불로 살랐고, 여호수아가 그 왕들의 모든 성읍과 그 모든 왕을 붙잡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바쳤으니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것과 같이 하였으되”(11.10-12)처럼 완전한 승리를 이루었다.

뭘 생각하고 싶으냐면, -우리가 놀라는 부분이다- 이미 없어졌던 가나안 왕이 재기하여 새로운 강자로 부상해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탕자처럼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때 죄악의 세력은 9백승의 철병거를 보유할 정도로 다시 강력하게 부상한다. 이는 대단한 역설(paradox)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죄는 이처럼 잘 자라는데 신앙은 자라기는커녕 퇴보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어야 할 가나안이 더 깊은 죄악으로 치닫고 있으니, 이것이 세상 속에 노출된 이스라엘 성도들의 모습이다.

성경은 이 기간을 묘사하면서 심히’(3) 잔인하게 학대했다고 기록한다. 타락의 회수가 많아지는 것과 동시에 고통의 기간과 강도도 점점 강해진다: 8(3.8) 18(3.14) 20(4.3) 죄는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한다. 똑같은 시간이라는 기회를 죄의 값을 치르는 세월로 허송할 것인가, 아니면 맡겨진 달란트를 주님이 찾으실 때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25.20)라고 보고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살아갈 것인가?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드보라 이력서(4-5)

 

이스라엘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하나님은 동일한 실수(실패, 죄악)를 계속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이스라엘, 그럼에도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이스라엘이 뻔뻔스럽다라고 말하기에는 역시 동일한 죄를 반복적으로, 때로는 의도적으로 지으면서도 입술에는 하나님이 있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이러한 정죄 또한 쉽지 않다.

바로 그 때에’(4) 하나님이 개입하신다. 드보라의 등장은 여러모로 생각되는 부분이 많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여자가 민족을 다스리는 지도력을 행사한 실례는 사실상 이 때 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랍비돗의 아내로 소개된다. 랍비돗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는 무명에 가까운 평범한 사람이다. 드보라는 한 가정의 아내로 있을 때 부르심을 받는다. 그때 아내로 소개될 정도로 가정생활에 충실한, 그러니까 일생 생활의 영성을 소유한 균형 잡힌 성도였다. 하나님은 이미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충성하는 사람을 주목하신다.

당시는 여자가 인구수에도 계수되지 않는 사회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내이면서 여선지자’(예언자)로서 하나님 앞에 살아갈 정도로 타락한 세상 속에 분명 빛을 밝히는 등불과 같은 삶을 살았다. 바로 그녀를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황무한 가나안에서도 영적 부흥을 갈망하며 하나님의 꿈이 자라는 땅으로 회복되기를 소망하는 한 사람 여선지자 드보라를 주목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의 또 다른 관심은 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사람만 준비되어 있으면 언제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다.

   

 

부스러기 묵상

 

드보라는 드보라의 종려나무라고 명명될 정도로 백성들이 기억되는 삶을 살았다.

얼마나 그녀가 그곳에 앉아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했으면 이러한 별칭이 따라 다녔을까. 사람들은 그 종려나무를 생각할 때 드보라를, 동시에 드보라를 생각할 때 그 종려나무를 생각하였다. 이것은 드보라의 이미지인 셈이다.

우리 모친은 새벽마다 예배당에 앉으셔서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자리가 있었다. 지금은 헐고 새로 건축해서 기억 속에만 있지만 지금도 마음으로는 그 자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는 언제나 어머니의 기도나무아래에 앉아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눈에는 늘 눈물이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는가? 나는 천국보고서에 어떤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는가? ‘김충만의 사명나무역시 충성되이 감당되어지고 있는 사명인가? 나 역시 그 아래 거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가고 있는가?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추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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