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 사이클 스타트(삿 3.7-12a)

20211106b(묵상)

 

 

 

사사 사이클 스타트

Jdgs. 3.7-12a

 

    본문 분석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진노하사 파셨으므로 8년 동안 섬겼더니

    부르짖으매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옷니엘이라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그 땅이 태평한 지 40년에 악을 행하니라

  

 

사사기 사이클

 

죄는 악순환된다.

오늘 본문은 이것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인간은 악을 행하며 하나님을 떠난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구원으로 이스라엘을 찾아오신다. 본문을 읽으면서 찬송가 내 너를 위하여”(311)를 부르며 주님 생각을 한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아버지 보좌와 그 영광 떠나서, 밤같은 세상에 만 백성 구하려,

    내 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 주느냐.”(1-2)

 

이스라엘의 타락과 죄를 말하기에는 나 역시 죄인이 아닌가. 저들이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배은망덕(背恩忘德)하는 것 역시 내 모습이 아닌가. 언제든지 악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지닌 시한폭탄이 바로 나의 나됨이 아닌가. 이것이 어쩜 나의 영적(靈的) 악순환의 주기가 아닌가.

   

 

발전적 순환 사이클

 

    ① 행 악(7, 범죄, 우상숭배)

       ② 심 판(8, 인생 채찍_8)

          ③ 회 개(9a, 부르짖음)

             ④ 구 원(9b-10, 사사, 구원자)

                ⑤ 평 화(11. 한시적_40)

                   → 또 악을 행하니라!”(12a, 다시 행악)

 

7: 행악(범죄, 우상숭배)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행해진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의식하지 못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자행하는 것, 다름 아닌 그것이 죄다. 인생의 죄가 하나님 앞까지 왔다. 죄가 끝까지 간 것이다. 거룩을 잃으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도 인생은 방자하게 행한다. 그러나 그것이 죄인지 모른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잊어버릴 게 따로 있지, 어떻게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리에 바알(인조신)을 모신 것이다. 하나님이 서야 할 자리에 하나님이 아닌 것이 서면 그 순간부터 사람은 하나님을 잊게 되어 있다. 그리고 대용품의 인도를 따르게 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정복지 못하고 남겨둔 이방인 가나안 백성들의 거짓 종교에 그만 현혹되어 그들의 신을 섬기는 자리로 타락한다. 하나님을 바알과 아세라로 대신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가나안은 어떤가?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을 반복하고 있는가?

 

8: 심판(인생 채찍)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8년 동안 섬겼더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범죄를 그냥 묵과하지 않으시고 진노하신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결코 침묵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구산 막대기를 사용하사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 이처럼 쓰임 받는 도구가 되지 않기를 기도하자.

죄 값은 8년 동안이나 지급된다. 값비싼 대가를 지불한 셈이다. 죄악의 씨는 뿌린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의 결과까지가 죄 값이다. 8년이면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가 8년으로 끝난 것은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영원한 영벌(永罰)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이 일시적(一時的)으로 종료될 수 있었던 것은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모습 때문이다.

 

9: 회개(부르짖음)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기억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가 8년으로 종지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이스라엘은 처절하게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마침내 잊었던 하나님을 다시 찾는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는 다시 하나님을 찾는 기회가 되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나는 하나님의 채찍 앞에 이스라엘처럼 반응하고 있는가? 위기는 기회의 다른 이름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그들이 회개하기 이전에 최종 집행으로 마무리하지 않으셨다. 만약 하나님께서 회개하기 이전에 최후통첩(最後通牒)과 같은 완결 심판으로 가셨다 하더라도 인생은 할 말이 없다. 그러니까 주님이 지금(오늘) 오셔도 죄 가운데 있는 인생은 결코 할 말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까지 하나님의 시간을 유지하고 계셨다. 이것이 은혜가 아닌가: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한편, 삼손의 이야기에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매부분이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도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일마저도 하지 않을 만큼 극도로 타락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9-10: 구원(사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개를 받으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회개하지 못할 죄인은 없다. 단지 회개하지 않은 죄인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심령들을 맞아주신다. 하나님은 탕자의 하나님이시다. 지금도 아버지께로 돌아갈 집이 있음이 희망이다.

사사 옷니엘을 세워 이스라엘을 구산 채찍의 손에서 구원하신다. 회개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범죄의 결과로 만들어진 죄의 파편들을 제거하시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죄의 무거운 짐을 다 내려 놓도록 만드신다. 죄의 멍에를 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사는 자기 스스로의 결심과 의지로 등장하지 않는다: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하나님이 옷니엘에게 찾아오신다. 이처럼 사명(소명)은 땅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주어진다. 소명은 터득, 학습, 교육, 훈련을 통해 땅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소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것이다. 옷니엘에게 임하신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임하여 주시기를 기도한다.

구산의 승리는 항구적일 수 없다. 그는 잠시 택한 이스라엘을 위해 사용된 도구(수단)에 불과하다. 이렇듯 구산이 승리한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은 8년이나 승리했다- 그 승리는 이미 패망이 예고된 한시적인 것이었다. 세상은 결코 영원히 승리할 수 없다. 영원한 승리자는 오직 주님 뿐이시다.

 

11: 평화(한시적)

 

그 땅이 평온한 지 40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출애굽 이후 광야 40년의 증인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하나씩 사라진다. 패역하고 타락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처음으로 실현했던 사사 옷니엘이지만 그 역시 역사의 인물로 사라진다. 인생은 영원하지 않다. 사람은 일 할 때가 있고, 안식할 때가 있다. 옷니엘은 아름다운 마무리를 한다. 하나님의 사명이 마쳐진 옷니엘, 40년을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했던 사사 옷니엘의 소천, 그는 분명 복된 생애를 살았고, 행복한 마무리를 한 것이다.

옷니엘은 한 공동체의 건강을 위해 자기 생애의 전부를 헌신했다. 나는 공동체의 건강을 위해 무엇을 헌신하고 있는가? 나 한 사람 유지하기도 벅찬 것은 아닌지, 이게 오늘 기도제목이자 묵상의 주제다.

40년을 태평하게만 지낸 것이 조금 아쉽다. 우상을 훼파하고, 이방 문화의 잔재를 제거하고, 다시 정복전쟁과 전투를 통해 가나안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 실현을 좀 더 적극적으로 추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40년은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 요소들을 제거하고, 8년의 실패 경험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끊임없는 거룩을 추구하는 기회였어야 했다.

   

 

부스러기 묵상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12a)

 

8년 심판의 교훈은 40년을 넘기지 못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고 거기에 응답하는 인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악으로 치닫는다. 은혜를 악행으로 갚는 사람들, 40년의 은혜와 축복도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면 우리의 경건은 언제나 견고하게 자리할까?

다시 미궁으로 추락하는 이스라엘을 만난다. 은혜는 잠시요 악행은 반복이다. “인간은 그래, 어쩔 수 없어!”라고 자위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세월들이요, 동일한 죄를 다시 반복하며 실패하기에는 예측할 수 있는 그 대가가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하나님을 떠나면 그에게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죄악으로 나아가는 인간, 그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결코 의를 추구할, 거룩을 유지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할 그런 위인이 못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죄를 지향하게 되어 있다. 죄를 지어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행한다.

그렇다면 이 무거운 죄의 짐을 과연 어떻게 할까? 나는 내가 죄인임을 알았고, 그래서 회개했고, 그 대가로 이처럼 살아간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아직 인간이 누구인가를 모르는 사람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니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를 수 밖에. 그러니 죄를 행해 불나방처럼 돌진하는 것이다. 그것이 죽음과 파멸의 길인 줄 모르고서... 이것이 인간의 비극이다.

이스라엘의 타락과 죄를 말하기에는 나 역시 죄인이 아닌가: “하나님! 나는 용서 받은 죄인입니다.” 그럼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을 반복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죄를 지어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범한다. 그러나 어떤 인생이든지 회개하지 못할 죄인은 없다. 단지 회개하지 않은 죄인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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