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삿 3.1-6)

20211106a(묵상)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

Jdgs. 3.1-6

 

    본문 관찰

 

    1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2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4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5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여

    6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를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사람 막대기

 

먼저 성경 한 구절의 도움을 받아보자.

사무엘하 7장이다. 7장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요청을 거절하시면서 다윗 이후에, 그러니까 그의 자식의 대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7.13a)라고 말씀하신 후에 이어지는 14절에서 이처럼 말씀하신다: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참 흥미로운 표현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오늘 본문과 관련해 볼 때 아주 깊은 의미가 들어있다.

   

 

1-4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블레셋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하나님께서 사람의 매’(인생의 채찍)로 사용하실 민족을 소개하신다(3). 그럼 왜 이들을 이처럼 사용하시겠다고 말씀하는가? 첫째로는, 그것은 전에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새 세대 이스라엘 백성을 남겨 두신 이 열국으로 시험하시려고(1,4a), 다른 말로 하면 전쟁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다(2, 스파링 파트너). 둘째로는,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그들의 열조에게 주신 명령에 순종하는지 안 하는지를 알아보시기 위해서 그들을 남겨 두셨다(2.22, 3.4).

문제는 하나님이 남겨 두신 이 열국들이 자신들이 이와 같은 도구로 쓰임 받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저들의 불행이다. 그러니 자기들이 잘나고 똑똑해서 전쟁에 승리하고, 그것만큼 이스라엘은 멍청하고 약소국(弱小國)일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듯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어떻든 열국들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 우리가 여기서 더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자기에게 지금 잘 되는 것, 그러니까 지금 보기에 좋은 것들, 당장은 성공해 보이는 것들, 그런데 그 가운데는 나중에 보면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만드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미련하게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인생은 결코 교만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존재들이다. 누가 그렇게 만드셨나? 하나님께서! 그렇다면 잘 될 때, 거침없이 전진할 때,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핑크빛 색깔을 띄고 나를 감쌀 때, 바로 그 때가 가장 위기의 때일 수 있다는 영적 통찰이 필요하다.

성경에는 이처럼 인생의 채찍으로 쓰였던 사람들이 종종 등장한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본디오 빌라도와 가룟 유다가 생각난다. 하나님은 사사기에서 사용하셨던 인생 막대기들처럼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위해 엑스트라와 같은 배역을 맡기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다. 그러나 그렇게 쓰임 받아 소정의 과정을 하나님의 의도대로 잘 마쳤다고 해서 그 공로가 인정되거나, 그들의 죄악이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인생 막대기를 들어 쓰시사 당신의 위대한 경륜을 성취해 가신다. 이것은 고유한 하나님의 법칙이다.

하나님은 인생의 채찍(A)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B)을 훈련하시고 연단하사 정금같이 만드신다(23.10). 그러나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A처럼 쓰이거나 아예 그처럼 쓰이기를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시어머니의 모습에서, 며느리의 모습에서, 독주하는 목회자의 모습에서, 교회를 위한다는 명분하에 목회 리더쉽을 허는 작은 여우처럼 살아가는 어리석은 평신도 리더들에게서, 직장 상사에게서, 시댁(친정)의 불신자들에게서, 속을 박박 긁는 성도들에게서 우리는 A의 모습을 유감스럽게도 만난다. 그러나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매우 소중한 교훈은 이것이다. 바로 그때가 하나님 앞에서 나를 B로 세우는 것이다. 위기를 성장과 성숙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일상의 영성이 필요하다. 그것까지를 통찰할 수 있는 영적 실력이 필요하다.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미워하고, 싸우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방식이다. A의 역할은 그 기능이 끝나면 하나님이 버리시지만 B는 그렇지 않다. 그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사용된다. 성경의 무수한 성도들이 이를 우리에게 증거한다.

이스라엘은 위의 B처럼 쓰임 받을 수 있는 축복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교만하기 그지없는 불쌍한 성도들이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더 없이 불쌍하고 측은한 A를 본다. 지금 화려하고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끝은 저주요, 영벌이요, 파멸일 뿐이다. 신앙생활이란 무엇일까? 우리도 B처럼 쓰임 받아 A의 정체가 거짓임을 밝히며, 그래서 A처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의 불씨(씨앗)를 품고 있는 시한폭탄인가를 깨우치며, A의 자리에서 B를 지나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성취해 드리는 것이 믿음의 승승(win-win)법칙이 아닐까.

   

 

인생 채찍(5-6)

 

    하나님의 명령의 경사도: 가나안 정복 하나님의 통치

 

    이스라엘의 응답의 경사도: 가나안 공존 우상숭배

 

 

하나님의 명령과 이스라엘의 응답과 관련된 부분을 정리해 본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적과의 동침에 들어간다. 본문 5절은 그들 사이에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렇게까지 타락할 수 있는가. 유감스럽지만 성경은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5-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가나안의 이방문화-이 문화의 핵심은 하나님 없는 문화요, 율법적인 죄악으로 물든 세속문화다- 점점 깊숙하게 빠져들고 있는 이스라엘을 보라. 하나님의 말씀(율법, 문화)으로 이방 문화를 정복해야 할 선교적 사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역()으로 하나님과 원수된 세속의 물결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거룩과 세속의 경계가 급속하게 무너지고 있다. 이방인 가나안 족속들과의 통혼(通婚)으로까지, 마침내 가정과 안방 문까지를 점령당하고 만다. 결국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셈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의 신들을 섬기는 배교(背敎), 즉 우상숭배로까지 이스라엘의 죄악은 확장되고 있다.

세속과 거룩을 적당(적절)하게 넘나드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내 영혼을 죽이는, 무력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법을 불순종하게 만드는 강력한 사탄의 전략이라는 점을 놓치기 시작하면 세상방정식은 쉽고 유익하기까지 할 것이다. 이 비밀통로를 은밀하게 유지하는 사람은 비록 가나안에 있으나 그는 실상 애굽처럼 사는 사람이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왔으나, 거룩한 공동체의 멤버쉽을 가졌으나 세상 사람들과 방불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순종과 거룩과 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 불행한 인생이요, 가증한 인생이다. 어쩌면 그 자신이 인생 채찍이 되어 무수한 사람들을 아픔과 고난으로 몰아넣는 도구로 살아갈 것이다.

거듭나지 못한 그리스도인, 성령의 능력과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 과거는 화려하고 풍성하지만 지금은 영적으로 말라버린 가지와 같은 인생, 하나님의 첫사랑을 떠난 가라지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나 바리새인들처럼 은혜를 받기 위함이 아니라 뭔가 꼬투리를 찾아 불화를 조장하며 자기 스스로를 인생 채찍으로 전락시키며 -그는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를 위함이라 생각한다- 사는 이 땅의 불행한 그리스도인들, 그러니까 그들과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성도들이 동시에 묵상되어지는 이유는 뭘까?

거룩을 잃어버리면, 삶의 초점을 하나님에게서 세상으로 맞춰버리면, 영적 성장이 멈추면, 과거의 전통에 얽매여 과거 지향(향수)과 유지에 바빠 정작 오늘 일하시며 활동하시는 성령님과의 영적 교제를 놓쳐버리면, 그렇다면 결국 우리 역시 이스라엘의 타락과 죄악을 그대로 반복할 수 밖에 없다.

   

 

부스러기 묵상

 

나는 사람의 매인생의 채찍역할을 한 때는 없었나? 주님 나를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사람, 섬기고 축복하는 인생으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나는 하나님께서 귀한 생명들을 하찮은 나를 훈련시키고 연단하시기 위해 잠시 사용하셨을 때 나에게 붙여주신 사람의 매인생의 채찍을 통해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목적을 성취해 드렸는가?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인가?

 

분명 사람의 매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를 돌이켜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 나는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는가? 또 어떤 점에서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러기 위해 나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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