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다를 주목한다(삿 10.17-11.11).

20211124(묵상)

 

 

 

입다를 주목한다.

Jdgs. 10.17-11.11

 

    본문 관찰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백성이 그로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 이야기

 

이스라엘은 입다를 버렸다(1-3).

그의 출신이 문제였다(1). 아버지의 기업(유산)을 잇는 자격도 박탈된다(2). 입다는 홀로신세가 되어 유랑한다(3). 모든 사람이 이러한 조건에 걸리면 여기까지는 동일하게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입다는 달랐다. 그는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다.

그를 버렸던 길르앗 사람들이 얼마 후에이제는 입다를 필요로 한다(4). 이스라엘은 모든 조건이 좋고 평화로웠을 때에 하나님을 버렸지만 입다는 모든 형편이 비관적인 상황 하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 어찌보면 입다 같은 자 밖에 쓸 수 없는 상태가 사사기의 이스라엘이다. 

이것은 단순한 유추(추론)가 아니다. 이어서 살펴보겠지만 9절과 11절에 나타난 입다의 고백은 1-3절과 단절되어 있지 않고 연속적이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니까 4절 이후에 새롭게 결심하게 된 것이 아니다. 만약 4절 이후에 새롭게 회심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그를 주목하실 이유가 없다. 더더욱 이어지는 입다의 설교’(14-27)라 할 수 있는 대목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는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를 꿰뚫고 있다. 이것은 4절 이후에야 학습된 것이 아니다.

   

 

뺄셈 법칙

 

성경이 입다를 주목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하나님은 입다를 쓰시기 위해 먼저 뺄셈부터 시작하셨다. 가정 형제들로부터, 그리고 부모(아버지 길르앗과 배 다른 어머니)로부터, 또한 동족 길르앗 백성들에게까지 버림을 받았다. 성경에는 종종 이러한 인물들이 등장한다(아브라함, 요셉, 모세 등등). 한결같은 공통분모는 하나님의 뺄셈 법칙을 통과한 사람들이다는 점이다. 문제는 하나님이 입다처럼 나를 취급하실지라도 -하나님께는 우연이란 없다- 이 뺄셈 기간을 하나님의 덧셈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로 생각하며 바울 신앙’(8.31-39)을 따라 살 자신이 있는가. 정말 깊은 기도와 묵상으로 나를 돌아본다, 이 사사기 말씀 앞에서...

입다가 무대에서 퇴장하고 다시 무대에 등장하는 그 사이의 얼마 후’(4) 동안 그가 무엇을 했는지 성경은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분명 얼마 후기간을 백수(白手)처럼 소일하거나, 자학(자폭, 비관)하거나, 중국 무협지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복수의 칼을 갈며, 또 그렇게 할 사람이라고 자신을 찾아온 길르앗 장로들에게 선전포고(宣戰布告)하는 것으로 사사기 무대에 복귀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입다에게서 배우는 귀중한 교훈이다. 그가 이 기간을 건강하게 지냈을 것이라는 점은 다음 두 말씀에서 분명해진다. 입다는 하나님의 뺄셈을 넉넉하게 통과한 셈이다.

   

[1]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9b)

 

그의 입술과 고백에는 하나님이 있다. 이미 그는 1-3절처럼 취급을 당했을지라도 말이다. 그는 모든 일의 최종적인 판관(사사)을 하나님으로 삼는다. 그의 관심은 자신을 홀대한 사람들을 어떻게 혼내 줄 것인가에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이 싸워야 할 표적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니까 사사로운 감정에 끌려가거나 혹은 지배 당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에게 중요한 문제는 과연 하나님이 이 일에 섭리(관여)하고 계시는가에 있다. 그는 얼마 후라는 뺄셈이 하나님으로 덧셈되어지기를 원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다시 원점에서 시작한다. 하나님 때문에 의미 있는 자 되기를 원하고 있는 셈이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싶어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의 주도권을 쥐시기를 소망한다.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았으나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고백, 어쩌면 입다는 이 날이 오기까지, 하나님이 그렇게 자신을 쓰시기까지 묵묵히 인내하며 지냈던 것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입다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불행할 수 밖에 없는 예고된 고통에서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빗어진다.

 

[2]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11b)

 

기도하는 입다를 만난다. ‘큰 용사’(1) 입다는 얼마 후에’(4)라는 하나님의 뺄셈 법칙을 통과한 후에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선언한다(9).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 기도한다(11). 그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어떤 섭리 가운데 부르심을 받고 있는지를 놓치지 않는다. 길르앗 백성들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는다(11a). 그러니까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자신을 버리기도 하고 다시 원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요구(need)를 따라 춤추는 광대처럼 사역하기를 원치 않는다.

입다는 모두 를 하나님께 말씀드렸다. 입다는 달라진 길르앗 장로들과(5)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10a)- 그리고 역시 달라진 백성들의 모습에서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11a)- 뭔가 새로운 길르앗의 분위기(10.10-16)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저들의 입술에서 하나님이 고백되어짐을 보면서 하나님이 다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갈 길은 오직 하나 아닌가. 입다는 마침내 하나님 앞에 선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남김없이 하나님께 고한다.

이제 사사기는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나에게 시작된 하나님의 뺄셈은 무엇인지, 잘 감당하고 있는지, 나는 나에게 진행되고 있는 모든 일을 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행하고 있는지 . 입다를 주목하면서 나를 돌아보는 피할 수 없는 주제 앞에 선다.

   

 

부스러기 묵상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을 쳤으므로”(10.17)라는 상황이다.

그런데 길르앗에는 이를 해결할 사람이 없다. ‘큰 용사’(11.1)이지만 기생인 첩이 낳은 아들 입다는 이미 추방되었고, 잡류(건달패, ‘방탕한’; 9.4)의 머리가 되어 있는 상태다. 어찌할까. 그런데 전쟁의 위험에 처하자 입다를 길르앗의 머리로 삼는 일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지금 이스라엘(길르앗)에는 이 위기를 이겨낼 하나님의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때다. 자신들이 버린 자이고, 지금은 잡류의 머리인 입다를 자신들(길르앗)의 머리로 삼을 수 밖에 없다는 점, 이것이 사사기의 어두운 그림자다.

이처럼 세상(암몬)은 언제나 그리스도인들(이스라엘)에게 싸움을 걸어온다. 하지만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은 이 싸움의 진정한 이유와 해법을 읽어내지 못한다. 하나님께 묻는 법도 없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마음과 방향과 고백도 없다. 가히 총체적인 위기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버린 입다를 이번에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사용할 뿐이다. 이 전방위적인 난국을 어찌 해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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