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멜렉 리포트(삿 9.46-57)

20211122(묵상)

  

 

 

아비멜렉 리포트

Jdgs. 9.46-57

 

    본문 분석

 

       세겜 망대의 학살(46-49)

       아비멜렉의 최후(50-55)

       하나님의 보응(56-57)

   

 

엔트로피적 사고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첩()이었던 세겜 여인에게서 태어난 아들이다(8.31).

그는 이렇게 성경에 등장하고 있고, 마침내 세겜 교회에 등록하여 새신자 생활을 시작한다(9.1). 그러나 세겜은 이미 하나님의 첫사랑을 버린 지 오래 되었고, 그래서 그 역시 아비멜렉처럼 세상에 찌들대로 찌든 죄 범벅을 분별할 능력 역시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너무 비유적으로 접근하는 감이 없지 않지만 그는 가족들의 후광을 입고 세겜 교회의 중직자가 된다(9.6). 결국 영적인 기준이 아닌 인간적인 잣대를 통해 아비멜렉을 지도자로 세운 세겜은 그 값을 혹독하게 치르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교회 문을 닫게 된다. 이것이 949절까지의 내용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면 반드시 대용품을 찾게 되어 있다. 세겜에게 아비멜렉은 이와같은 존재였다. 그는 좋은 사람처럼 보였다. 누구나 본성이 드러나지 않을 때는 천사처럼 보인다. 있는 것이라고는 시간 밖에 없고, 그래서 예배란 예배는 다 참석하고, 그러니 믿음 좋은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중직자로 세운다. 그래서 그 다음은 무엇인가? 이게 지금 한국교회가 지불하고 있는 대가(代價) 아닌가. 내용 없이 형식만을 갖춘 사람들이 아비멜렉처럼 힘을 갖게 되면 세겜처럼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다. 그것은 시간 문제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죄의 악순환을 9장에서 관찰해 보았다.

아비멜렉은 자신도 불행할 뿐 아니라 모두를 실패하게 한다. 그의 편에 서면 승리도 있어 보이고, 그래서 그 부스러기들을 나누어 가지게 되니까 좋아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일시적으로 성공해 보이고, 대단해 보이고, 소위 뜨는사람이지만 그는 그야말로 거품이었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일대기가 아비멜렉의 일생이다. 하나님도 그를 버리셨다. 그는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될 기회의 3년을(22) 이처럼 허비하고 끝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70명에게 저지른 포학한 일을 갚되

  그들을 죽여 피 흘린 죄를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그의 형제들을 죽이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23-24)

 

 

오늘은 이 비극의 마지막 장면을 덤덤하게 읽으면서 아비멜렉의 인생 실패사(失敗史) 끝 부분에 서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실현되어지는가를 보면서...

 

 

 

악인은 망하리로다.

 

마침내 아비멜렉의 잔인성은 극에 달하였다.

그는 망대에 있는 1,000명의 사람들을 불로 태워 죽였다(46-49). 그리고서 반() 아비멜렉 계열인 데베스를 맞서 진치고 그것을 점령하였더니”(50)로 이어진다. 이러고도 살아 있으니 기적 아닌가.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고, 오히려 부정한 입술로 하나님을 저주하고도 잘 살고 있는 기적과도 같은 인생들이 너무너무 많다.

아비멜렉은 망대 앞에 이르러 공격하며 망대의 문에 가까이 나아가서”(52) 싸웠다. 그가 왜 이처럼 경솔하게 행동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그것은 분명 과욕이다. 그러나 이것을 모를 리 없는 그가 이처럼 행동한 것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가? 이것이 그가 무명의 한 여인에게서 맷돌 윗짝을 머리에 맞아 두개골이 깨지는 부상을 당하게 되는 원인이었다. 가장 강한 자가 가장 약한 자, 그것도 여인에 의해 -당시에는 여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수치 중에 수치로 생각했었다.- 죽임을 당한다(53-54). 이렇듯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고전1.26-29).

여인의 맷돌에 맞아 죽는 것만은 부끄러워하는 아비멜렉을 보라. 인간적으로 참 불행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부끄러워하고, 슬퍼해야 할 핵심을 잊어버리면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게 사람이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요담의 설교를 이미 들었다(9.7-21). 즉사(卽死)하지 않고 죽어가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 마지막으로 찾아온 기회의 시간이었다.

다름 아닌 가시나무에 비유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때로 하나님은 임종(臨終) 직전까지 시간을 주시면서 한 영혼이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주시곤 한다. 회개하고 죄사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표로 세례를 받고 하나님께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끝까지 거부하고 죽음을 피해 보려고 발버둥치며 공포 가운데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비멜렉은 후자와 같은 사람이다. 악인의 끝은 비극이다. 본문은 그의 인생 보고서를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아비멜렉이 그의 형제 70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응하니라.”(56,57b)

비록 배 다른 형제지만 아비멜렉과 요담이 걸어간 인생길은 극과 극이다. 한 가정 안에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식이 있고, 완전히 불신앙의 깡패와 같은 자식이 공존한다. 이 가정의 아버지는 한 때 위대한 사사로 이스라엘을 구원했던 기드온(여룹바알)이다. 이렇게 몰락할 수도 있는가. 하나님을 버린 죄악의 결과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아비멜렉이 우리에게 한 공로가 있다면 그처럼 살아서는 실패 인생이라는 것 뿐이다. 패가망신(敗家亡身)한 가정, 멸문(滅門)한 가정의 참담한 역사 앞에 서서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를 통해 포도원(교회, 가정, 신앙공동체)이 헐리는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중보기도의 무릎으로 하나님 앞에 선다.

   

 

부스러기 묵상

 

악으로 쌓은 탑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것도 공멸함으로 막을 내리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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