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과 비전은 다르다(삿 9.1-6).

20211119(묵상)

 

 

 

야망과 비전은 다르다.

Jdgs. 9.1-6

 

    본문 분석

 

    아비멜렉의 음모와 세겜의 동조(1-3)

    형제의 난, 왕이 된 아비멜렉(4-6)

  

 

아비멜렉 이야기

 

기드온의 후편으로 다루어지는 아비멜렉은 누구인가?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기드온)은 많은 아내를 통해 70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 중에 세겜에 있는 첩이 낳은 아들이 바로 아비멜렉이다(8.30-31). 아비멜렉은 출생 과정에서부터 다른 형제들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루거나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한 권력에의 욕망, 즉 그것을 얻고는 싶은데 이루기에는 함량이 미달이고, 그래서 이 문제를 유혈 쿠데타를 통해 물리적으로 찬탈하고 만다.

  

 

야망의 사나이

 

야망의 가장 큰 특징은 반드시 남을 해롭게 한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희생한다. 먼저 그는 1/70로 만족하지 않았다(2). 자신의 목적 성취를 위해 하나님의 백성(교회)을 수단으로 사용한다(3). 그는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위해 지연(地緣)과 혈연(血緣)을 적절하게 악용하여, 그러니까 지역을 담보로 정치를 한다.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 즉 정치적인 목적으로 매수한 건달들이 그의 주변에 포진해 있다(4). 결국 1이 되기 위해 나머지 69를 희생해도 된다는 일그러진 심성을 소유한 사람이다(5). 그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목적을 성취함으로써 일단 성공한다(6). 그러나 이것이 정말 성공인가. 바른 삶이라 할 수 있는가. 약속(언약)의 땅 가나안(공동체) 안을 이처럼 만들어도 되는가. 사람도 썩으면 악취가 난다. 야망은 모두에게 해롭다.

아비멜렉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자신이 스스로 왕이 된다. 문제의 핵심은 하나님으로부터 임한 소명도 없이 스스로 통치자가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모반(謀叛)이고 정변(政變)이다. 하나님 없이도 자기의 목적을 이루는 것 그것이 야망이라는 이름의 죄악 아닌가. 도대체 누가 누구의 왕이란 말인가.

이게 죄인으로서의 인간이다. 하나님 없이 마음대로 행하는 것, 이처럼 스스로를 높아지는 것, 이게 교만이다. 잠깐의 헛된 영광을 위해 영원한 것을 도적질한 인생, 그게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다. 기드온과 그 가문은 이처럼 무너지는 중이다.

   

 

해답 없는 인생

 

아비멜렉은 왕이 되어 기고만장(氣高萬丈)해 하였을 것이다. 일단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아니 하나님마저도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데 방해가 되지 못하는 듯하다. 이렇듯 인간의 야망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자신의 뜻에 따라 열심히 노력하면 안되는 것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꿩 잡는 게 매다.”는 식으로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며 달려간다. 그리고 일단 결과만 좋으면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의 모든 것들은 그냥 무시되어 버리고 만다. 예나 지금이나 그게 신기하게도 통한다.

 

1. 야망과 비전은 다르다.

 

야망은 자신의 목적 성취와 관련을 갖는다. 아비멜렉이 왕이 되는 일에 하나님의 개입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왕 제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명령되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17.14-20 참조). 아비멜렉이 자기 스스로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한 야망에 불과하다. 또한 하나님을 이용해 결국 자기 목표를 성취하는 것은 가장 교묘한 야망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 비전은 언제나 하나님과 관련된다.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을 위해 자신의 정체를 인식한다.

간혹 교회 안에도 야망을 가지고 덤벼드는 사람들이 있다. 직분에 대한 집착이 그런 것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지금 내가 준비하고, 기도하고, 열심을 내고 있는 일이 야망인가 비전인가를 촘촘하게 좀 더 묵상해 본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 이것이 이 둘을 구별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다. 야망이면 무너질 것이고, 비전이면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것으로 성취될 것이다.

분위기를 바꾸어서 생각해 보자. 아비멜렉의 사건이 어디서 벌어지고 있는가. 애굽이 아니라 약속의 땅,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가나안 땅이다. 이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이 땅에서는 내분이 일어나면 안된다. 지금은 아직 남아 있는 가나안 족속들을 어떻게 하면 다 없이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사명이다.

이처럼 우리의 많은 문제도 따지고 보면 내부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정작 싸워야 할 문제, 하나님 앞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을 이룰 겨를이 없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나 한 사람의 일탈된 인격, 모래 위에 쌓고 있는 거짓된 욕망, 우리 안에 있는 적과의 동침, 바로 이런 것들이 공동체의 건강을 무너뜨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2. 성공 안에 있는 실패가 자란다.

 

앞서 묵상하였듯이 기드온의 성공 안에는 이미 실패의 씨앗이 잠복해 있었다. 그의 영적 영향력은 그가 돌아가서 자기 집에”(8.29) 거함에서부터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를 왕이라 말하지 않았지만 당시 주변국가의 왕들이 강력한 왕권의 기준처럼 삼았던 아내와 자녀의 수를 가지고 있었고, 종교적으로는 에봇을 만들어서 정교(政敎) 구분을 스스로 넘나듦으로써 기드온 이후의 이스라엘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끌고 갔다.

결과적으로 그 자신은 성공했을지 몰라도 후대에는 씻을 수 없는 비극을 낳은 원인 제공자였다. 무릇 사람은 마무리가 중요하다. 최근에 미국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가 쓴 [나이 드는 것의 미덕](도서출판 끌리오, 1999)이라는 책을 감명 깊게 여러 번 읽은 적이 있다. 그는 과거 대통령 때보다 퇴임 이후가 더 아름다운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그는 아주 멋지게 인생의 마무리 지점을 채워가고 있다. 이 아침에 왜 기드온과 카터가 오버랩(OL) 되는 걸까.

선악(善惡)이 뒤바뀌었으며, 죄를 행하고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르는 영적 무지, 그러기에 서로 편을 가르며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일이 가나안 공동체 안에 무섭게 퍼지고 있다. 이로써 한 시대의 영적 부흥은 그 막을 내린다.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부흥, 그 안타까움을 이 땅의 교회가 반복하지 않도록 나에게 주어진 사명의 끈을 다시금 촘촘하게, 그리고 비전과 야망을 구별하는 지혜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묵묵히 나아간다.

   

 

부스러기 묵상

 

    “자기 형제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으되”(5)

    “한 여인이 맷돌 윗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던져

      그의 두개골을 깨뜨리니”(53)

 

하나님과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사기다.

그래서 무섭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아직 왕정으로 넘어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데 종(이스라엘)이 주인(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를 주인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이게 기드온 가문의 일탈이고 죄악이다. 이것은 아버지 기드온이 결과적으로 심은 씨앗이고, 이것이 자라 아비멜렉에게서 뼈아픈 고통과 죄악의 열매로 나타나는 셈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는 죄악의 열매요 그 결과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돈, 권력, 섹스에 대한 욕망이 있다.

권력에의 욕망을 위해서는 피를 나눈 형제(이복형제)도 방해가 된다도 생각하고, 그들의 목숨까지를 끊어내면서 야망과 이기심과 욕망으로 세운 왕국과 왕권이다. 하지만 이게 얼마나 가겠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형제와 이웃을 죽이고서 그 위에 만들어진 권력이어서다. 일그러진 욕망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고, 또한 이용 당하고, 그러면서 하나님과는 점점 멀어지는 비극의 연속을 만날 뿐이다. 이것이 가나안에서 일어나는 사사기의 몰골이다. 어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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