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의 신앙고백(삿 8.10-23)

20211117b(묵상)

 

 

 

기드온의 신앙고백

Jdgs. 8.10-23

 

    본문 관찰

       

    미디안 패주병을 격파한 기드온의 군대(10-12)

    동족 숙곳 사람들에게 저지른 보복(13-17)

    가나안의 왕처럼 변한 기드온(18-21)

    왕의 권력을 누리는 기드온(22-23)

 

 

시험 그 이후

 

승리 이후, 그것이 좀 어둡다.

그래서 잘 될 때와 그 이후가 항상 더 문제가 되곤 한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인 것처럼 남용하는 것에서 기드온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가나안의 나라들과 같은 왕이 되고자 하는 소위 왕비어천가의 흐름이 감지되는 것에서 그렇다.

   

 

18-21

 

기드온은 미디안 대적 135,000명 가운데 15,000명은 상대적으로 약간이었지만 그러나 남겨두지 않는다. 과거 이스라엘 선조들이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약간남겨 놓은 가나안 토착세력들이 후에 얼마나 거대세력으로 자랐는지, 그리고 그 결과의 한 부분이었던 7년 전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침략하기 전후의 역사에서 이미 경험한 기드온인지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사명을 완수해야 했기에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사명의 자리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이것이 시험 그 이후의 기드온의 삶이다. 기드온은 진정한 싸움이 대상이 에브라임이나 숙곳의 사람들(8.1-17)이 아니라 가나안을 애굽처럼 만들어 버린 토착 세력들임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는 싸움의 대상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한편, 세바와 살문나의 -이들은 사탄의 졸개들이다- 최후진술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21). 죄는 생각보다 끝까지 당당하다는 점이다. 죄인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뻔뻔하다. 죽는 것까지 불사한다. 그러나 죄의 최후는 이처럼 사망(멸망)이다. 이것은 가정(假定)이 아니라 진리다. 이로써 미디안의 7년 통치는 그 막을 내린다. ()의 승리요 하나님의 승리이다. 마침내 미디안의 시험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그 막을 내린다.

   

 

22

 

한 가지 불안한 전조는 백성들의 영적 상태다. 그들의 생각과 말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언제라도 죄로 회귀(回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저들에게 있었다. 옆에 기드온이 있고,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도 말이다. 이는 우리가 승리 부분에서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나에게도 이러한 생각이 찾아올 수 있고, 그 생각대로 행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다. 22절은 얼마든지 나에게도 있을 수 있다.

최후의 시험은 기드온 자신에게까지 찾아왔다. 기드온도 시험의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시험은 찾아온다. 성령충만(6.34) 해도 시험은 있다. 승리 이후에 기드온에게 찾아온 시험은 이 되어 달라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그럴듯한 몇 가지 명분이 있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무지할까 싶다.

 

당신이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처음 32,000명에서 최종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300명이었고 -돌아갔던 사람들을 통해 그 이유가 이미 온 이스라엘에게 알려졌을 것이다- 미디안은 135,000명의 대군(大軍)이었다. 그러나 이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 이스라엘은 완승(完勝)을 거두었다(12). 이 소문과 함께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위에 역사하셨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를 구원한 자는 기드온 장군입니다.”라고 헛소리를 하고 있으니 이들의 신세가 가련하기까지 하다.

영적 무지는 사람을 보게 한다. 하나님이 하셨음에도 사람이 한 것으로 결론을 갖고 싶어 한다. 사역자로서 겪는 가장 큰 유혹과 시험은 목사님이 처럼 이어지는 말들이다. 이럴 때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된 줄로 착각하다가 교만해 지고, 그리하여 그만 추락하고 만다. 사람의 소리에 솔깃하다가 영적 분별 기능을 잃어버리면 참으로 한심한 꼴로 목회가 참 추해지는 된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그런 말을 들을 때 사탄이 조금 전에 이미 그 말을 내게 하고 갔다라고 넘겼다고 한다.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직설적으로 말하면 당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달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사람,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닌 밑으로부터의 요구였다. 아직 이스라엘은 당시 근동의 국가들처럼 왕정(王政)이 아니었다.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하였을 때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삼상8.7-9)

그런데 사사기 초반부에 벌써 이스라엘이 왕을 세우려고 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왕도 아니다. 하나님께 묻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자기 생각대로 일하고 있는 이스라엘이다.

   

 

23

 

과연 기드온이 어떻게 이 문제를 처리할 것인가? 대단히 궁금하다. 마침내 기드온이 이스라엘 앞에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23, 참조. 삼상8.1-9) 이것이 기드온의 신앙고백이다. 그는 승리 이후에 찾아온 시험을 아주 넉넉하게 감당한다.

우리도 이 멋진 고백을 주님께 드리며 살아야 한다. 우리게 주신 은혜를 이처럼 다시 주님께 돌려드려야 한다. 우리에게도 그 날이 있었으면 한다. 승리만 바라는 것이 아니다. 승리 이후의 고백 역시 우리 안에 있는 천국이기를 소망해 본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기드온에게는 하나님 두려워하는 믿음이 있었다. 미디안의 침략으로 7년의 고난이 계속되고 있을 때 아무 자격 없는 자신을 찾아오심(6.11-15)을 시작으로 제사를 받으시고(6.19-24), 바알의 단을 훼파케 하심(6.25-32), 성령충만(6.34), 양털 표징(6.36-40), 300 용사 선택과 미디안 전쟁의 승리(7)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으며, 그러니까 이 일이 진행되는 동안 하나님이 다 이루셨다는 것을 똑똑히 본 기드온으로서는 모든 영광을 자기 몫으로 돌릴 수 없었다. 그는 6장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심을 체험했으며, 그것만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으로 철저하게 무장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드온이 직접 행동하는 신앙으로 모든 일을 다 처리했지만 자신이 한 일이 아님을 깨닫고 있는 그 자리까지 성숙하기까지 그가 지불해야 할 대가가 결코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공과 성취 목록이 많아짐에 따라 그것이 주는 묘한 맛을 즐긴다. 이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것들로부터 돌아서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기드온이 참 귀해 보인다. 신앙의 위기는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성경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영적 위기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없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없는지, 나의 삶의 전 영역 가운데 하나님이 부재중인 부분은 혹 없는지, 하나님보다 앞서 행하고 있는 것들은 없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묵상하는 시간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기드온의 신앙고백이요,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은혜의 압권(壓卷)이다. 인생과 하나님의 질적 구분(간격, 구별)을 철저하게 유지했던 기드온의 신앙고백이야말로 그의 인생의 절정이다. 여기서 달란트 비유에 등장하는 종의 고백이 생각난다: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25.20) 그는 다섯일 때나 열일 때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주인을 섬기고 있다. 처음과 나중이 차이가 없다. 다섯은 자기 것으로, 나머지 다섯은 주인 것으로 적당하게 거래하지 않는다.

기드온이 지금 그렇다. 초지일관(初志一貫)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 몫으로 도적질하지 않는 사람, 감히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지 않는 사람, 성공 이후에 찾아올 수 있는 시험을 넉넉히 이겨낼 줄 아는 사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당시 주변국가들은 왕정이었다- 하나님이심을 믿고 확신하는 사람, 가나안에 하나님의 통치가 회복되기를 갈망하는 사람, 잃어버린 하나님의 부흥을 열망하는 사람, 그는 지금 이 모습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앞에 서 있다.

이 사람을 보라! 아니, 이 사람을 이처럼 만드신 하나님을 보라! 하나님의 목표는 한 사람의 헌신과 그의 거룩에 있다. 하나님께 붙들려 살기를 갈망하는 기드온에게서 오늘은 더 많은 것들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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