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을 알면 계시가 보인다(삿 7.9-25).

20211116(묵상)

  

 

 

기드온을 알면 계시가 보인다.

Jdgs. 7.9-25

 

    본문 관찰

 

    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14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15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임박한 전쟁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그 당사자에게 직접 알리신다.

하나님과 기드온 사이에는 그 어떤 중간자(中間者)가 없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리시거나 일을 하시는 경우가 성경에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는 모세에게, 바울에게는 바울에게, 지금도 하나님은 이처럼 일하신다. 우리는 기드온을 찾아오신 하나님에게서 동일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두 메시지(9-14)

 

    하나님이 기드온에게(9)

    어떤 사람이 기드온에게(10-14)

 

(1) 하나님이 기드온에게(9)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찾아오셨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 순서(경사도)를 따라 일하신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6.1)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는 순서를 따라 무너진다. 아주 묘한 대조가 아닌가.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기드온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 마침내 지난 7년의 부담을 떨쳐버리고서 하나님의 명령 앞에 일어난다. 지금은 일어날 때이다. 이스라엘은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하심 아래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고통과 고난의 자리에서 이스라엘을 일으키신다. ‘미디안 막대기로부터 건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의 허락(OK sign)이 떨어지는 것이 먼저다. 단지 우리는 이 일에 참여하는 것 뿐이다.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다. 이를 하나님의 주권이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한다: “이 세상을 우리 손에 붙여주소서. 악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도록 저들을 우리 손에 붙여주소서.”

 

(2) 어떤 사람이 기드온에게(10-14)

 

놀랍고 신기한 일은 세상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먼저 안다는 점이다. 미디안의 두 무명의 병사들의 대화가 그것이다. 이들의 대화는 그 어떤 간증보다 위대하다. 그런데 이들은 누구인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다.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 그렇다면 입술에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말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보장은 되지 않는다는 말 아닌가.

지금 미디안의 군사들이 나누는 대화가 그렇다. 하나님의 계시를 이루는 통로이지만 그것이 동시에 하나님의 축복은 아닌 인생, 그것이 은혜 밖에 있는 인생의 비극이다. 엄밀히 보면 두 무명의 병사들은 지금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희안한 것은 하나님을 말하는데 하나님이 없는 인생이다.

그럴 수 있다. 중생하지 못한 교인들 가운데, 죄사함 받고 의롭다 인정하심을 통해 구원에 이르지 못한 멤버십만 있는 교인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돌아보면 우리 주위에 입술신앙’(Lip service)이라는 제5복음서를 자기 방식대로 쓰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다.

 

 

계시의존 사색(15-18)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을 소유한 기드온에게는 이들의 대화가 복음이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복되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2.7,11,17,29, 3.6,13,22) 마침내 기드온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두 가지 통로를 통해 확신을 갖게 된다.

첫째는 하나님이 기드온 자신에게 말씀하심을 통해서이고, 둘째는 세상이 하나님에 관하여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을 통해서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두 채널을 통해 여전히 일하시며 말씀하신다.

계시(啓示)라는 신학 주제를 통해 오늘 본문을 조명해 본다면 특별계시(9)와 일반계시(10-14)의 적절한 조화(15-18)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나님은 이 두 계시가 기드온에게서 꽃피우도록 은혜를 주신다. 이에 반해 미디안은 이 일이 이루어지는 일에 들러리밖에 되지 못한다. 하나님을 말하고,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그들을 결코 구원하지 못한다. 참 기막힌 역설 아닌가.

기드온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시각을 놓치지 않는다. 기드온에게는 이미 성령이 임하셨다(6.34). 그랬기에 자신의 경험이나, 자신의 직감과 같은 것들을 의존하여 일련의 일들을 처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9)을 일상의 영성(10-14)으로부터 확증하며 마침내 가나안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는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절묘함(15-18)이 기드온에게서 엿보이는 그의 아름다운 신앙이다.

기드온의 영성은 단지 9절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이 표현은 9절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9절만으로는 안 된다는 뜻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신앙의 장(field)을 단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비롯되는 책상 영성으로 제한하지도 않았다. 그는 삶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도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분의 섭리하심을 들을 수 있는 일상생활의 영성을 소유한 멋진 사람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가나안)에서도 이루어지이다.”(6.10)는 주의 기도를 실현해 간다. 이처럼 기드온을 알면 하나님의 일하심, 그 계시의 점진적 진전이 보인다. 이것이 내가 붙들려야 할 영성의 십자가가 아닌가 싶다.

   

 

부스러기 묵상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내려가서”(10)

        →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내려간즉”(11b)

            “기드온이 듣고 돌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15)

 

두려움(10-11)에 떨던 기드온은 담대함으로 무장한다.

하지만 미디안(아말렉)은 반대로 두려움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결국 전쟁에서 패한다. 여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자리한다. ‘메뚜기의 많은 수해변의 모래가 많음같은 미디안 연합군을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을 든 불과 300명의 군사로 승리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능치 못한 일이 없다.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눈을 피해 밀을 타작하던 포도주 틀’(6.11)에서 미디안의 방백을 죽이고 승전가를 부른다(25).

하지만 대승(大勝)에 가려져 자칫 놓칠 수 있는 간접광고와 같은 흔적이 있다. 24절이다. 이것은 300명의 전쟁을 명령하신 하나님의 뜻하심과 어울리지 않는 조치였다. 이는 후에 승리의 공로와 구원자가 하나님이 아닌 기드온이 되어지는 또 하나의 죄악을 낳는 씨앗이 된다(8.1-3,22). 아쉽게도 이게 사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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