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 스타트(삿 6.17-24)

20211113b(묵상)

  

 

 

기드온 스타트

Jdgs. 6.17-24

 

    본문 관찰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예물을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하나님의 표징(sign)

 

하나님은 믿지 못하는 기드온을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주신다.

기드온은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온전하고 완전하시다. 기드온은 그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 깨어나지 않는다. 부족하고 연약한 기드온을 찾아오셔서 그를 큰 용사로 세워가신다. 비로소 패배자에서 예배자가 되는 순간이다. 마침내 여호와 샬롬이라는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한다.

   

 

예배자(17-21)

 

기드온은 초신자의 자리에서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한다. 바로 앞 15절과 비교해 볼 때 전혀 다른 모습으로다. 그러나 그는 은총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전히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17)이라고 말한다. 사실 신앙은 가정법’(If)이 아니며, 또한 단숨에 완성되지 않는다. 과일나무 중에 사과나 배는 3년생 가지에서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까 금년에 자란 새순은 3년을 지나가서야 그 가지에서 열매가 맺는다.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기드온도 하나님과의 첫 번 만남에서 하나님의 기대하심처럼 큰 용사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인생도 그렇게 완성품으로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치루어야 할 대가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시작으로 큰 용사로 되어져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일이 시작된 사람,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를 하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기드온은 마침내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 나로 서는 축복을 받는다: “내가 예물을 가지고 .”(18) 이것마저도 하나님의 긴 기다림 때문이다. 이것이 은혜 아닌가.

기드온은 예배를 뒤로 미루지 않는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예배를 사모하고, 예배하는 것을 기뻐한다. 예배는 영적 건강의 척도이다. 그의 준비는 아마 족히 몇 시간은 걸렸을 것이다(19). 하지만 최선의 정성을 다 해 준비한다. 염소 새끼를 잡고 가루 한 에바(22)로 무교전병을 만들어 그 고기는 소쿠리에 담고 국물은 양푼에 담아서 가지고 오는 기드온의 모습,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편 우리가 아는 그는 밀을 타작할 때에 이 일을 비밀리에 했었다. 그러나 영적인 양식을 위해서는 시공(時空)에 얽매이지 않는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는 미디안이 장애물이었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위해서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4.22-23) 하나님 앞에 자신을 단장하고 있다.

그는 분명 자발적인 사람으로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앞에서 가졌던 무수한 질문들은 -하나님은 반대 유형의 질문들을 가장 잘 해결하신다- 온대간대 없고, 있는 것은 순종뿐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만난 사람, 은혜 받은 사람의 모습이다. 신앙은 순종을 통해서 성장해 가고, 예배를 통해서 확증된다. 한 건강한 성도로 되어져 가는’(becoming) 기드온을 만난다. 하나님은 분명 그를 복되게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세워가고 계신다. 하나님께 붙들리면 이처럼 역사가 이루어진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붙잡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으로 예비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우리 역시 동일한 은혜가 찾아와 머물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예배에 대해서 더 묵상해 보자. 예배는 내 마음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이 드리는 예배를 친히 집례하고 계신다(20-21). 예배는 우리만의 행위가 아니다. 예배에는 반드시 예배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임하신다. 그래야 예배가 된다. 그러나 나 홀로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많은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나의 불편함과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예배 앞에 나아가는 경우가 혹 없었는지 생각해 본다. 예배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지 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회 개(22)

 

기드온의 예배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 기드온이 예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의 예배에 하나님이 친히 임하셨기 때문이다. 예배 이후에 기드온은 자신이 얼마나 큰 사건을 통과했는가를 비로소 깨닫는다. 그러자 그는 두려움에 떤다. 이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6.5, 5.8). 이러한 자각은 기드온으로 하여금 회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그는 마침내 지금까지의 대화의 상대가 하나님이셨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왜 이처럼 두려워하는가? 그것은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그는 반드시 죽게 되기 때문이다(22). 기드온은 지난 7년 동안 미디안 때문에, 아니 이스라엘의 범죄와 타락 때문에 잊고 있었던 기억을 되찾는다. 이것이 부흥으로 가는 시작이다.

사실 기드온의 두려움은 단순한 공포와는 구별된다. 하나님과 인간의 건너 뛸 수 없는 간격, 거룩하신 하나님과 비교되는 인간의 죄가 하나님 경외 사상의 핵심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자로 서는 은혜를 맛보게 되면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에 서게 된다.

하나님을 만나면 예배가 회복되고, 예배가 회복되면 회개하게 된다. 피조물과 하나님의 질적인 간격, 그 간격을 내 힘으로 뛰어 넘으려고 했던 지난 날의 불신앙을 회개하게 된다. 죽었어야 할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은 기드온으로 하여금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도록 했음직하다.

   

 

부스러기 묵상

 

하나님의 임재, 그 이후를 주목한다(23-24).

기드온에게는 이 문제가 두려움이라는 영적 침체를 가져오게 했다. 오히려 은혜 뒤에 깊은 영적 침체가 동반된다. 종종 우리도 은혜 뒤에 영적 침체를 만난다. 그렇지만 그가 실패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찾아오시사 예배자를 만나 주시기 때문이다. 실의에 빠져있는, 그러나 예배자인 기드온을 하나님은 다시 찾아오셨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처럼 찾아오신다: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23) 이 은혜는 예배 밖에 있는 사람에게, 아무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이 말씀의 수혜자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임재 앞에 나아가 회개한 사람, 비로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갖게 된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이다.

기드온은 마침내 복되게 회복되고, 초신자의 자리에서 이제는 더 깊은 신앙으로 성숙해 간다. 그 증거는 은혜를 받았을 때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나님의 임재를 통한 자유함을 받은 기드온, 그래서 그는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24) 다시금 예배자가 되는 감격을 맛본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마침내 이 평화는 기드온을 시작으로 황무한 가나안에 부어지게 될 것이다. 그 중심에 하나님이 만나주신 예배자 기드온이 서 있다.

삶의 초점을 예배로 맞추는 기드온, 감사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기드온, 하나님이 평강 주셨음을 찬양하는 기드온, 그는 건강한 신앙 앞으로 나아간다. 얼마나 멋진 신앙의 성장이요, 승부인가? 그는 하나님과의 계속되는 대화를 통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말씀으로의 양육을 통해 계속해서 성장해 간다.

그는 마침내 이제 기대해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은 그를 어떻게 사용하실까? 기대해 보자. 기드온처럼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자녀인가? 기대해 보자. 기드온의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교회인가? 역시 기대해 보자. 신나는 일이다. , 이 부흥이 내 안에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묵상과 기도로 하나님 앞에 선다. 찬미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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