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의 사람들Ⅱ(삿 5.19-31)

20211111(묵상)

  

 

 

두 종류의 사람들()

Jdgs. 5.19-31

 

    본문 관찰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시스라의 어머니가 창문을 통하여 바라보며 살창을 통하여 부르짖기를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40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두 부류의 인생

 

인생은 연습이 없다.

한번 살아보고 다시 할 수 있는 인생, 지우개로 지우며 다시 쓰는 인생, 후진기어가 달린 인생은 없다. 물레방아를 돌리고 지나간 물은 다시 물레방아를 돌리지 못하는 것처럼 이것이 인생에게 작정하신 하나님의 섭리요 인생법칙이다. 아무리 후회하고, 또 반대로 아름답고 복된 나날들이었다 할지라도 하나는 연습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인 것이 아니라 둘 다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길이다.

역시 오늘 본문에도 어제에 이어 두 부류의 인생을 대비시키며 그리스도인들(독자)로 하여금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촉구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드보라는 탁월한 시적(詩的) 구성을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찬송할 이유 있음의 인생인가를 보여 주고 싶어한다.

   

 

24-27

 

주를 사랑하는 자 -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

 

드보라는 야엘을 가리켜 여인 중에 가장 복을 받은 자라고 말한다. 여인의 입에서 다른 한 여인을 이처럼 축복하는 마음, 이 복된 마음이 드보라의 마음이요 그녀의 영성이다. 드보라를 통한 하나님의 예언(4.9)은 마침내 야엘을 통해 성취된다(4.17-22). 사사기에서 가장 빛나는 여인인 이 둘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절묘한 섭리를 본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4.11)는 말씀처럼 이미 전쟁이 있기 이전에 야엘을 전쟁의 영향권 안으로 부르셨다. 하나님은 이들의 이사까지를 섭리하셨다. 아마 야엘은 자신이 이처럼 쓰임 받을 것에 대해 전혀 예상도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이사한 일이 전쟁을 통한 위기와 고통을 더 가중시켰음을 인해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은 하나님의 섭리이다. 우리가 볼 때는 실패(실수)한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하나님은 거기서 매우 복되고 귀한 일을 성취해 가신다. 하나님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를 어찌 다 측량할 수 있으랴!

야엘은 주를 사랑하는 자였다. 자기에게 찾아온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적이 제 발로 걸어서 자기의 파멸을 재촉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야엘은 하솔 왕 야빈과 맺은 지난 날의 친분에 연연하지 않는다. 지금은 전쟁 중이다.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가나안을 황무하게 만든 적군이 아닌가. 잠깐이기는 하지만 적과의 동침이다. 야엘은 선택해야만 한다. 자기 인생을 과거형으로 매김할 것인가, 아니면 미래형으로 열어갈 것인가의 결단의 순간이 찾아왔다.

우리에게도 크고 작은 결단을 내려야 할 일이 많다. 당장 해야 할 것도 있고, 차분히 생각하면서 결정해야 할 문제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기준이며, 무엇이 그러한 결정의 근거인가에 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고전13.5a)라는 말씀처럼 자아(ego)의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이기를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주를 사랑하는 자들’(31) 됨의 비결이 아닐지 싶다.

야엘의 결단은 모세의 일생을 묵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11.25-26). 이것이 이 시대에도 여전히 주를 사랑하는 자들로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자, 동시에 주님으로부터 이처럼 인정 받을 수 있는 근거라고 믿는다.

아버지여, 우리로 하여금 주를 더욱 사랑하는 자 되게 하시고, 주께서 친히 우리에게 주를 사랑하는 자라 인정하시는 자녀 삼으소서! 이것이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바 성도의 꿈이다.

   

 

28-30

 

주의 대적 - 시스라의 어머니

 

장면이 갑자기 바뀐다. 하나님의 은총 밖, 그리스도 밖, 구원 밖에 있는 인생의 무지와 그것으로 말미암는 비극이 무엇인가를 본문은 우리에게 증거하는 것에서 그렇다. 놀랍게도 세상은 이처럼 끝없는 허상을 붙들고 산다. 이미(already) 실패했으나 아직(not yet) 그 실패를 알지 못한다. 이미 끝났으나 아직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 어쩌면 그게 오히려 더 편한지 모른다. 인간의 이중성이다. 죄인인데 아닌 것 같이 느끼고, 파멸인데 아직 희망이 남아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싶고, 다 끝난 일인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흐느적 거리는 것, 이 모든 것이 시스라 신드롬’(Sisera Syndrome)이다.

시스라의 어머니는 혹 이해해 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녀의 언행은 결코 옳은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이처럼 신기루와 같은 허상(虛像)을 붙들고 살아가는 인생들로 가득 차 있다: “(아들)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가?” 이것이 하나님 없는 인생의 지혜다(29).

하나님의 일하심, 가나안으로 하여금 가나안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생들임에도 불구하고 가나안에서도 그들의 인생을 연명해 갈 수 있다. 지금 시스라와 그의 가족이 그러하다. 그들의 비극은 가나안에 죄악의 꽃을 피게 만들었지만 그것이 지금 뿌리 채 뽑히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데 있다. 행복한 것 같으나 아닌 인생, 성공한 것 같으나 아닌 인생,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으나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한 인생, 그들이 바로 주의 대적의 정체다.

 

 

부스러기 묵상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40년 동안 평온하였더라.”(31)

 

세상에는 파멸을 향해 추락(몰락)하는 사람과 해가 힘 있게 돋음 같이 찬란하게 떠오르는(비상하는) 사람, 이렇듯 이 둘이 언제나 공존한다. 전자는 주의 원수들이고, 후자는 주를 사랑하는 자들로 불리운다. 성경은 이 두 인생이 최종적인 결론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선언을 주저하지 않는다. 주의 원수들은 자기 스스로의 인생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 결과는 망하는 것이다. 결국 메로스처럼 여호와의 저주의 대상이다(23). 하나님을 위한 영적 전투에 참여조차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을 무릅쓰고 전쟁에 나서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친 백성들은 주를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결코 당신을 위한 우리의 수고와 헌신을 잊지 않으신다. 전쟁은 이들의 헌신과 수고를 통해 평화로 바뀐다. 참으로 귀한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평화의 날이 아닌가.

인생은 연습이 없는 실전이다. 한번 살아보고 다시 할 수 있는 인생, 후진기어가 달린 인생은 없다. 유감스럽게도 시스라와 그녀의 어머니는 이미(already) 실패했으나 아직(not yet) 그 실패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이미 끝났으나 아직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 이것이 시스라 신드롬’(Sisera Syndrom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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