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일기.總會日記(삿 20.1-11)

20211210(묵상)

  

 

 

총회일기(總會日記)

Jdgs. 20.1-11

 

    본문 관찰

 

    총회 소집(1-2)

    사건 보고서(3-7)

    기브아 징계결의안(8-11)

  

 

미스바 총회

 

레위인의 12 토막 살인사건은 온 이스라엘에게 충격이었다.

이같은 행위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하였음으로, 이에 모든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 모였다(19.30, 1). 마치 중대한 문제가 있을 때 국가는 국민투표에 붙이고, 교회는 공동의회로 모이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지금 총회(總會)로 모였다. 사사기 기자는 이 일 때문에 여호와 앞에”(1) 모였음을 잊지 않고 말한다(하지만 가나안 족속을 멸하기 위한 총회는 아니다).

   

 

하나님 백성의 총회(2)

 

이 일은 사사시대 가나안에서 있었던 일이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살아가던 때에 어떤 문제를 두고 하나님 앞에 총회로 모일 수 있다는 것은 높이 살 만 한 반전이다. 이것은 기브아의 밤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레위인이 기브아를 찾았을 때와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악행을 할 때 모든 베냐민 지파가 전혀 무관심했을 때와 -오직 한 노인의 독주(solo)만이 있었다- 전혀 다른 양상이 벌어진 셈이다(19.16-26).

그러나 이 일이 조금 염려스러운 점은 칼을 빼는 군사 40만 명이 총회에 함께 한 점이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리고 레위인의 증언을 듣는다. 그렇다면 증인의 말에 따라 모든 일이 좌우될 판이다. 그러나 레위인은 명백한 위증(僞證)을 하고 있다. 그는 율법 준수의 책임이 누구보다 요구되는 사람인데 어찌된 일인지 율법의 이름으로 증인이 되었으나 율법적인 태도로 행동한다. 그는 율법의 이름으로 율법을 모독한다. 사실 그는 증인의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바로 이 부분을 사사기 교회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다.

한편 하나님 앞에 모였으면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찾았어야 맞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여쭈어 가로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20.18)라고 물었어야 맞는 순서다. 그러나 이미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40만의 군사를 대기시켜 놓고, 관례에 따라 증인의 말을 청취하고는 자신들의 뜻대로 행동하는 방식을 취한다. 율법(하나님의 말씀)은 자기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고 추인하는 하나의 도구 밖에 되지 않았으며, 하나님 앞에 모였지만 하나님 없이 결정하고 처리하는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총회의 모습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사람이 많이 모이고, 형식 요건을 충족하고서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만으로 전부는 아니다. 그 안에 내용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에게는 분노의 열정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바른 해결을 추구하려는 율법의 능력(기능)은 없었다. 그랬기에 오늘 이스라엘이 이렇게 된 것은 의 죄라는 고백이 아니라 의 죄라는 인식이 대세(大勢)를 이루었고, 그래서 물리적인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 의 총회

 

    “우리에게 말하라.”(3)

    “내가 내 나를 내가 나를 그를 내가 내 ”(4-6)

    “너희가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니라.”(7)

    “우리가 우리가 그들을 치되”(8-9)

    “우리가 행한 대로 징계하게 하리라.”(10)

    “이와 같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하나 같이 합심하여 그 성읍을 치려고 모였더라.”(11)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1b) 뭔가 기대를 하였는데 결과는 사람 의 이야기 수준으로 이 문제를 끌고 갈 수 밖에 없는 이스라엘의 철저한 무력감(무지함), 이것은 시작과 과정과 결과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가야 할 책임 있는 사람들이 가장 피해야 할 사역 방정식이다.

   

 

부스러기 묵상

 

최소한 표면상으로는 레위인의 의도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6).

그러나 그는 진짜 자신인 를 보는데 실패하고 가짜 로 포장된 현대인의 초상이다. 자기 목적과 목표를 위해서는 총회(교회)까지도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아는 사람, 하나님 없이 사람들의 결정을 이끌어 내어 자기 목적을 성취하려는 사람, 함께 사는 상생(相生)의 길이 아니라 누구를 죽여서 자기가 사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 사람 위에 올라서서 -첩은 죽었고 기브아의 불량배들마저 죽으면 레위인은 완전범죄가 된다- 결국은 어떤 희생과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내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며 사는 사람, 자신은 증인으로만 슬쩍 등장하고 뒤로 빠지고 전면에는 이스라엘을 내세워 막후 실력자로 처세하는 사람,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죄의 책임을 타자에게 전가함으로써 자기 자신과 자신의 죄를 보는 일에 실패한 사람, 그것도 모르고 벌떼처럼 달려들어 죄인인 내가또 다른 죄인인 내가를 심판하고 정죄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진정한 소망이 있는가?

또 다른 미스바 총회를 기억한다. 이 일은 마지막 사사 사무엘의 때에 행해진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에 성공한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삼상7.6a)

하지만 지금 이스라엘 총회일기(總會日記)를 읽으면서 안타까운 점은 이것이다. 이들은 하늘을 보는 일에 실패한다. 그러니까 땅의 문제만이 커 보였고, 결국 그것만큼 이 문제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풀어가게 된다. 총회로 모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의 과정이 하늘이 배제된 사람의 생각과 결정의 모임이라면 결과는 또 다른 악을 낳는 악순환(惡循環)의 연속일 뿐이다. 사사기 시대나 우리 시대가 이처럼 향방 없는, 실패를 전제로 한 싸움을 하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언제나 사사기에서 제대로 된 일기(日記)를 읽을 수 있을까? 우리들의 인생보고서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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