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일기.暴行日記(삿 19.16-30)

20211208-09(묵상)

  

 

 

폭행일기(暴行日記)

Jdgs. 19.16-30

 

    본문 관찰

 

    레위인 일행을 영접한 노인(16-21)

    불량배들의 악행과 첩의 죽음(22-25)

    12 토막 살인 사건(26-30)

  

 

기브아 사람들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의 한 단면이 소개된다.

사사기는 아직 밤이다. 평안한 안식을 취해야 할 밤에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사사기의 밤은 두 얼굴이다. 한 노인(15-21)과 그 성읍의 비류들(22-25)이 서로 대조되는 모습에서 약간의 혼란을 느낀다. 동일한 장소와 시간 안에 선과 악이 두 모습으로 공존하는 곳, 그러나 악이 선을 이기고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곳, 악 앞에 선이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곳, 바로 그곳이 가나안의 형편이다. 가나안이 이처럼 병들어 있다. 선악을 구별하지 못한다. 선을 부르짖는 소리(23)가 악이 소리 지르며 행해지는 것(22) 속에 감추어져 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노인처럼 사는 사람이 비류들 때문에 설자리를 잃어간다면 그곳은 희망이 사라진 공동체다. 베냐민은 예루살렘에 거한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었다(1.21). 그들과 섞여 살면서 이방의 문화가 베냐민 지파 안으로 급속도로 유입되었고, 그 속도와 함께 기브아의 윤리의식은 세속화되었다. ‘그 성읍의 불량배들’(비류들, 잡류, 벨리알, 22, 13.13)은 이러한 죄악의 깊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샘플일 뿐이다. 노인 외에는 아무도 이 일을 막지 않았다. 이 보다 먼저 이미 나그네를 영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15b).

   

 

밤새도록 새벽 미명(未明)”(25)

 

이 밤 역시 철저하게 이중적이다. 한 여인이 죽어나가고, 한 가정이 파국을 맞고 있다. 그러나 이 노인의 집 외에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밤을 지나고 있고 아침을 맞는다(27).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올 때 남은 것이라고는 죽은 시체 하나 뿐이다. 밤은 죽음을 잉태했다. 그럼에도 아침이 되자 기브아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하루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들은 생각했어야 한다: 기브아의 밤에 잉태한 죽음이 앞으로 어떤 국면을 낳게 될 것인가?

사실 지금까지도 무수한 밤과 아침이 교차했었다. 치욕스러운 밤이 지나도, 그래도 태양은 떴다.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진행되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들은 점점 세상 속으로 깊숙하게 세속화되어 갔다. 가나안에 있으나 하나님이 부재중인 베냐민, 과거 야곱의 영광은 이미 빛바랜 지 오래고, 가나안 여부스 족속의 세속문화에 찌들대로 찌든 타락한 족속,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족속, 약속의 땅 한 모퉁이를 세상 사람들에게 다 넘겨주고 세상처럼 살아가는 족속, 불량배들(비류, 깡패, 건달)이 공개적으로 시위를 해도 누구 하나 눈물 흘리며 아파하는 사람 찾아볼 수 없는 족속, 그렇다면 이 패역한 족속을 향한 하나님의 개입이 어떤 식으로 시작될지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사사기의 흐름을 조금이나마 읽어 온 독자로서는 긴장이 아니 될 수 없다.

   

 

부스러기 묵상

 

기브아 사람들과 레위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전자는 밤에 죄를 행하고 낮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이게 일상이었을 것이다- 잠잠하다. 한편 후자는 밤에는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25a)처럼 은밀히 죄에 가담한다. 그러나 이 일을 아는 여인은 이미 죽었고, 그는 지금 기브아를 떠나 자기 집에 와 있다. 그 밤의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낮에는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12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29)와 같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이 일을 시작한다.

레위인이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한참을 생각해도 모르겠다. 어떻든 그는 기브아의 죄악을 모든 지파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이 일의 해결을 저들에게 요구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기브아 사람들과 일하는 방식만 달랐을 뿐 내가 보기에는 저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그의 모습은 분노와 증오와 선악(善惡)간의 심판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행해야 할 일(손에 칼을 들고 제물의 각을 뜨는 일)은 없고 자기 아내()12 토막으로 처리한다(29). 마침내 19장의 전체 그림은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 한 사람 레위인의 죄 불량배들의 죄 한 지파의 죄 하나님의 개입(20)의 임박성을 알린다.

동시에, 한 노인의 처절한 독백(solo)19장의 흐름을 반전시키지 못한다. 절규하며 외치지만 듣는 자 없다. 이 외침은 레위인의 몫이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침묵한다. 정말 말해야 할 때는 외면하고, 한 여인의 죽음 앞에서 조용히 회개하고 자성해야 할 때에 일파만파(一波萬波)로 확대시킨다. 레위인의 죄는 안으로 잠복해 있고 기브아의 죄는 밖으로 드러난 것 밖에 차이가 없다. 레위인은 참 악질이다. 지능범이다. 19장은 이처럼 철저하게 이중 구조다.

과연 이 사건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그것을 보는 자가 다 가로되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30) 이제 두 당사자는 법정에 서게 될 것이다. 이어서 우리는 각자의 변론을 듣게 될 것이다. 마침내 저들의 일기(日記)가 읽혀지고, 평가를 받는 날이 올 것이다. 하나님은 기브아의 죄를 그냥 묵과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의 행위록(行爲錄)에 대한 심판이 임박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일기(日記) 역시 재미로 읽혀지기 위해 기록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나의 일기 역시 이러한 하나님의 수순을 반드시 밟게 될 것이다. 다시 쓸 수 없고, 지울 수 없는, 다 찢어 버리고 새로 쓸 수 없고, 그래서 고장과 공사(수리)를 지금도 반복중인 처참한 나의 일기를 어찌할까? 또 다시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선다. 하나님 아버지의 대답을 기대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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