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첩일기.愛妾日記(삿 19.1-15)

20211207(묵상)

  

 

 

애첩일기(愛妾日記)

Jdgs. 19.1-15

 

    본문 관찰

 

    첩을 찾아 베들레헴에 온 레위인(1-3)

    레위인이 머물기를 바란 장인(4-9)

    저녁에야 길을 나선 레위인(10)

    기브아에 도착한 레위인 일행(11-15)

 

 

레위인 서곡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1a)

 

잠깐 사사기의 부록(17-21)을 개관해 본다.

17-18장은 종교적인 타락을 이야기한다. 이 타락의 중심에는 미가라는 평신도가 주연(主演)이고 레위인과 단 지파가 조연(助演)이었다. 반면에 19-21장은 윤리적인 타락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타락의 중심에는 레위인이 주연이고 베냐민 지파와 이스라엘 전체가 조연으로 등장한다. 이렇듯 죄는 점점 깊어지고, 확장되고 있다. 사사기의 부록은 한 사람 평신도 미가로부터 시작된 죄가 레위인에게서 절정에 이르러 온 이스라엘 전체로 확장된 비극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17.6, 18.1, 19.1, 21.25) 자행자지(自行自止)한 이스라엘이 단연코 주연이다. 조연이 주연보다 빛나는 것, 그것이 사사기의 비극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애첩일기(愛妾日記)

 

한 레위인이 첩()을 얻었다(1). 정신 넋 빠진 레위인이 누구를 망신시키려고 이러는지, 사사기의 종결부는 레위인 스캔들(scandal)이 이스라엘의 무대를 뒤흔드는 주제가 될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의 그 첩이 간음을 하고 그만 베들레헴 처가로 돌아가 버렸나 보다(2). 그러자 넉 달 후에 레위인이 바람난 첩을 다시 찾겠다고 처가를 방문하면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시계(視界)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3- ). 마침내 사사기는 다시 요동치기 시작한다.

바람난 남자가 바람난 여자의 마음을 너그럽게 이해해 준 것인지는 몰라도, 그러나 이 불륜(不倫) 남녀의 처사는 율법의 규례를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22.22) 따라서 첩과 행음한 사람을 찾아서, 이 둘을 다 죽여야 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 자신 역시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율법을 범한 이유가 확실치 않다. 분명한 것은 다시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3a) 베들레헴으로 갔다는 점이다.

그는 죄를 끊을 수 있는 기회를 의도적으로 거역한다. 율법대로 할 자신이 없었으면 자숙하고, 회개하고, -다윗도 용서받았다- 거듭남의 기회로 나아갔어야 했다. 그런데 이것 없이 다만 스스로 행음 죄의 한 짝을 찾아 나선다. 그는 죄 창고로 자원하여 걸어 들어간다. 이게 인생이다. 이스라엘의 영적 생활을 위해 헌신해야 할 그가 한 여인과 죄만들기’(죄바라기)에 헌신하고 있는 자로 타락해 버린 비극, 이것이 사사기라는 가나안 교회의 실상이다.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그는 다섯째 날 저녁에 처가를 떠나 귀향길에 오른다(8-10). 아마도 그는 안식일 전에 도착하려고 한 모양이다. 그래도 안식일은 시키고 싶었던 전형적인 종교인이다. 아마 이번 주에는 꼭 가야 할 무슨 순서를 맡았나 보다. 이처럼 안식일은 죽일로 살고 평일은 죄일로 사는 레위인, 그는 우리 시대 부끄러운 그리스도인들의 한 예표다. 하나님을 안심시켜 드려서 후환(後患)을 미리 막아 놓을 추악한 계산 속에 주일날 -그에게는 죽일날이다- 예배 드려주고, 적당히 헌금 내 주고, 그러고도 나는 크리스찬이다.”며 자신 있게 살아가는 사람이 어찌 이 레위인 뿐이겠는가.

형식적인 신앙은 또 하나 더 발견된다: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외인의 성읍, 11)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12) 참 가증하고도 기막힌 이중성이다. 감히 이방인의 성에 들어가서 쉴 수 없다는 레위인의 말, 이때 만약 그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의 언행(言行)을 듣고 보았다면 감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레위인다운 모습을 포기한 사람이다(3, 22.22). 그는 미래가 아닌 과거를 먹고살기로 작정했었다. 하지만 그 과거가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전혀 알지 못한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이방인에게는 엄격한 사람, 자기는 필요에 따라 율법을 고무줄처럼 사용하면서 율법 밖에 있는 이방인에게는 엄격하게 율법을 적용하려는 사람, 율법에 자신을 맞추어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율법의 용도와 효용을 결정하는, 이에 모세6경인 자기율법서를 따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사는 사람, 이렇게 살고도 나는 레위인이다자랑하며 사는 사람, 그는 누구인가?

   

 

부스러기 묵상

 

여부스(이방, 10-11)와 기브아(이스라엘, 12-15)의 묘한 대조가 흥미롭다.

어떻든 이방(여부스)보다도 못한 땅이 되어 버린 이스라엘(가나안)의 모습이 암울하기만 하다. 이게 레위인(이스라엘)의 착각이자, 이스라엘의 현실이다. 한편 이런 사람들이 사사기를 외출하여 이 땅을 활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역시 그는 누구인가?

사사기 사람들은 아무도 나는 죄인입니다. 사사기 교회를 망친 사람은 나입니다. 내 탓입니다!”라고 고백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니 자신을 보지 못했고, 그러니까 자기 잘난 맛에 자기 소견대로 살았던 것이다. 이렇듯이 무수한 레위인들 역시 이 땅의 교회 안을 주름잡고 다니지만 만들어 내는 것은 사사기 뿐이니 부끄러울 뿐이다.

아직 사사기는 여전히 깊은 밤이다. 기브아의 밤은 깊어만 간다. 아직 밤인 사사기를 두고 아침을 맞이하니 상쾌하기는 하고, 사사기가 걱정되기도 하고, 그렇다. 과연 애첩일기……. 두 시공이 묘하게 교차한다. 바로 그 밤도 두 이야기가 동시상영 되었듯이, 어쩌면 지금 부산의 밤도 기브아의 밤과 같은 동일한 일이 어딘가에서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 다 사라지고 이 여인만 신문 사회면에 톱기사에 등장할 것이다. 그러면 온 사회가 저런 파렴치한 일을 저지른 사람은 반드시 벌을 주어야 한다고 아우성 치겠지.

누가 누구에게 돌을 들어 칠 수 있을까? 돌을 드는 사회, -레위인은 도끼를 들었다- 그곳은 어디든지 모세6경을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곳이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교회가 먼저 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가나안 교회가 그렇고, 우리 시대 교회가 그렇다. 이렇듯 언제나 그리고 누구나 예수님을 놓치면 사람이 표적이 될 수 밖에 없고, 사람이 과녁(target)이 되면 사사기를 재상영하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조금은 씁쓸하다. 점점 교회에서마저 주님의 해법이 제6율법서에 밀리는 것 같은 느낌, 작지만 그러나 이건 사실이다. 상생(相生)이 아니면 공멸(攻滅)이다. 이 진리는 사사기나 우리 시대나 동일하다. 나는 어떤 것을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가? 나는 어떤 길을 가고 있고, 가려고 하는가? 과연 사사기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러나 사사기는 아직도 깊은 밤이다. 빛을 잃은 어둠, 다시 요한복음 1장을 읽어야겠다. 그렇다, 오직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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