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셋 바이러스(삿 15.1-13)

20211201a(묵상)

  

 

 

블레셋 바이러스

Jdgs. 15.1-13

 

    본문 관찰

 

      1 얼마 후 그의 아내에게로 찾아 가서

      3 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해할지라도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

      4 삼손이 가서 여우 300 마리를 붙들어서

      7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고야 말리라

    11 유다 사람 3,000명이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삼손 변주곡 제2악장

 

오늘은 블레셋에 대해서 생각한다.

삼손의 이야기를 다루는 사사기 13~16장은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운명적인 만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블레셋은 어떤 족속인가?

   

 

블레셋 소고(小考)

 

블레셋은 창세기 2020-21절과 26장에서 등장한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무렵에 이들은 이미 팔레스타인 연안에 정착하고 있었다(13.17, 23.31). 한편 블레셋에는 가드, 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에그론과 같은 5개의 주요 성읍이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것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의 모든 족속들을 다 멸할 뿐만 아니라 블레셋까지를 그 범주에 포함시키셨다는 부분이다.

 

내가 네 경계를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강까지 정하고 그 땅의 주민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지라.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들과 언약하지 말라.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를 내게 범죄하게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들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23.31-33)

 

(1) 이렇듯 이스라엘은 완전정복에 실패한다. 이로써 올무라는 화근의 씨앗이 자라 마침내 온 유다를 능멸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블레셋으로부터 이처럼 대접을 받게 된 것은 지극히 작은 것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여호수아서로 가 보자.

 

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들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들의 성읍들을 진멸하여 바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는 아낙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약간 남았더라.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을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11.21-23)

 

약간이 지금 이스라엘 전부를 흔들어 버리는 거대한 세력이 되어 있다. 사사기 역시 블레셋이 여호수아의 경고처럼 올무임을 명백히 한다(3.1-4).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불순종의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2) 블레셋은 사사기를 지나 사무엘 시대까지 이스라엘의 올무라는 악역을 맡는다. 사울왕은 그들을 쫓아내었는데(삼상 14), 블레셋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다(17-18). 사무엘상 17장으로 가 보자.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을 대하여 전열을 벌였으니, 블레셋 사람들은 이쪽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쪽 산에 섰고 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1-4)

 

잘 보면, ‘약간이 어디까지 커졌는가? 그렇다. 골리앗까지 자랐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완벽하게 역전되었다. 이것이 불순종한 믿음 없음이 만들어 낸 죄의 결과이다.

   

 

어리석은 유다여!

 

밀 거둘 때에”(히브리력 9, 양력 5-6)는 이스라엘이 전통적으로 맥추절을 지키는 때다(16.9-12). 그런데 그는 딤나의 아내에게로 찾아가서”(내려가서, 14.1; 1)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는 지금 사사다. 성령이 임한 사람이다. 나실인이다. 모태신앙으로 성장했으며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 안에 역사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고, 알고 있고, 실제로 행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이 모든 것을 통합하고 통찰하고 통치하는 면에 있어서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하나님께 무감각한 것은 삼손만이 아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올라와서 우리를 치느냐.”(10a)

 

144절인데 왜 새삼스럽게 또 다시 우리를 괴롭게 하려느냐는 뜻이다. 이렇게 블레셋에게 말하더니, 다시 시선을 돌려서 삼손에게도 비슷한 말을 한다: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11)

삼손 이야기에는 중요한 단어가 하나 있다. 그것은 올라가서, 내려가서라는 단어다. 사사기를 열면 11절에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라고 하나님께 이스라엘이 묻는다. 이때 하나님은 유다가 올라갈지니라.”(1.2)라고 명하시는 장면으로 사사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지금 9-10절에서는 블레셋이 올라와서유다에 진을 치고 있다. 반대로 유다는 내려가서’(11a), 또한 삼손에게 우리가 너를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려고 내려왔노라.”(12a)라고 말한다. 그리고 삼손과 유다는 자기들을 치러 올라와서진을 치고 있는 블레셋 앞으로 함께 내려간다(12-13). 삼손을 잡기 위해 동원된 3천명은 블레셋과의 영적 전쟁을 위해 나서야 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로 삼손을 처리하기 위해 그들은 모였다. 이 얼마나 역설인가! 사사기 기자는 올라가서, 내려가서의 역전 구조를 통해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이것이 유다의 현재 모습이다: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11) 하나님을 떠나면 인생이 어디까지 망가지고 또 비참해 질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까지를 버린다. 사람이 거룩한 시각을 잃어버리면 있어야 할 것과 없어야 할 것을 구분하는 힘을 상실한다. 이렇듯 철저하게 무능하고 무지한 가나안을 보라.

   

 

부스러기 묵상

 

올라가야 할 사람(이스라엘)이 내려가고 있고, 이스라엘 때문에 내려가야 할 사람(블레셋)이 오히려 올라와 있는 형국, 참으로 이상한 나라의 그림이다. 삼손 변주곡 제2악장은 이러한 불협화음으로 이미 리듬(rhythm)을 잃어버렸다.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손 변주곡을 지휘하시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지금 계속해서 무대를 지키고 계신다. 삼손의 인생 오선지(五線紙)가 이미 밖으로 떠나 허공을 치고 있어도 하나님은 자신의 리듬과 박자와 음빛깔을 따라 다시 그에게 기회를 부여하시는 방식으로 결코 삼손 변주곡을 포기하지 않으신다(14.6,19, 15.14,19).

이쯤 해서 이런 생각이 든다. 계속해서 객석(客席)에 앉아 이 지루한 삼손 협주곡을 듣고 있어야 하는가? “이 음악을 제발 틀지 마세요.”라고 주님께 간청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나의 인생이라는 음악 역시 이처럼 형편없는 악상(樂想) 아닌가?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아무 조건과 힘이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인생과 사역이라는 음악은 저 천국에서 어떻게 연주되고 있을까? 하나님은 어떤 느낌으로 내 음악을 듣고 계실까? 만약 하나님께서 듣기 싫다. 그만 연주하도록 하라!” 그러시면 나는 그것으로 끝이 아닌가? 그러나 감사하게도 내가 삼손 이상으로 엉망으로 연주를 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고, 또 앞으로 할 것인데 아직 살아있지 않은가. 삼손을 향해 들었던 돌을 내려놓고, 다시 십자가의 복음을 들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다: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아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찬송가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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